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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桓温
312~373
남북조 시대 동진의 권신.
망탁조의에서 동탁을 빼고 얘를 대신 집어넣어 '망조의온'이라고도 한다.
본래 초국(譙國) 금수저 귀족 출신이지만 영가의 난때 가족들이 강남으로 런하면서 같이 동진에 정착했다. 아버지가 누군가한테 살해당하니까 그 복수를 한 뒤 아버지 원수의 아들들이 초상을 치르고 있을 때 쳐들어가서 아들들까지 아비 곁으로 보내버렸다.
걍 후환 없애려고 한 짓거리지만 이 시기엔 말 그대로 유교탈레반들이 넘쳐나고 당연시되던 시기라 다들 "와 저 새끼 효심 쩌네" 하면서 감탄했고, 이 일로 황제 사위가 되고 동진 군사력의 절반을 짊어지는 자리에까지 올라 출세한다.
동진에선 슬슬 얘가 세력이 세지니까 견제를 시도하지만, 견제를 위해 내세운 다른 세력가들이 공을 다투다 자멸해서 오히려 동진의 전 군사력이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뒤 실적을 쌓아서 찬탈의 기반을 쌓기 위해 북벌을 단행하는데, 그래도 군사적 재능은 조금 있어서 북벌 자체는 성공적으로 수행했지만 이 새끼의 본심은 북벌로 천하통일이 아닌 '성과를 낸 다음에 찬탈하는' 것이었다. 1차 북벌은 위연 새끼가 이빨 까던 자오곡 떡밥 그대로 써먹다가 관중을 장악한 저족 전진 부씨네 일쪽한테 군량 털리고 보급도 안 되고 역습까지 당해서 장안 앞에서 공략할 엄두를 못내고 막혀서 실패했고 2차 북벌은 낙양까지 재점령하는데 성공하고 이걸로 낙양 재천도 떡밥을 날리지만 환온의 속셈도 속셈인데다가 낙양만 달랑 점령하면 누가 감? 결국 낙양 다시 빼앗기고 흐지부지, 3차북벌은 대놓고 권력 다 잡아먹으려고 북벌한 거라 3번째 북벌이 실패한 뒤로는 대놓고 형주와 양주군을 손에 넣고 국내에서 권세를 다지는 데 전념한다.
당시 황제였던 사마혁(제호가 없어서 '해서공'이라고 불림)을 폐위시키고 다른 황제(간문제)를 옹립해 찬탈 카운트다운을 세었지만, 간문제가 1년도 안돼 뒈짓할 때 사안, 왕담지를 비롯한 일부 신하들이 환온에게 선양하려는 시도를 극력 막았고, 환온도 간문제가 죽고 불과 1년만에 칵 뒈졌다.
그래도 영 정치를 못하진 않아서 서진 말아먹고 엉망이던 호구조사도 다시해 동진의 국력을 회복하고 북벌도 사천지방을 다시 장악하는 등[1] 성과가 아예 없지만은 않았다, 뒤의 유유가 아예 장안,낙양 먹고 산둥반도까지 수복한 성과에 밀려서 그렇지 동시기에 환온만도 못한 병신들이 동진에 쌔고 쌨음.
이후 환온의 아들 환현이 아버지 권세를 물려받고 행패를 부리다 나중에 찬탈을 시도했지만, 얘는 훗날 유송(劉宋)을 세운 유유한테 토벌당해 유유한테만 좋은 일 시켜주고 망한다.
- ↑ 물론 이건 당시 성한 이씨 왕조가 병신이라 그런것도 있다, 성한의 이특이 'ㅉㅉ 이런땅 뺐긴 유선 등신' 했는데 정작 이 이 인간 후손들은 유선만도 못해서 나라 말아먹음, 촉한은 유비가 익주 처먹은거 기준으로 50년은 갔는데 성한은 익주 들어온지 40여년 좀 넘고 망함. 그런 주제에 유비의 신하였던 범장생을 승상에 올리는등 과거 촉한에 향수가 있었던 익주민들을 회유하려 함, 성한 멸망 이후 기록들을 보면 촉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제갈량을 그리워하고 강유가 촉을 회복하지 못한것을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