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술
조무위키
경고. 이 문서는 머한민국 군머와 관련된 것, 또는 머한민국 국군 자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머한민국 국군에 관한 내용이나 군필자들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 군사 보안, 군사 기밀 내용을 썼다가는 기무사 내지 국정원에 끌려가서 코렁탕을 처먹을 수 있으니 조심합시다. 다른 국가 군머나 군머를 연상하게 하는 것들은 틀:밀덕을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
Operational Art
정의[편집]
전략 지침에서 제시된 군사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일련의 작전을 계획하고 실시하며, 전술적 수단들을 결합 또는 연계시키는 활동.[1]
개요[편집]
전략과 전술사이의 개념.
전략 지침에서 제시된 군사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일련의 작전을 계획하고 실시하며, 전술적 수단들을 결합 또는 연계시키는 활동.
상세[편집]
한 마디로 주도권 싸움.
쉽게말하면
전략이 무엇을 '왜' 해야하는지 규정하고,
작전술은 무엇을 '언제', '어디서' 할지를 규정하고,
전술은 무엇을 '어떻게' 할 지를 결정한다.
스타를 예로들면
2:2 매치에서
상대방을 누굴 먼저 조질지 결정하는게 전략 수준의 결심단계,
초반 러시를 갈지, 안정적인 멀티를 먹어가며 중후반 한타싸움으로 갈지를 정하는게 작전술 수준의 결심단계,
정찰로 상대의 테크를 확인해 빌드를 타고 유닛을 뽑아서 드롭을 갈지 한타를 갈지 멀티부터 뽀갤지 결정하고 실행하는게 전술 수준의 결심단계라 할 수 있다.
기원[편집]
작전술이라고 명확한 정의가 이루어 진것은 2차대전 중 소련군에 의해서다. 하지만 그 기원을 쫓으면 나폴레옹 전쟁시기까지, 정확히 나폴레옹의 전쟁수행에서 드러난다.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은 더이상 과거와 같이 한,두번의 회전으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지 않게 됐음을 증명했다. 대규모 병력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과거와는 다른 연속적인 대규모 전투로 귀결됐고, 이 상황을 규정하기 위해선 이전까지의 군사학 이론으로는 부족했다. 특히 나폴레옹은 그 자신이 작전술의 개념을 창안하지 않았음에도 기동과 전장선정, 전투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적극적으로 연출했다는 점에서 작전술의 아버지라고 해도 될 것이다.
나폴레옹은 그의 대육군(그랑다르메)를 휘하 원수들에게 나눠서 운용을 했고, 전장의 주도권을 쥐기위해 군단들을 유기적으고 기동시켰으며 그가 결정한 전장에서 나눠진 병력을 집중, 전투지역에서 만큼은 상대보다 수적우위를 가질 수 있게 노력했다.
즉 작전술의 주요구성 요소인 기동, 보급, 전장선택[2]을 모두 갖춘것이다.
그러나 위의 역사적 사건들은 군사학의 역사에 크게 영향 끼쳤음에도, 18세기와 19세기까지는 작전술의 개념이 등장하진 못했다.
등장[편집]
작전술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고 연구한 것은 소련이다. 소련은 특유의 광대한 지역, 그리고 이런 자연조건에 따라오는 광범위한 작전 범위를 가진다. 이는 대규모 전투의 연속 개념에서 시공간적으로 유의미한 전장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위한 기동과 계획이 필요해짐을 의미한다. 적백내전을 통해 이런 개념을 포착한 소련군 지휘부는 기존의 전략-전술 사이에 끼어넣을 작전술의 개념을 창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