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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오 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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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오 함마

Henry O'Hammer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67년 3월 9일
출생지 도미니카 공화국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선수 정보
입단 1984년 아마추어 외국인 특별전형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사실상 모든 포지션
소속 롯데 자이언츠 (1984~2005)

롯데 자이언츠의 전설과도 같은 선수이다

그분의 기록은 더이상 크보에 남아있지 않지만 꼴데팬들 가슴속엔 영원히 간직되어있다.

입단 과정[편집]

KBO 1983년 리그가 끝나고 크보는 효율적인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을 위해 아마추어 외국인 드래프트라는 제도를 만든다.

이 제도는 도미니카, 쿠바 등의 야구 강국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을 데려오는 제도이다.

하지만 나이제한이 있어서 1967년생이던 헨리 선수는 1961년생이라고 신분을 위조해가며 외국인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다행히도 신청자가 헨리뿐이어서 신청이 승인되었고 헨리를 데려가기위해 당시 구단이었던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삼미 슈퍼스타즈, 해태 타이거즈, MBC 청룡이 경쟁을 하게 됐는데 주사위 굴리기로 롯데가 이겨서 롯데로 영입되었다.

당시 입단 계약금이 700만원이었다.

업적[편집]

그의 업적은 너무 많아서 미처 다 적을 순 없지만 대표적인것들만 적어본다.

  •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연투로 팔이 고장난 최동원을 대신하여 등판해 롯데 V1을 달성한다.
  • 1997년 IMF 사태가 터지자 조금이나마 이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달러로 받는 자신의 연봉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 1998년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정민태를 상대로 8점 홈런을 때려냈다. 이 기록은 MLB에도 알려져 KBO의 인지도를 올려주었다.
  • 1998년 잠실에서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마운드에 강병규가 올라서자 배트를 던지고 페트병을 가져와 1구만에 장외홈런을 때렸다.

이 기록은 최초 잠실구장 장외홈런이지만 두산측에서 배트를 쓰지 않고 페트병으로 쳤다며 크보에 항의했고 크보는 그 기록을 무효화했다. 따라서 현재 정식 기록에선 2000년에 김동주가 최초 잠실구장 장외홈런을 친 것으로 나와있다.

  • 1999년 헨리는 술자리에서 당시 롯데 에이스 박정태에게 플레이오프 통과를 예언하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부상으로 한국 시리즈에 나오지 못했고, 헨리가 빠진 롯데는 팀같은 똥에게 한국시리즈에서 탈탈 털리고 만다.
  • 2002년 삼성전에서 헨리는 6타수 2홈런 4안타 1볼넷 7타점으로 빠따가 폭발했다. 당시 삼성감독 갓끼리사마는 헨리에게 약물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도핑 결과 헨리선수는 결백했다. 또한 송승준이 "헨리는 약물은 커녕 영양보충제 하나 먹지 않는다"라고 못을 박았다.
  • 2005년 손민한이 9회말 무사만루 위기를 만들자 헨리가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주자 3명을 모두 견제구만으로 아웃시킴으로써 승리를 가져왔다.

퇴출[편집]

2005년 꼴데가 88885라는 비밀번호를 찍자 구단 측에서 물갈이를 위해 노쇠한 헨리를 약물의혹 등으로 퇴출시켜버린다.

그리고 그의 등번호인 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지 않고 어떤 수비만 잘하는 좆병신새끼한테 주고만다.

이후 이 등번호 1번은 헨리의 저주를 받아 1번달고 뛰는 선수의 성적은 좋지 못하다고 한다.(설마 손승락이...?)

응 손승락 2016년 20세이브 2017년 37세이브

그리고 비난을 막기위해 크보에 약물의혹을 빌미로 그에대한 기록 자체를 삭제시켜버린다.

은퇴이후 행보[편집]

  • 2006년 이대호가 사직구장 첫 장외홈런을 때린다. 하지만 밖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던 헨리가 그 공을 빗자루로 때림으로써 공이 다시 안으로 날아가 장내홈런이 되고 만다.

사망[편집]

2007년 혈중 담석증이라는 희귀 불치병을 얻어 크리스마스날 사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