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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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3세가 그냥 똥수저들하고 친해서 찍혔다면, 이 사람은 명확하게 파시즘을 혐오했다.
근데 당시 교황청은 무솔리니하고 싸바싸바한 덕에 바티칸 시국을 차린 직후라서 파시스트들하고 친밀햇기에, 그런 파시스트들을 혐오한 바오로 6세를 역시 빨갱이 취급했다.
하지만 소심하고 느긋한 성품에 비해서 눈썰미가 있어서 교황청 내부의 '어른의 사정'을 제법 꿰고 있었고 또한 요한 23세를 비롯해서 은근슬쩍 자기 편을 만드는 능력이 있어서 결국 요한 23세 선종 후에 후임 교황 자리를 거머쥔다.
요한 23세가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무탈하게 마무리지은 게 공적.
근데 모로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진짜배기 빨갱이인 '붉은 여단' 테러리스트들한테 납치당하자 세간의 비난도 무시하고 살려달라고 빌었는데 이 놈들이 씹고 모로를 죽여버렷고, 이 일로 충격받아서 선종. 나중에 이 빨갱이 새기들은 지들이 편먹어야 할 좌파 노동운동가도 테러해 죽였다가 지지세력 싸그리 잃고 공권력으로 소탕된다.
후임 교황은 요한 바오로 1세였는데, 교황 되고 1년도 못 채우고 선종해서 새로 뽑힌 게 과거 지구촌에서 가장 유명햇던 요한 바오로 2세.
요한 23세와 이 사람 대에 들어서면서 가톨릭은 보수 우파 세력보다는 진보 좌파에 더 가까워지게 되고 지금의 교황의 영향력의 방향이 바뀌는 계기가 된다. 원래 교황은 교황이라는 명칭 자체에서 나오는 종교의 수장으로써의 권위를 바탕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끼쳤는데 바티칸 교황청 개혁 이후부터는 도덕성과 성품, 인권 보호를 바탕으로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