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균
조무위키
놀랍게도 사직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꼴리건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제구력이 엄청난 투수였다. 1978년 대통령기대회에서 실업팀도 무서워한다는 연세대 최고의 투수 최동원과 동아대의 임호균의 대결. 연장 14회까지 해가 지도록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경기는 '0대 0'으로 팽팽하게 버티다가 1박 2일 경기를 해서 겨우 연세대가 승리한 경기가 있었다. 그정도로 제구력으로 일급 투수가 된 케이스였다. 본인말로는 선천적인게 아니라 다 연습이라고..
삼미 시절에는 너구리 장명부를 제외하면 가장 잘 던지는 투수였다. 삼미 타선을 가지고 12승을 올리며 장명부와 삼미의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하지만 장명부가 투수조 리더 노릇을 하던 임호균을 고깝게 봐서 구단 윗선에 찔러 임호균을 롯데로 트레이드 시켜버린다. 4-1 트레이드에 포함되서 결국 임호균은 떠났고 1984년 삼미는 또다시 꼴찌를 하게 된다.
롯데로 넘어온 임호균은 연세대 시절 18회 경기로 붙었던 최동원과 다시 원투펀치를 이루며 10승 9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최동원과 함께 롯데의 둘뿐인 10승 투수였다. 한국시리즈에선 최동원의 연투가 큰 이슈가 되었지만 임호균도 3경기를 나왔고 6차전에선 1이닝만 더 막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는것을 팀의 승리를 위해서 직접 자진 강판하였다.
이후 1986년까지 롯데에서 뛴 뒤 고향팀 청보 핀토스로 귀환하여 또다시 에이스 노릇을 하다가 태평양 돌핀스로 팀 이름이 바뀌고 1989년 은퇴를 준비한다.
여기서 가네바야시 세이콘의 졸렬한 인성을 보여주는 임호균 각서 파동이 터진다. 노장을 존나 좋아하는 세이콘은 임호균을 잔류시켜달라고 태평양 수뇌부에게 징징거렸고, 구단에서 선발 5승이란 각서를 요구하자 세이콘은 직접 각서를 쓴다. 그런데 이새끼는 임호균을 단 한번도 선발로 내지 않았다.
사실 세이콘은 삼성에서 이미 감독직을 제의받은 상태였고, 사임하긴 그러니까 직접 짤리기 위해서 이지랄을 하고 삼성으로 떠났다. 당연히 임호균만 병신 만들어두고 강연같은데 나오면 자기 감독직을 걸고 막았다고 언플하다가 결국 임호균 본인의 입으로 추악한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은퇴이후로는 토론토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LG 신바람 야구에서 2군 코치를 담당했다. 1998년 삼성에서 투수코치를 맡아 정현욱을 발굴한뒤 다시 미국으로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하러 떠난다. 지금은 "임호균 베이스볼 아카데미&클리닉"을 운영 중이며, 가끔 언론에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