행위

김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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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후 김씨 (廢后 金氏,1920 ~ 1990)

박성빈이라는 양반은 47살에 낳은 막내아들 박정희가 장가가는 것을 꼭 보고 싶어했고, 자기 친구의 딸 김호남에게 박정희를 장가보냈다.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해서 자유연애 뽕을 들이켰던 박정희는 이러한 억지결혼이 존나 싫었다. 이런 양반이 억지결혼한 부인이랑 사이가 좋게 지낼리가.... 있겠냐? 문경 소학교에서 선생으로 근무하던 시절엔 방학때 집에 돌아올 생각도 안하고 돌아와도 김호남과 눈도 안맞출려고 했다.

당연하겠지만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로 근무하면서 안그래도 영 좋지 않은 관계가 더 멀어졌고, 8.15 광복이후 그가 이현란이라는 여자와 동거한다는 것을 알자 관계가 쫑났다. TMI지만 이현란과의 관계도 여순반란이후 쫑나기 시작했고 김호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완전히 끝장났다.

이현란을 사랑했던 박정희는 이때부터 김호남과 이혼하기 위해 여러차례 고향을 방문했지만 김호남은 돌아오라는 듯이 계속 박정희를 피해 숨어다녔다.(당시 이혼을 하려면 부부가 모여서 이혼서류에 동시에 서명을 해야했다.)하지만 6.25 전쟁이 터지자 김호남은 모든것을 내려놓았고 박정희와 이혼했다.

이혼후 중령이 된 박정희는 육영수와 결혼하게 되었고 김호남은 다른 남자와 재혼해 아들을 1명 두었으나 얼마안가 이혼, 상무대에 들어가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었다. 억지로 만난 부인이라 막대한 것에 대해 미안했던 것일까? 박정희는 본인이 머통으로 있던 시절 김호남이 상무대에서 무각사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보고를 받자 무각사를 미친듯이 밀어줬고 사위 한병기에겐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권을 줬다고 한다.

박정희와의 사이에선 박재옥(1937년생)이라는 딸 하나만 두었다.

축구선수[편집]

광주 FC소속의 축구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