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월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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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있으면 주민, 공무원, 높으신분등 모두에게 해롭다.

개요[편집]

越境地

특정국가, 행정구역에 속했지만 본토와 떨어져서 다른 국가, 행정구역에 속한 지역을 의미한다.

한국 네티즌들에게 알려진 월경지로는 근대까지 구라파전역에 산재했던 월경지와 1906년 통감부가 실시한 월경지정리정책과 부군면 통폐합이전까지 한반도 전역에 산재했던 월경지가 있다.

예시[편집]

고려 + 조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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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충청도의 경우 대부분의 고을의 지도가 깔끔하거나 있어도 견아상입지, 실질월경지 뿐이었지만 홍주가 쩔어주는 수준의 월경지를 가지고 있었다.[1]

고려중기부터 나름 이름값되는 도시들은 모두 월경지에 견아상입지까지 추가되어 지도가 매우 더러웠다. 특히 양반사족의 핫플레이스였던 하삼도가 가장 심했다. 그 이북지역은 수원[2], 춘천, 안주등을 제외하면 없었다.

생성동기[편집]

월경지는 다음과 같은 동기로 많이 생성되었다.

  • 수령을 파견하고 땅따먹기하다 생김 : 고려중기이후 중앙정부가 속현에 수령을 파견할 경우, 그 지역의 읍세를 확장시키기 위해 다른 지방을 같이 편입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놈의 읍세 때문에 바로 인접한 동네가 아니라 쌩 딴판인 곳이 월경지로 흡수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172년 수령이 파견된 이후 예천군의 읍세 확장을 위해 편입된 다인현(現 의성군 다인면)이 있다.
  • 수령을 파견했다가 주현쪽이 월경지가 됨 : 명종대나 여말선초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벌크업할 때, 많은 속현이 수령파견으로 인해 주현으로 독립했다. 그런데 수령을 이런저런 이유로 생활권을 반영하지 않고 파견시키다보니

A(주현) B(A의 속현) C(A의 속현)

A(주현) B(수령파견하면서 주현승격) C(A의 속현)

A(주현) B(주현) C(A의 속현)

이런 로직으로 인해 속현이 주현의 월경지로 남는 일이 많아졌다. 조선에서 많은 똑똑이들이 이거 너무 좆같으니까 시정 좀 하자고 계속 노래를 불렀지만 정부는 귀찮아서 안하고 주민들은 그냥 옛날처럼 가자고 지지를 안하고, 그렇다고 막 건들자니 골때리는게 너무 많고 해서 구사부곡[3] 과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그대로 월경지로 남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안동 내성면, 춘양면, 재산면, 소천면[4], 춘천 기린면[5] 이 있다.

  • 조정에서 억지로 끼워붙임 : 고려시대 역, 항구, 주요 창고, 성등 국가 주요 시설을 관리할 때, 바로 인접한 지역의 경제력이 병신이면 다른 지방에 억지로 편입시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남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창락역(現 풍기읍 창락리)을 바로 인접한 기주(現 영주시 풍기읍)가 아니라 순흥에 편입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 주민이주 : 주민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고을로 이주를 했다 → 정부가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한다 → 이 때 그 지역 주민들이 우리가 원래 살던곳에 넣어달라고 요구한다 → 정부는 이 요구를 들어준다의 로직으로 형성된 월경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진도의 주민들이 왜구의 침공을 피해 잠깐 눌러앉았다는 이유로 진도로 편입된 명산촌(現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태간리, 내동리, 월송리), 월량지(現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삼촌면(現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창리, 신흥리)가 있다.

바를러[편집]

이 분야의 레전드. 벨기에네덜란드의 국경 중앙에 있는 도시인데, 국경을 설정할 때 도시의 있는 건물의 주인+주민들이 꼴리는 대로 건물+소유지의 국적을 선정했기 때문에 니방이 벨기에고 부엌이 네덜란드에 속한 기현상을 맛볼 수 있는 어마무시한 곳이다.

최근엔 이 국경에서 어그로를 끌기 위해 들어온 짱깨새끼들 때문에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정서가 퍼졌다고 한다. 시발...

  1. 홍성찍고 예산찍고 나오는 당진에도 합덕읍, 신평면이 홍주의 월경지에 속했다.
  2. 안성천 중류(지금의 오산평택경계지역)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월경지로 정리하고 싶어도 못했다...
  3. 본래 경주의 속했다. 그러니까 구사부곡의 주민들이 관아를 찾아갈려면 영천찍고 북안면찍고 경주까지 가야했다는 소리다. 때문에 지역 유림들이 가까운 자인현에 구사부곡을 편입시켜달라고 여러차례 상소를 했고, 결국 조정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구사부곡을 자인현 하북면에 편입시켰다.
  4. 각각 안동에 속한 내성현, 재산현, 춘양현, 소천부곡이었다. 그런데 똑같이 안동의 속현이었던 봉화가 1390년 주현으로 독립하면서 안동의 월경지가 되었다.
  5. 기린면의 전신은 춘천의 속현이었던 기린현이다. 1143년 홍천현이, 1389년 인제현이 주현으로 독립하면서 춘천의 월경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