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카이 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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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제29대 내각총리대신 이누카이 쓰요시 犬養毅 | Inukai Tsuyosh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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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일본 제국 |
출생일 | 1855년 6월 4일 |
출생지 | 빗추국 카야군 가와이리촌 (現 오카야마 현 오카야마시 키타구) |
사망일 | 1932년 5월 15일 (76세) |
학력 | 게이오기주쿠 대학(중퇴) |
정당 | 입헌정우회 |
소속 | (1931년 12월 13일~1932년 5월 15일) ←이전 내각총리대신다음 내각총리대신→ |
개요[편집]
일본 제국 제29대 내각총리대신.
일본 제국의 마지막 온건파 총리였다. 이 양반이 죽은 이후로 일본 제국은 군부에게 먹히게 되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폭주하게 된다.
생애[편집]
총리 이전[편집]
신문 기자 출신으로 상당히 온건파 정치인이었다. 총리가 된 것은 70이 넘은 틀딱이 되어서야 됐지만 정치 경력이 오래되어서 당시 내각에서 무시못할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제국은 군부가 폭주하고 있었고 군부가 정부 허락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등 막장 그 자체였다.
당시 민정당 출신 총리였던 와카쓰키 레이지로가 막장 그자체였던 내각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자 빡쳐서 사퇴하게 되고 입헌정우회로 정권교체가 되었다. 그리고 원로들은 당시 정계에서 영향력이 높지만 온건파였던 이누카이 쓰요시를 총리로 앉혀서 군부 견제좀 하라고 시킨다.
총리 시절[편집]
이누카이는 원로들의 바람대로 군부를 상당히 통제했다.
그런데 취임한지 한달도 채 안되서 이봉창 의거가 터진다. 덴노를 위험에 빠트리게 했다는 이유로 이때 사임하려고 했으나 덴노가 사임을 반려했다. 이때 사임했으면 역대 최단기간 총리가 될 수 있었다.
당시 입헌정우회는 우익정당이었기에 참전 여론이 매우 거셌지만 이누카이만큼은 온건적이었고 만주국을 자치국으로 만들고 중화민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통치하되 일본은 경제권만 쥐는 형식으로 합의를 보려고 했다.
암살[편집]
이누카이는 만주 지역을 일단은 중국 영토로 인정하지만 자치 정부를 두고 일본의 괴뢰정부로 만들고 경제권만 거머쥐어서 최대한 피를 안보고 제국주의적 이득을 보는 노선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군벌들이 이에 반발하였고 이렇게 우유부단한 정부에게 정권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일본 제국 해군 장교들과 육군 생도들이 주동하여 5.15 사건을 일으킨다.
이 당시 해군 장교들은 정문과 후문으로 들어왔는데 정문으로 들어온 해군 장교가 먼저 권총을 발사했는데 불발이 되었다. 깜짝놀란 이누카이가 "총은 얼마든지 쏠 수 있으니까 말로 하자"며 응접실로 데려갔지만 후문으로 들어온 장교가 "문답무용, 발사!"라면서 그대로 쏘아죽였다.
참고로 이날 이누카이는 찰리 채플린을 만나기로 예정되어있었는데 해군 장교들은 찰리 채플린도 쏴죽이려고 했었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은 살아남았다.
여담[편집]
- 이누카이가 암살당한 이후 군벌들은 폭주하게되었고 2.26사태를 일으키고 대본영이 설치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개막장짓을 하다가 핵 두방 쳐맞고 참교육당한다.
- 이누카이가 암살당한지 딱 90년 뒤 또 다른 일본 총리가 암살당한다. 이번에도 해군 장교 출신이 범인이었다. 이쯤되면 일본 해군에는 왜구의 본능이라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