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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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역사 L'Histoire de France | |||
국가 | 등장 연도 | 멸망 연도 | |
---|---|---|---|
갈리아인 | 기원전 1200년경 | 기원전 51년 | |
로마 제국령 갈리아 | 기원전 51년 | 260년 | |
갈리아 제국 | 260년 | 273년 | |
로마 제국령 갈리아 | 273년 | 476년 | |
프랑크 왕국 | 481년 | 843년 | |
서프랑크 왕국 | 843년 | 987년 7월 3일 | |
프랑스 왕국 카페 왕조 |
987년 7월 3일 | 1328년 2월 1일 | |
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 |
1328년 4월 1일 | 1589년 8월 2일 | |
프랑스 왕국 부르봉 왕조 |
1589년 8월 2일 | 1792년 9월 21일 | |
프랑스 제1공화국 | 1792년 9월 21일 | 1804년 5월 18일 | |
프랑스 제1제국 | 1804년 5월 18일 | 1815년 7월 7일 | |
프랑스 왕국 부르봉 왕정복고 |
1815년 7월 7일 | 1830년 8월 9일 | |
프랑스인의 왕국 오를레앙 |
1830년 8월 9일 | 1848년 2월 24일 | |
프랑스 제2공화국 | 1848년 2월 24일 | 1852년 12월 2일 | |
프랑스 제2제국 | 1852년 12월 2일 | 1870년 9월 4일 | |
프랑스 제3공화국 | 1870년 9월 4일 | 1940년 7월 10일 | |
1940년 6월 22일 | 1944년 8월 25일 | ||
1940년 7월 10일 | 1944년 8월 20일 | ||
자유 프랑스 | 1940년 6월 18일 | 1944년 6월 3일 | |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 | 1944년 6월 3일 | 1946년 10월 27일 | |
프랑스 제4공화국 | 1946년 10월 27일 | 1958년 10월 4일 | |
프랑스 제5공화국 | 1958년 10월 4일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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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Eugène Delacroix(1798-1863)
역알못들은 흔히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알고있지만, 사실 1830년 샤를 씹새를 몰아낸 프랑스 7월 혁명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그림의 부제가 1830년 7월 28일 [1] 이라는 걸 알면 프랑스 대혁명이랑 헷갈리지 않을 수 있다. 참고로 2012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도 배경이 프랑스 혁명도, 7월 혁명도 아닌 1832년 6월 파리 봉기라고 한다. 급식충이라면 세계사 시간에 아는 체 해주자.
개요[편집]
프랑스의 역사만을 다루는 항목이다.
프랑스사 주요 장면(현대사 제외)을 묘사한 그림들을 보고 싶다면 프랑스 항목 타고 넘어가라.
사실 유럽 국가의 역사 중 가장 접하기 쉬우면서 동시에 배우기 쉬운 역사이다. 먼저 오스트리아나 스웨덴,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따위의 나라들은 한국에서 그 나라들의 역사를 접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사는 대부분의 내용이 유럽사를 공부하면서 저절로 배워지기 때문에 흐름을 일반인들도 대충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이상한 왕조들이 바뀌고 소국들끼리 전쟁하는 다른 유럽사와 다르게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중심이 된 적 있을 정도로 왕권이 강한 편이어서 국가들도 많지 않고 흐름이 간단하다.
왕조가 수도 없이 바뀌고 한번 나온 왕조가 다시 나오는 등 복잡한 영국, 스페인 등에 비해 메로빙거→카롤링거→카페→발루아→부르봉으로 중복되는 왕조가 없다. 그 이후의 공화국 시절도 생각보다 간단한데 우리나라의 공화국 순서 흐름에 제국과 왕국들 몇 개만 끼어있을 뿐이다.
1공→제1제국→부르봉→오를레앙→2공→제2제국→3공→비시 프랑스와 군정청→4공→5공으로 좀 꼬이긴 하지만 흐름 파악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금방 외울 수 있다.
이것 때문에 유럽사를 접할 때 가장 쉽게 공부할 수 있는 파트가 프랑스사이다.
고대[편집]
고대 프랑스는 골족의 땅이라 하여 로마인들에게 갈리아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기원전 58년부터 로마 공화정 종결자 카이사르의 침공을 받았다. 전쟁 7년차에 베르셍제토릭스라는 걸출한 장수를 중심으로 갈리아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두 봉기했지만, 천신만고 끝에 카이사르가 알레시아 공방전에서 양면의 대군을 상대로 대승하며 갈리아를 로마의 속주로 편입시켰다. 이후로 갈리아는 완전히 로마화되었다.
하지만 기원후 4세기 게르만족들의 러시아워가 시작되면서 로마는 막장을 달리게 되었고, 갈리아 역시 대규모 침공을 받았다. 서로마 제국이 476년 완전하게 멸망하게되면서 갈리아에는 서고트족, 부르군트족, 프랑크족, 알라만족 등등이 서로 자리를 잡고 동물의 왕국을 찍기 시작했다.
이 시절 프랑스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인 이미지랑은 백만 광년 떨어져 있는 야만인이었다. 중세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지금 들어서 문화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만화인 아스테릭스가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ㄴ 아스테릭스에서는 로마화의 우등생이였던 조상들을 풍자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ㄴ 엥? 그거 완전 소중화하던 조센징 아니냐?
중세[편집]
시간이 지날수록 게르만 계통 부족 중 하나인 프랑크족의 프랑크 왕국(이 '프랑크'는 프랑스 식으로 알파벳을 변형해서 읽는 습관에 원조가 되듯 '프랑스'의 어원이 된다.) 이 갈리아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고,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제국에 승리, 피레네 산맥 이북으로의 이슬람 세력의 진출을 차단하면서 카롤루스 왕조가 열렸다. 카롤루스 대제[1] 재위기간 동안에는 서로마제국의 왕관을 받고 자기 따까리 교황이 시점에는 이슬람 레이드에 오줌지리던 상태였고 교황의 힘이 중세처럼 강하지 않았다.)의 '신의 은총을 받은 절대적인 지도자'후빨 속에 서로마의 후신인 신성로마제국을 열었으며 소위 '카롤루스 르네상스'라 불리는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샤를마뉴는 중-서유럽사에서 매우 중요하며, 이 인물이 통일하지 않았으면 이탈리아 에스파냐 상륙하던 이슬람에 의해 각개격파 당하고 프랑스도 진작 모스크에서 알라후 악바르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프랑스 문화의 상속제도에서 같은 로망스 문화권의 이탈리아 도시국가식 문화가 아니라 게르만의 '살리카법'이 왕-귀족의 상속에서 엄격하게 적용되던 것도 이 때문이며, 이후의 유럽 왕조들은 모계건 부계건 카를대제와의 혈연을 가문의 위엄이나 통치 정통성 상 현 프랑스지역 왕조건 현 독일지역 왕조건 상관없이 엄청나게 강조해댔기 때문에 언어는 차츰 섞여가며 현대 프랑스어로 형성되지만 프랑스의 (어디나 구분은 있지만 그 정도가 어쩌면 골족이나 이탈리아 로망스 문화권이라기엔 너무 게르만문화권 스러운) 일반대중과 귀족간의 엄격한 구분과 생활양식 문화차이등의 요소의 원인으로 남게된다.
카를로스 대제의 영토는 오늘날의 프랑스, 북이탈리아, 독일 서부와 중부, 판노니아지방을 영토로 삼았다. 하지만 814년 카롤루스 대제가 죽은 후 위대한 인물의 후계자들은 열의 아홉이 병신이라는 역사의 법칙을 따라 프랑크 왕국은 후계자들의 실정으로 세개로 분열된다. 그리고 그 중 서프랑크 왕국이 프랑스가 됨. 중프랑크(이탈리아 지방 포함)와 동프랑크왕국은 다시 합쳐져서 신성로마제국이 됨.
987년 카페왕조가 열리면서 독자적인 '프랑스 왕국' 의 길을 가게 되지만 프랑스는 수많은 지방영주들의 힘이 강력했고 왕의 권한은 전혀 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동안 왕은 지방영주들을 하나하나 제압해가며 왕권을 확립하며 성장하였고 존엄왕 필리프 2세 재위기간 동안 영국 왕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카페왕조를 이은 발루아 왕조시기 영국과의 백년전쟁을 치루며 국가 존망의 위기까지 몰리지만 샤를 5세, 샤를 7세와 잔 다르크라는 정신이 좀 이상해보이는 기독교 신자[2] 의 활약으로 백년전쟁(1337-1453)을 승리로 이끌며 프랑스 안의 영국 세력을 바다 건너로 강퇴시켰다.
그리고 사실 (그 유명한)사자왕 리차드의 동생이자 프랑스의 숨겨진 국부인 '존 왕'의 헌신적인 병신짓 공헌 덕에 현 프랑스 지역(당시로는 북부만 프랑스 왕 권역이고 남부는 아키텐 왕국령)내 영토만 해도 프랑스 왕과 휘하제후들보다 컸던 영국이 병신왕 덕에 땅을 죄다 털리고 당시엔 프랑스 왕의 권역과는 상관없던 조그만 칼레지역을 빼면 그 넓은 보르도 포도밭과 노르망디 등 영토를 털리고 섬나라로 쪼그라 들었으며 그 털린 영토는 왕권이 약해빠졌던 프랑스왕의 직할령으로 편입되 이후 프랑스가 강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루고 중앙행정과 사치스러운 귀족문화가 발달하며 서유럽 프랑스지역의 평지와 농업지등을 다 확보한 덕에 인구강국이 되며 각 전투에서 병신같은 전략을 펼치는 상황이 나오더라도 인구빨로 밀어붙이고 루이14세땐 '짐이 곧 국가다'라는 이전같으면 개소리같을 소리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등 중앙집권과 왕권증대와 국력신장의 큰 기틀을 마련해 주게 된다.
고로 존왕=사실상 프랑스의 아버지. 프랑스 성장의 기틀이자 시작. 그리고 영국 입장에선 둘도없는 암군 취급.
프랑스사 하면 보통 프랑스 대혁명이나,나폴레옹 전쟁 시기를 많이 떠올리는데 사실 프랑스사는 중세가 또 꿀잼이니 참고해도 좋다. 중세사 최대의 사건이라는 십자군 전쟁은 80%가 프랑스계 제후들이 캐리했으며(십자군 국가 주요인사들 이름이 다 프랑스어로 표기되는 게 이때문이다)평지에 예전부터 농지로 개발이 잘 되었던 덕에 인구가 많았다. 반면 인구강국으로 근현대에 생각되는 독일은 중부 지방은 개발도가 높았지만 동부는 튜턴기사단이 활동했던 것 처럼 기독교 전파의 전장같은 기지였으며 영토 면적에 비해 산지나 매우 우거진 숲 등 험지가 많았고. (과거 로마제국 시절에도 이 때문에 게르만 정복에 로마가 애먹은 것) 개발도나 농업증대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인 건 중근세에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부터 영토확장과 험지개발 등 국력증대를 하드캐리로 이끌던 시점 이후부터다. 고딕 성당, 기사도 같은 것들도 프랑스에서 창안돼 퍼진 것들이다. 유럽사라는게 구분이 명확했던 한중일과 달리 상대적으로 섞어서 이야기를 해야 이해하기에 좋기에 언급함.
개독역사상 최강의 명대사인 (이단 토벌 당시 이단과 일반 기독교인을 어떻게 구분하냐는 질문에) 모두 죽여라! 신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알아보신다!가 프랑스에서 나왔다.(알비 십자군)
근세[편집]
백년전쟁의 승리 이후 1500년대에는 프랑스 토지의 대부분이 국왕의 소유가 되며 중앙집권 체제가 강화되었다. 비옥한 토지와 많은 인구에서 나오는 국력을 바탕으로 강국이 된 프랑스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주도권을 넘보게 된다. 마침내 기사+스위스 용병+대포 조합으로 스페인한테 승부를 걸었으나, 스페인 최전성기 테르시오의 화승총맛을 보고 쳐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빨로 간신히 버티는 듯 했지만 16세기를 강타한 종교개혁 열풍이 프랑스를 덮치며 위그노[3] 전쟁이라는 헬게이트가 오픈되었다. 이후 1589년 앙리 4세라는 대국적인 군주가 등판해 신교도 주제에 "파리는 (가톨릭의) 미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외치고, 낭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대국적으로 정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광신도에게 칼빵을 맞고 죽었다.
17세기 프랑스는 낭트 칙령을 바탕으로 가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신교도 편을 드는 박쥐짓을 하며 30년 전쟁에 개입했다. 30년 전쟁에서 스페인, 오스트리아를 털어버리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루이 14세때 유럽 전체와 맞다이깔 수 있을 정도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 베르사유 궁전이니 프랑스를 여행한다면 하루 잡아서 꼭 보도록 하자. 그러나 루이 14세 시대(1643-1715)와 루이 15세 시대(1715-1774)까지 전쟁을 너무 많이 벌인 나머지 재정이 거덜났고, 루이 16세때 자신들의 숙적 영국을 엿먹이고자 미국을 존나게 지원하면서 재정난은 절정을 찍었다. 이에 성난 국민들이 봉기,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일으켜 세계최초로 주욱창질에 성공, 국왕을 포함한 금수저 무리들을 쓸어버렸다. 고 생각하는데, 사실 살아남은 귀족 등 부유층들은 많았고 혁명을 응원한 자도 많았다. 미국의 주요 계층들과 국민들이 영국왕 몰아내면 자신들의 기득권(권리)가 증대될 것을 기대한 것과 마찬가지의 관계였기 때문.
근대[편집]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 국왕 부부가 죽창질당하는 것을 본 유럽 전역의 금수저들은 자신들도 같은 꼴을 당하는 일이 없고자 프랑스 죽창맨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혁명 정신으로 무장한 죽창맨에게 금수저 따까리들은 한낱 꼬치구이에 불과했다. 이후 나폴레옹이란 전쟁사 희대의 천재[4][5][6] 가 등판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고 유럽 대륙의 네임드 국가들을 하나하나씩 박살내며 1804년 속칭 자유주의 황제로 즉위했다. 그러나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고 스페인 게릴라들에게 발목을 잡히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국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 전투 패배로 지중해 한복판에 유배되었으나 극적으로 탈출해 파리에 도착[7], 다시금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과 블뤼허가 이끄는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대서양 저편의 세인트헬레나[8] 로 유배당해 그곳에서 뒤졌다.
나폴레옹 이후 유럽은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와 유럽 각국 틀니딱딱충들의 합작품인 빈 체제가 개막했다. 이로인해 프랑스에는 왕정복고가 이루어져 한동안은 루이 씹팔세와 샤를 씹새가 프랑스를 다스렸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으로 쌓은 죽창 정신은 건방진 국왕들을 냅두지 못했고 결국 7월 혁명(1830)으로 샤를 씹새를 쫓아냈다. 이후 그나마 시민들에게 관대해 보였던 루이 필리프를 프랑스 국왕으로 옹립했으나 얘도 1848년 2월 혁명으로 쫓아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프랑스의 자유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또한 이 두 혁명은 유럽 전역의 혁명에 영향을 주며 빈 체제를 박살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가 등판해 프랑스 최초의 머통령이 되었으나 1852년 구국의 결단으로 공화정을 엎어버리고 제2의 보나파르트 제국을 탄생시켰다.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의 근대화를 주도하고, 크림 전쟁과 이탈리아 통일전쟁에 개입하면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장시켰지만 이 과정에서 유럽 각국에게 어그로를 끈 나머지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켰다. 결국 이를 지켜보고 있던 비스마르크가 보불전쟁(1870-1871)으로 프랑스를 박살냈고, 나폴레옹 3세는 폐위되었다. 그때 프로이센이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갓-독일제국을 선포한 것이 히틀러 에펠탑 인증샷과 함께 프랑스사 양대 굴욕으로 꼽힌다.
보불전쟁 이후 프랑스는 독일에 밀려 유럽대륙에서 콩라인이 되었지만 1차 세계대전 전까지 벨 에포크(프랑스어로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라 불리는 유럽의 최전성기 속에서 번영을 누렸다. 프랑스는 2차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랜드마크인 에펠탑도 이 시기 만들어졌다. 그리고 식민지는 서아프리카의 대부분과 인도차이나 등지로 영국 다음가는 제2의 식민제국이었다.
현대[편집]
그러나 '좋은 시절'은 1차대전(1914-1918) 발발과 함께 끝나버리고 말았다. 1차대전 시기 프랑스는 독일에게 초반에 좀 얻어맞기는 했지만, 정신 차리고 연합군의 탱커노릇(2차대전의 소련과 비슷)을 하며 결국엔 전쟁에서 승리했다. 비록 이런저런 삽질은 좀 있었지만, 1차대전의 프랑스는 연합군의 주축이었고 독일을 털어먹은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2차대전(1939-1945)에서 희대의 흑역사를 찍게 된다. 6주만에 독일에게 정ㅋ벅ㅋ당했다... 대육군이니 뭐니 딸딸이치더니 아르덴 숲 우회한 만슈타인이랑 제대로 쿵 싸워보지도 못하고 쫄아서 서렌쳤다 ㅋㅋㅋㅋㅋ 개랑스 ㅁㅌㅊ?
점령당한 프랑스에는 괴뢰정부인 비시 프랑스 정부가 세워졌고 이에 맞서 드골의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가 런던 응딩이 뒤에 숨어있다가 천조 쏘련놈들이 나치를 줘패기 시작하고 독일이 슬슬 밀리자 귀신같이 천조가 다해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 파리를 회복하고 2차세계대전 승전국의 말석에 자리하는 데 성공했다. 진짜 2차대전 내내 한거라고는 영국 응디 뒤에 숨어서 방송하고 레지스탕스 제외하면 좆도 없는 병신 거품새끼들이 운은 더럽게 좋았다. 소련은 2천만이 죽어나갔고 미국은 연합국 서포팅+딜러 해줬고 영길리는 크릭스마리네 루프트바페라도 줘팼지 이새끼들은 ㄹㅇ 한게없다. 참고로 중국은 쪽숭이 육군 1/3을 대륙에 묶어놓았다.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는 많은 혼란을 겪는다. 좌우 가릴것없이 각종 식민지가 독립해가는것을 억지로 막으려다 베트남과 알제리에서 참교육 당했고 영국 이스라엘이랑 짜서 수에즈 쳐들어갔다가 빡친 소련과 미국에게 개굴욕을 당했다. 전비지출로 경제역시 시궁창이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온갖 짓거리를 해서라도 식민지를 독립시키지 않으려고 했기에 지구 곳곳에 섬 지방 등 지금까지 쥐고 있는 영토들도 있다. 이런 곳들은 핵실험 때 핵실험장 등 잘 써먹음. 또한 중도파 내각이 알제리를 포기하려하자 극우파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똑같은 부류로 여겨졌던 드골에게 참여를 제의했는데 드골은 걍니애미를 외치며 독단적으로 정부를 전복시켰고 극우파도 배제시켰다. 알제리를 독립시킨 이후 드골이 '신대통령제' 라 불리는 독재라 해도 이상하지않은 강력한 권력으로 10여 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지만, 68혁명을 계기로 그 이후 지금과 같은 프랑스의 정치가 정착되었다. 그리고 이런 철권통치 시기에 교육 등에서 강력한 프랑스어화 정책이 펼쳐졌다.(즉 파리 근교의 일드프랑스 지역에서만 현대 프랑스어가 쓰이고 각 지역별로는 지역어가 있었는데, 교육이나 행정등에서 강한 프랑스어화 정책을 펼침)
냉전 시기의 프랑스는 미국, 소련과 구별되는 독자적 외교노선을 천명하며 독자적으로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때 지들이 먼저 성공해서 그런지 핵무기 개발중이던 영국을 꼰질렀다. 혐성 수준이 보인다. 독자노선을 천명해서 그런지 제3세계에 무기도 눈치 안보고 잘 팔아먹었다. 그리고 영국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EU)의 중심국 역할을 하며 지냈으나 90년대 독일 통일 이후로는 경제적 영향력에서 독일한테 서서히 밀리다가 브렉시트로 영국이 EU에서 나 나가요 시전하니 브렉시트 이후로는 사실상 독일이 실권자고 프랑스는 이제 얼굴마담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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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 네임은 카를로스 마그누스. 유럽 왕족에 카를~칼~샤를~하는게 다 이 인물의 이름에서 가져온거다. 한국어 사투리처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선생님'을 호남에서'선상님' 혹은 전라남도 서남부로 갈 수록 '슨상님'으로 변형되 읽거나 '야' 혹은 '아'를 경상도에서 '마'하며 사투리로 변형되는 것과 비슷한 이지다. 카를로스 마그누스를 기니까 프랑스식으로 또 줄여읽어서 프랑스어로는 샤를마뉴.
- ↑ 자기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해서, 신자가 아닌 이상에야 현대인들이 보면 '??????????????'가 나오긴 하는데, 아무튼 졸라 잘싸운건 사실이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도 이 점을 두고 잔 다르크를 존나 깠다.
- ↑ 프랑스 내의 칼뱅파 신교도를 일컫는다. 참고로 같은 부류를 영국에서는 퓨리턴(청교도(, 네덜란드에서는 회센(고이센)이라고 불렀다.
- ↑ 이전 서술에서는 나폴레옹이 프랑스판 항우라고 했는데, 나폴레옹이 그런 말을 지하에서 들었으면 지옥에서 그랑다르메를 이끌고 올라와 기뮤식과 편집자를 밟아버렸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법전 편찬, 정교분리와 능력 위주의 관료제 확립, 그랑제콜 제도 도입, 지적법 제정 등의 업적도 있는데, 항우는 "글은 자기 이름 쓸 정도만 알면 족하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댕청했던데다가, 병법공부도 중간에 때려쳤으며, 18제후왕 분봉으로 중국을 헬게이트 춘추전국시대로 돌려놓으려 했다. 다시 말해 유럽에 자유주의 열풍을 몰고 온 나폴레옹과 중국에 일시적으로 복고주의 열풍을 몰고 온 수꼴 항우는 클라스가 다르다.
- ↑ 나폴레옹과 항우의 공통점은 존나 잘 싸웠는데 지 능력 잘난 맛에 살아서 외교적 능력이 개 상병신이었다는 점이다. 전유럽이 그의 적이었는데 아무리 개깡패라고 해도 버틸 수가 있나. 물론 전유럽이 그와 정면대결해서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긴 했지만 어차피 나폴레옹은 순간이동능력자도 아니고 단 한사람이라는게 패인이다. 누가 총대메고 나폴레옹 바짓가랑이 잡고 있을 동안 나머지 신나게 나폴레옹 부하때려잡으면 된다는 전략 앞에선 나폴레옹도 답이 없었다. 유방이 항우를 잡은 것도 이와 비슷한 전략이었으므로 나폴레옹과 항우는 비교대상이 된다. 뭐 나폴레옹 법전같은 걸로 나폴레옹이 나은 인간이라고 누가 써놨지만 항백이나 카롤린 뮈라같은 집안내부의 적이라든가 부하들의 배신들을 보면 항우와 나폴레옹은 무너져내려가는 모습이 비슷하다.
- ↑ 위 글을 쓴 나폴레옹 빠돌이 새끼는 21세기에도 영웅후빨을 하고 자빠져 있다. 역사적 인물, 특히 정복자를 미화하고 후장써킹하는 모습은 후진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저 새끼가 나폴레옹 시대 때 프랑스 태어났으면 징병되서 라인배틀하다가 대포맞아 팔다리 짤려도 황제폐하 만세하고 뒤질 새끼다.
- ↑ 이때 나폴레옹의 탈출과 복귀 과정을 보도했던 프랑스 언론 '모니퇴르'의 기사 내용은 서울대 논술문제에도 나올 정도로 가히 곡학아세, 태세전환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나폴레옹이 처음 엘바를 탈출할 때는 그를 살인마로 묘사했으나 점점 그를 묘사하는 논조가 우호적으로 바뀌더니 그가 파리에 도착하자 황제 폐하를 외쳤다고.
- ↑ 이 섬은 영국령이지만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곳에 한해 프랑스령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