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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위 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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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미국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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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다저 스타디움에서는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국뽕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LA 다저스 영구결번
1 2 4 19 20
피 위 리즈 토미 라소다 듀크 스나이더 짐 길리엄 돈 서튼
24 32 39 42 53
윌터 앨스턴 샌디 코팩스 로이 캄파넬라 재키 로빈슨 돈 드라이스데일

"You can hate a man for many reasons. Color is not one of them."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고작 피부색 따위여서는 안된다."

소개[편집]

다저스의 영원한 등번호 1번 가장 위대한 유격수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격자

이분 없었으면 무하마드 알리도 마이클 조던도 최소 십 수년은 늦어졌을 것이다

인격뿐 아니라 야구 실력도 출중한 편이라 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20대를 절반 가까이 국가에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통산 2170안타 0.366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위대한 스포츠 맨[편집]

Pee-wee는 키가 작은, 하찮은 이란 뜻을 가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름을 달고 있었음에도,

그는 당대의 그 누구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인간임을 보여준다. 바로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과의 일화 때문이다.

1947년, 재키 로빈슨이 다저스에 입단했고 피 위 리즈는 당시 군 복무 중에 그 소식을 들었는데 재키 로빈슨이 "흑인"인것이 궁금한것이 아닌

그가 니그로리그에서 얼마만큼 활약을 했고 어떤 포지션이냐 라는 것이었다. 인종은 이미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

영화 42

1947년 5월 14일, 브루클린 다저스는 신시내티 레즈와의 원정경기를 위해 경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한 시대가 아니어서 재키 로빈슨이 흑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상당수 존재했다.

하지만 흑인 선수가 나선다는 것을 알고, 이들은 극도로 분노해서 협박 편지들을 구단과 재키 로빈슨에게 보냈다. 그리고 경기 시작 전, 경기장의 분위기는 점점 더 살벌해졌다.

6천명이 넘는 관중과 상대팀 선수들까지 인격모독도 서슴치 않으며 엄청나게 험악한 분위기까지 갔는데

갑자기 그는 글러브를 벗더니 6천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재키 로빈슨을 끌어안았다. 둘은 가볍게 웃으며 담소를 나누었고, 크로슬리 필드는 한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이 날은 메이저리그와 미국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수만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백인 피 위 리즈가 흑인 재키 로빈슨을 끌어안은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대단한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피 위 리즈는 당시 노골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펴던 켄터키주의 중심도시 루이빌 출신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대인배적인 행위를 보여주었고,

이는 결국 재키 로빈슨을 야구계 전체가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이후 니그로 리그에서 뛰던 수많은 흑인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필드에서 재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지. 사람들이 그걸 보면 우리가 친구라는 것을 알테고, 그러면 재키한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어."
ㅡ 재키 로빈슨에게 어깨동무를 한 이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묻는 인터뷰 중에서.

은퇴 이후[편집]

로이 캄파넬라의 밤 행사에서

선수 시절 다저스에서만 7번의 내셔널리그와 1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커리어를 기록하고 1957년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다저스 코치로 부임한다.

여담으로 1959년 당대 최고의 포수이자 불우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또 다른 다저스의 흑인 선수 로이 캄파넬라를 위해 구단에서 준비한 행사에서 그의 휠체어를 끌고 그라운드로 나온 이도 피 위 리즈였다.

그리고 TV 중계 해설자도 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99년 암으로 자택에서 조용히 숨졌다

'흑인들은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이 재키에게 다가갔을때 당신은 우리 모두에게 다가온 것이다. -1999년, 그의 장례식장에서 흑인 메이저리거 였던 조 블랙(Joe Black)

관련항목[편집]

LA 다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