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무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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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는 62살 먹고 죽을때까지 60번 이상의 일기토를 벌였다고 한다. 근데 이 60번의 칼싸움은 다 20대에 한 일.
그러니까 팔다리 하나는 우습게 날라가고 삐끗하면 모가지인 그 진검승부를 약 10년동안 도장깨기 식으로 사무라이를 수십명이나 족쳤단거다....
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실상은 관우보다 더 신격화된 뻥튀기 맨이었다.
근데 상대방은 칼싸움도 수준급인 사무라이에 진짜 칼인데 자기는 목검들고 싸웠다. 근데 머가리 뽀개면서 잘만 죽이고 다녔다. 사기캐다.
ㄴ하지만 실제로 60번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근거는 지가 쓴 PR일기장 외에는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허풍 떤 내용과 요시오키가문의 내용이 완전히 다르기까지 하다. 이 양반 출세에 목말라 pr한 것 치곤 출세도 제대로 못하고 녹봉도 최저에 감장 하나 못받았다. 잘난척 한 것에 비해 실제로 유명 검호와 싸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비슷한 경우로 DK.YOO가 있다. 말빨 쩌는데 검증은 하나도 못함
중국쪽 문서 편집할땐 한자 잘 쓰고 다녔는데 일본어는 잘 모른다. 이해바람
어릴적[편집]
사실 이 인간에 대해서 기록은 많은데 다들 믿을만하지가 못하다. 오륜서 이외의 자료는 걸러듣도록 하자.
심지어 자기가 쓴 오륜서에도 과장이 들어갔단 얘기가 있다. 그냥 아무것도 믿지 마라.
하이튼 이 인간의 나이를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칸에이20년 60세"라는 한 줄 뿐인데 연표를 거슬러서 60년 전으로 돌리면 출생년도가 텐쇼우(天正) 12년(1584년)이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랑 맞짱뜨던 해인데, 그럼 일본 통일하기 직전이네? 암튼 그렇다.
무사시의 조상은 하리마(璠磨) 호족이었다. 할아버지인 히라타 쇼겐(平田將監)은 검과 짓테(十手)를 기막히게 잘 썼으며 미마사카의 다케야마(竹山) 성주인 신멘이가노카미(新免伊賀守)에게 벼슬을 하고 상으로 주군의 성인 신멘을 받았다. 그 때부터 히라타 집안은 신멘 집안이 됐다.
이게 짓테. 에도시대 공무원들이 갖고다닌 호신용품이다. 칼을 막는 도구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인 무니사이(無二齊)가 무사시의 아버지이다.
왜인진 모르지만 무니사이는 벼슬을 때려치고 미야모토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그의 아들 신멘 무시사가 미야모토 마을의 무사시다.
여담으로 무사시의 아명은 벤노스케(辯之助)라고 한다.
어렸을 때의 무사시는 아버지의 검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뭐 아빠는 왜 칼을 그따구로 휘두릅니까? 그런식으로 말하던가 했겠지.
애비가 참다참다 아들한테 이쑤시개를 던졌다고 한다. 뭐 우리가 이쑤시개 던져봤자 휙휙 돌다가 툭 맞겠지만 사무라이가 던진 이쑤시개는 맞으면 죽나? 아무튼 무사시는 얼굴을 돌려서 피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1~2학년 나이에.
그걸 피하자 애비는 던진걸 미안해 하긴 커녕 더 화나서 옆에 있던 창을 냅다 던졌다. 근데 이것도 피했다.
아니 지 애를 죽일라고 창을 던지는 애비나 애비 속을 어떻게 긁었길래 남도 아니고 지 자식에게 창을 던지게 하는 아들이나. 그 부모에 그 자식이다. 에휴
죽진 않았지만 애비는 여덟살쯤 된 지 자식한테 그걸 미안해 하긴 커녕 집에서 쫒아냈다. 인성수준
쫒겨난 무사시는 외삼촌이 있는 절에 가서 살게 되었다.
13살때 무사시는 하리마에서 아리마 기헤에(有馬喜兵衛)와 첫 일기토를 떠서 이겼다.아리마가 몇 살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그는 싸움좀 한다는 사무라이 아리마 부젠노카미(有馬豊前守)가문이었다.
기록엔 맞잡고 주먹질이나 하다가 무사시가 기헤에를 들어올렸다가 던진 다음 일어나려는 것을 목검으로 머가리를 내리쳤고, 기헤에는 피를 토하고 즉사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짜리가 목도 완력으로 사람을 죽였다니. 말이 되냐
이정도로 한가닥 하는 초6짜리가 등장했다면 저놈은 뭔 신흥강자인가 하고 주목할 법도 한데 이 때가 케이초우(慶長)원년(1596년). 그러니까 정유재란이 있던 해였다. 그러니 싸움 잘하는 초딩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았고 초딩이라곤 하나 고딩처럼 보였다고도 한다.
요시오카(吉岡) 가문과의 결투[편집]
21살 때 무사시는 교토로 가서 요시오카 가문과 세 번의 일기토를 맞붙었다. 이 싸움은 무사시의 기록엔 나오지 않지만 니텐기를 비롯해서 꽤 많은 기록이 있다.
암튼 요시오카 가문은 대대로 아시카가 쇼군(足利將軍)가문의 검술 사범을 맡아온 명문가 중의 명문가였다. 근데 예넨 얼마 안가 망한다. 애초에 그닥 명문가도 아니었다. 그냥 무사시를 치켜세워주고 싶으니 명문가라고 치자
첫 번째 싸움은 요시오카 세이쥬로(淸十郞)과의 일기토다. 장소는 교토 북쪽 렌다이노. 세이쥬로는 칼이고 무사시는 목검이었다.
무사시는 단 한 방에 세이주로를 빈사상태로 만들었고 구경왔던 제자들이 세이주로를 들것에 태워서 집까지 옮겨놨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덴시지로(傳七郞)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무사시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바로 신청한 당일. 무사시는 결투장에 늦게 나타났고 모두가 아는 시나리오대로 덴시지로의 머가리를 목검으로 단 한방에 박살냈다. 두개골이 깨졌는데 무사할리가. 즉사했다.
있는대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요시오카 가문은 세 번째로 무사시에게 도전하게 된다. 아까 털린 세이주로의 아들인 마다시 치로(叉七郞)를 선두로 한 수십명의 제자가 상대였다.
대망의 결투의 날, 결투의 시간. 요시오카 가문 측은 이번에도 지각하겠지 하면서 무사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무사시는 제시간에 나타나서 순식간에 여러명을 죽여버리곤 냅다 튀었다.
졸렬하고 치사하긴 해도 죽인 놈이 이기는거고 죽은 놈이 진 거지 뭐.
이 싸움 이후 무사시에 대해선 8년간의 기록이 빈다. 분명 쌈박질이나 하면서 돌아댕겼겠지.
사사키 고지로와의 결투[편집]
케이조우 17년(1612년) 부젠고쿠라(豊前小倉)에 나타난 무사시는 태수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밑에서 사사키 고지로와 다이다이를 뜨게 된다. 무사시는 아버지의 제자이던 나가오카(長岡)가 호소카와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다. 라는 사돈의 팔촌급 인맥으로 고지로와의 시합을 자청하고 나섰다.
태수 다다오키는 두 사람을 고쿠라에 있는 외딴 섬에서 승부를 겨루도록 했다. 섬 이름은 무코지마(후나지마)라고 한다. 시모노세키 앞바다에 떠있다고 한다.
근데 무사시는 한밤중에 run했다. 사람들은 쫄아서 튄거라고 생각하고 막 비웃고 있었다. 나가오카는 뭐지 하고 정신이 가출해 있다가 문득 "도망칠거면 왜 왔겠어? 시모노세키에서 배타고 섬으로 가려고 하나?" 하곤 시모노세키로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예상대로 무사시는 거기 있었다. 그는 나가오카 따까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써서 보냈다.
“ |
내일 아침 시합을 위해 제가 섬으로 타고 갈 배까지 내어 주신 점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오나 이제 고지로와 저는 적수가 됐습니다. 고지로는 태수님의 배를 타고 간다고 하는데 제가 나가오카님의 배를 탄다면 나가오카님께선 태수님과 척을 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씀을 직접 찾아뵙고 드려야 하지만 아마 들어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로 왔습니다. 내일 아침 여기 배를 얻어타고 무코지마로 건너가도 괜찮습니다. 시간을 맞출 수 있으니 그리 알아주십시오. |
” |
다음날 아침 무사시는 늦잠을 잤고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여관 주인이 걱정되서 "벌써8시임"하고 깨우고 있는데 사람이 와서 니 지각이라고 재촉했다. 무사시는 그제서야 일어나 세수를 한 다음 아침밥을 먹고 노를 깎아 목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사람이 왔다. 무사시는 겹으로 된 명주옷을 입고 수건을 허리띠에 꽂은 다음 그 겉에다가 명주옷을 걸치고 여관 알바가 노를 젓는 배에 올랐다.
10시가 넘어서야 배가 섬에 닿았다. 무사시는 무명옷을 벗고 허리에 차고있던 칼도 배에 내려놓고 목검 하나만 가지고 맨발로 배에서 내렸다.
물가를 좀 걷던 무사시는 허리에 꽂았던 수건을 빼서 머리에 둘렀다.
바로 근처에서 그 꼴을 지켜보던 고지로는 화가 있는대로 나서 소리쳤다. "왜 지각했냐? 쫄았냐?"
무사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지로는 더 화가 나서 칼을 뽑고 칼집은 바다에 던져버리고 무사시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무사시가 말했다. "고지로. 너는 칼집을 바다에 버린 순간 나에게 졌다."
고지로는 대꾸도 하지 않고 칼을 들어 냅다 내리쳤다. 이 아주 짧은 찰나에 무사시는 목검을 휘둘러 고지로의 머가리를 후려쳤다.
수건 머리띠가 끊어져 땅에 떨어졌고 고지로는 쓰러지며 무사시의 옷 무릎부분을 조금 잘랐다. 무사시는 다시 칼을 내리쳐 갈비뼈를 박살내 놓았다. 고지로는 이미 숨이 끊어졌고 입과 코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무사시는 잠시 고지로의 상태를 지켜보다가 멀리깨에 있는 같이 온 검사에게 꾸벅 인사하고선 목검을 허리에 차고 재빨리 배에 올라 튀었다.
방랑의 시절[편집]
그 후 51살이 되도록 20년동안 무사시가 한 게 없다. 짤막짤막한 이야기는 전해지지만 정확하게 이런걸 했다! 하고 쓸 만한게 없달까.
하지만 오와리(尾張)와 이즈모(出雲)에는 잠시 머물렀던거 같다. 이 두 도시에 무사시의 검술인 니텐이치류가 퍼져있는것도 그런 이유에서일수도 있다.
고지로와의 승부 2년 후, 이른바 오사카 후유노진(大阪冬の陳)이 있었다. 이 무렵 무사시는 낭인을 대대적으로 모집하던 히데요시에게 붙었다고도 알려졌으나 기록은 없다. 확실한건 검술 승부는 한 적 없다는 것이다.
말년[편집]
칸에이17년(1640년) 2월 겨울. 무사시는 히고의 호소카와 다다토시에게 초빙되어 객원 자격으로 구마모토로 향했다.
호소카와는 위에도 한 번 나왔다. 고지로와 무사시의 싸움을 주선해준 호소카와 다다오키. 그의 아들이 호소카와 다다토시이다.
도쿠가와 막부는 칸에이 9년 이 호소카와 다다토시를 고쿠라에서 히고로 발령했는데 여기엔 꽤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원래 히고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영지였고 구마모토성은 기요마사가 7년동안이나 공들여 쌓은 성이었다. 기요마사가 죽은 후 막부는 갖은 트집을 잡아 땅을 몰수했고 위협적인 존재였던 다이묘(大名)중 우두머리였던 가토 집안을 박살낸 다음 꽤 믿을만한 다다토시를 여기로 보냈다.
그리고 무사시가 명군으로 이름 높던 다다토시 밑에 기꺼이 있었음은 그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 |
1. 나는 여태껏 벼슬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나이도 많고 병도 있어서 유메노 키보노 젠젠이지만 출정하실 때 나도 같이 가면서 쓸 수 있는 갑옷과 타고 갈 말이라도 한 필 있을 신분이면 좋습니다. 제겐 처자도 없고 몸은 늙었으니 집이나 가재도구도 필요 없습니다. 2. 젊었을 때부터 전쟁에 여섯 번 참가했습니다. 그중 네 번은 나를 앞서 나가는 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좋은 대우를 받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3. 무구 제조법에 관해선 여러 가지 싸움터에서 쓰일 것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4. 때에 따라 나라를 다스림과 같이 하셔도 옳은 줄로 압니다. 이상은 젊어서부터 마음에 두고 수련해온 터여서 물으신다면 답신할 수 있습니다. 칸에이 17년 2월 미아모토 무사시 |
” |
이 편지에서 그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그 후 다다토시와 무사시는 아주 친하게 지냈다.
이듬해 2월 다다토시의 분부로 무사시는 병법 35개조를 써서 이를 바쳤다. 오륜서보다 먼저 니텐이치류를 요약한 것이다.
그런데 이걸 받고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다다토시가 픽 죽어버리고 말았다.
주군의 뒤를 따라 19명이나 순사(殉死)하는 지금 기준으로는 아주 미친 사건도 터졌다. 하지만 무사시는 이때 죽진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있는대로 먹고 얻은 친구를 잃은 무사시는 심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제자들에게 병법(말만 병법이지 사실상 개인수양이다)을 가르치는 것 외엔 세상을 등지고 그림, 조각, 다도등에 전념하며 인격 수양에 매진했다.
한 2년쯤 또 지났을까. 무사시의 병세가 악화되는 듯 했다. 그때부터 무사시는 구마모토 교외 서쪽 3리쯤에 있는 긴포 산(金峰山) 서쪽의 운간사(雲巖寺) 동굴에서 좌선수행을 시작했다. 칸에이 20년부턴 예불을 드리기 시작하면서 오륜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근데 상식적으로 한겨울에 동굴속에서 건강도 나쁜 노인이 혼자 살면 당연히 몸이 안좋아지지.
결국 쇼호 2년(1645년)봄에는 손발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1645년 5월 19일 마침내 무사시는 세상을 떠났다. 유언에 따라 시체는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채로 장례를 치렀다.
무덤은 구마모토 구 시가지에서 동북쪽으로 6킬로미터쯤 오오쓰(大津)가도에 삼나무 노목에 둘러쌓여 울타리가 쳐져 있다. 일본여행 갈 거면 한 번쯤 둘러봐도 좋을듯.
근데 이인간 뭔가 이상하다.[편집]
1. 위의 일화들에서 나온 정도의 칼싸움 원탑 치곤 노는 물이 너무 작다. 오사카면 관서인데 칼싸움 하면 관동이다. 일본 칼잽이 랭킹1위랑 2위가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고수들도 많고. 일단 관서 밖의 칼잽이들과 겨뤄본 적이 없다. 아무리 네임벨류 딸린다고 해도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인데, 그 사무라이들을 목검으로 한방에 여럿 보낼 정도의 실력자면 충분히 도전해볼만 했지.
2. 1번에도 썼듯 사무라이들을 한방에 여럿 보낼 정도의 칼잡이인데 왜 벼슬자리 하나 해먹지를 못했나? 쇼군이나 다이묘들이 검술스승. 하다못해 호위무사로라도 불러볼만 한데 벼슬자리라곤 위의 다다토시 밑에 있던걸 빼면 전무하다.
뭐긴뭐야 주작이지[편집]
이 인간에 대한 정보는 뭐든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그냥 재미로만 봐라.
그럼 태그에 주작 태그 ㄱ ㄱ
ㄴ 근데 기록된 사실 자체를 일본서기나 환단고기급의 주작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일단 정사들에 적혀있고 본인 책에도 적혀있으니.
이 인간의 삶이 주작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함.
ㄴ엥? 이거 완전 김두한?
요약하자면 검신이니 갓갓 소드마스터니 하는건 구라에 가깝고, 여튼 검호는 검호인데 걍 입신출세 하려고 칼 들고 뛰어다니던 무인들 중 한명 정도에 가깝다는 평이 현재는 대부분이다.
허구성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선 드는 무기가 다르다만 로빈후드랑 비슷하다 생각하면 편할듯.
ㄴ 당시 칼질만 할줄 알던 대부분의 무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글빨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유독 후세에 알려질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즉, 자기PR빨.
창작물에서[편집]
1. 바키
미야모토 무사시(바키) 참조.
판타지 격투만화 바키에서 등장한다. 유전자 조작 & 강령술을 통해 현세에 부활한다. 슬슬 작가새끼가 병신새끼가 된듯 하다.
바키 작가가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인물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해서 당연히 존나 쌔게 나온다, 거의 인간들 묘사로는 바키아빠정도라 생각한다.
작중 등장인물들은 티라노랑 무사시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를 고민하며 좋아라 한다.
2. 베가본드
슬램덩크 작가가 그린 아예 무사시를 주제로한 만화. 딱히 뭐 무사시에 대한 역사상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진 않았고 많이 각색했다.
코지로가 벙어리 바보병신으로 나온다던지.
윾동아 깔끔하게 묶어다오
웹툰 사신소년에서 주인공이 사용하는 31번쩨 영혼으로 등장한다 목검들고 자세잡은 인공이 뒤에서 썩소 지으면서 한쪽 무릎꿇은체 발도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온게 킬링포인트.
이외에도 무사시가 등장하거나 무사시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 나오는 작품이 매우 많다.
언젠간 동방 프로젝트에서도 TS돼서 나올듯?
Fate 시리즈[편집]
페그오 5성 세이버로 등장.
TS 당했지만 TS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는지 니네가 굴리는 여자 무사시는 본래 범인류사 소속이 아니라 전성사상, 즉 평행세계 무사시라고 못박아놨다.
시모사노쿠니에서 첫 등장. 이야기 다 끝나고 나서 칼데아에 다시 소환되었는데 칼데아에 안 있고 밖으로 여행나갔다.
이 여행 도중에 성배에 밥지어먹는 사고 터트려서 일어난 이벤트가 수영복 검호 이벤트라 카더라.
2부 1장부터 다시 등장했다. 그후 5장 파트 2에서 존재소멸 크리 맞고 DATA LOST 당하며 영기 그래프에서 소멸.
2부 들어서 네로년마냥 존나 밀어주기 시작하는데 처음엔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올림포스에서 계속 푸쉬쳐받는건 역겹다는 반응이 더 많다.
올림포스 마지막 부분에서 데이터 로스트 당했지만 어짜피 백퍼 돌아올거라는걸 알아서 슬프지도 않음.
시모사노쿠니랑 올림포스에서 자꾸 전열고정 되서 개좆같다. 진궁으로 죽여주자.
성능은 딱 멀가놈과 어울리는 5성 세이버. 대신 1턴에 딜 다 짜내기 때문에 스킬쿨 돌때는 병신이다.
적폐! 이 틀이 달린 문서의 대상은 적폐입니다.
이 틀을 보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청산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
보구 배율 상승, 보뻥배율 강화, 얼터에고 문캔서특공 추가라는 씹사기 강화를 받고 특공 조건 잭보다 노특공 보구딜이 뛰어난 기적을 선보이며 원탑 대인 세이버가 되었다. 특공상황이면? 씨발 그냥 설명을 하지 말자. 화력 미쳐돌아감.
5성 세이버 강화라고 적혀있어서 이새끼 자리 무조건 나올거라는건 예상했지만 이딴 사기 강화를 받을줄은 상상도 못했다.
적어도 네로쌍년은 페엑 얼굴마담이라는 명목이라도 있어서 푸쉬받았지 이새끼 도대체 왜 이리 푸쉬해주냐고 나스 씨발련아.
저 씨발 얼터에고 문캔서 특공은 백퍼 5.5장 흑막인 캐스터 림보 썰 역할로 다시 나올거때문에 준거일텐데 씨발 스토리용으로 쓸걸 왜 기존 성능에다 쳐넣냐고.
오키타 성우는 저 어이없는 강화를 보고 왜 오키타는 사람 존나 썰고 다닌 신센구미 소속인데도 인간형 특공 없냐며 깠다.
진짜 장난 아니라 그랜드 세이버는 얘로 확정난듯 하다. 원래 청밥이 그랜드 세이버라는 말이 존나 많았지만 이새끼가 벨버고 오르트고 뭐고 다 쓸어버릴거 같다.
참고로 수사시 역시 캐밥 출시 이후 무적의 버서커 대군 딜러로 떡상. 더블 슼 붙은 암굴왕? 수사시는 보1로도 시스템이 돌아간다 비교가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