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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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인천을 본관으로 한 한국의 성씨. 본래 허황옥의 집안 허씨 및 김해 김씨다.
755년, 아찬으로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녹산이 일으킨 반란때 성도로 도망갔던 당현종을 보호한 공으로 이씨성을 하사받은 허기(許奇)를 득성조로 본다.
허기는 당현종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758년, 신라로 귀국하여 소성백(邵城伯)에 봉해지고 식읍 1,500호를 받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이허기의 10세손인 이허겸의 딸이 김은부에게 시집을 가 세명의 딸을 낳았고 이 세명의 딸이 여요전쟁이후 현종과 결혼하면서 거물가문으로 벌크업했다. 관향인 인천이 잠시 경원부(慶源府)로 격상되자 자신들을 경원 이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자겸이라는 핵폐기물때문에 첫번째로 풍비박산나고 쌍놈의 집안으로 격하되었다. 이후 경원부가 인주로 격하됨에 따라 인주 이씨로 이름을 바꿨고 태종시기 인주가 인천으로 개명되면서 인천 이씨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수백년뒤 리승엽이라는 빨갱이새끼때문에 부관참시당하면서 이자겸에 이어서 두번째로 풍비박산났다.
시중공파(侍中公派), 공도공파(恭度公派), 쌍명재파(雙明齋派), 충강공파(忠剛公派)의 4개 분파가 있었다고 한다.
김해 김씨, 허씨와는 형제지간이라 일반적으로 서로간의 통혼은 까다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