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오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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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뤼 문서뤠서 설명하른 대상른 북괴롬덜과 밀접한 관계가 맀습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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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琪燮

1903년 ~ ?

초창기 북괴빨갱이.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1925년부터 사회주의운동을 했던 골수 빨갱이로 1945년 8.15 광복직후 조선공산당 함경북도당 창설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1948년 노동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했고 함경도 빨갱이들의 반인반신으로 군림, 국내파의 일원이 되어 같은 국내파였던 최창익, 남로당파의 박헌영, 연안파김두봉, 김무정, 소련파허가이등과 함께 애미쳐뒤진 혹부리우스의 최고 정적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6.25 전쟁이후 1956년 노동당 중앙위원, 수매양정상에 발탁되었다가 8월 종파사건시기 남로당파 + 국내파가 쓸려나가면서 1957년 9월 평안남도 중화군 생산협동조합 부위원장으로 티어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1958년 3월에 숙청되었다.

저당시 숙청당한 정치인들은 어지간하면 기록말살형역사왜곡까지 스까되어서 후세의 북조선 린민들은 김혹부리우스가 주작한 이미지로 기억하기 마련이지만, 이새끼가 함경도의 반인반신으로서 혹부리우스를 존나게 괴롭히고 혹부리우스가 이새끼를 깔때부터 '함경도는 지역주의가 너무 강하다'는 발언을 하고 숙청이후 함경도반역향급 낙인을 찍어버려 지역차별을 대놓고 조장했기 때문에 함경디언들은 아직도 그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다고 하며 함경도 출신 탈북자들이 그를 빠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만갑인가 모란봉클럽인가 탈북자들이 나오는 TV프로에서 북괴의 슨상님이라는 제목으로 이새끼에 대한 방송을 한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