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시마 시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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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일본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느프브 팬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놀랍게도 도쿄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요미우리빠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나 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나 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
나가시마 시게오(長嶋 茂雄/ながしま しげお)
Sigeo "Mr. Giants" Nagasima 요미우리 자이언츠 No.3 (영구결번) | |
기본 정보 | |
생년 월일 | 1936년 2월 20일 |
출생지 | 치바 |
국적 | 일본 |
신장 | 178cm |
체중 | 76kg |
선수 정보 | |
입단 | 195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
투타 | 우투우타 |
포지션 | 3루수 |
선수 경력 | 요미우리 자이언츠(1958~1974) |
지도자 경력 | 요미우리 자이언츠 플레잉코치(1972~1974)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1975~1980, 1993~2001) |
수상 기록 | |
수상 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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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의 레전드이자 그 자체, 미스터 자이언츠
야잘알의 표본 중 하나
개요[편집]
1960년대 일본야구를 지배했던 3루수로 못하는게 없는 선수였다. 타격 수비 주루 모두 평균이상의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며 호쾌하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릿쿄대를 졸업하고 요미우리에 입단했는데[3] 데뷔하자마자 홈런왕, 타점왕, 최다안타 기록을 먹고 신인왕에 올랐고 이후 자이언츠의 붙박이 4번타자로 맹활약하며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자신의 앞 타순에 왕정치라는 괴물이 타점을 다 쓸어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점왕을 5번이나 차지했을만큼 대단한 클러치 능력을 보유했고 프로 17년 동안 전 시즌 베스트나인을 수상하고[4] 통산홈런 444개에 데뷔 시즌을 포함해 홈런왕도 2번이나 차지해볼 만큼 장타력도 엄청났던 타자였다.[5] 젊었을 땐 발도 빨라서 통산 3루타 개수가 74개에 30도루도 2번 찍고 그 중 데뷔시즌이었던 1958년엔 신인 최초 트리플 쓰리(3할-30홈런-30도루)도 기록할 뻔했다. 근데 28호 홈런 깠을 때 1루 밟는 걸 잊어먹는 바람에 홈런이 무효 처리되어서 아깝게 달성 못했다.
은퇴 후 요미우리의 종신감동님이 되려고 두 차례에 걸쳐 요미우리의 감독이 되었다. 팀을 5번 리그 우승, 2번 일본시리즈 우승시킬만큼 어느정도 지도력을 인정받은 명장이었으나 끝내 종신감동이 되지는 못했다. 구단 명예선수에 영구결번까지 되었음에도 종신감동은 못 되나보다. 좆크보는 종신감동 꿈도 못 꿀듯... 인 줄 알았는데 이미 명예 종신 감동이더라. 감독시절 백넘버가 오푼이가 달았던 33번이었다.
다만 감독 첫 해인 1975년 팀을 구단 최초로 리그 꼴찌로 꼬라박고 홈구장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첫 리그 우승을 내준 흑역사가 있다. 참고로 이게 현재까지 구단 사상 유일한 최하위..
오타니한테 170던지라고 했다는데 드디어 노망이 난 게 틀림없다
201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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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 모리후쿠 마사히코(13) • 사와무라 히로카즈(15) • 오타케 칸(17) • 스기우치 도시야(18) • 스가노 도모유키(19) • 스캇 매티슨(20) • 요시카와 미쓰오(21) • 노가미 료마(23) • 우쓰미 데쓰야(26) • 하타케 세이슈(28) • 미야구니 료스케(30) • 니시무라 겐타로(35) • 사쿠라이 도시키(36) • 다하라 세이지(37) • 다니오카 닷페이(40) • 야마구치 슌(42) • 아르키메데스 카미네로(44) • 이마무라 노부히카(45) • 요나하라 히로타카(46) • 야마구치 데쓰야(47) • 이케다 슌(48) • 도네 치아키(50) • 다카다 호세이(53) • 이메이 마사히로(60) • 에가라시 유키(62) • 오오에 류세이(64) • 다구치 가즈토(90) • 나카가와 고타(91) • 다쓰미 다이스케(93) • 하세가와 쥰(96) • 야오렌레이(97) • 시노하라 신페이(001) • 야마카와 도모히로(93) • 사카모토 고우키(006) • 다카이 스구루(011) • 나구세 코스케(012) • 호리오카 하야토(013) • 쓰지타 미즈키(016) • 오오다케 히데요(019) • 하시모토 아쓰로(020) • 야지마 요헤이(021) • 마뉴엘 솔리먼(022) • 나카타 다이키(024) • 사무엘 아다메스(025) |
포수 | 아베 신노스케(10) • 고바야시 세이지(22) • 아이카와 료지(23) • 사네마쓰 가즈나리(27) • 우사미 신고(52) • 마쓰자키 다쿠야(69) • 가와노 겐키(94) • 키야시키 마사토(95) • 다나카 다카야(005) • 다카야마 료타로(010) |
내야수 | 데라우치 다카유키(00) • 요시카와 나오키(0) • 사카모토 하야토(6) • 루이스 크루즈(11) • 와키야 료타(12) • 케이시 맥기(33) • 오카모토 가즈마(38) • 야마모토 야스히로(56) • 후지무라 다이스케(57) • 가키자와 다카히로(59) • 나카이 다이스케(61) • 쓰지 하루토모(65) • 와다 렌(67) • 요시카와 다이키(68) • 카와이 다쓰야(004) • 마쓰다 다이키(015) • 타지마 코헤이(018) • 사카구치 마사키(023) • 알렉스 게레로 |
외야수 | 요 다이칸(2) • 가렛 존스(5) • 초노 히사요시(7) • 가메이 도시유키(9) • 하시모토 이타루(32) • 시게노부 신노스케(43) • 이시카와 신고(49) • 도노우에 다케히로(51) • 다테오카 소이치로(58) • 키타 아쓰시(66) • 가토 쇼헤이(002) • 다카하시 코우(007) • 아오야마 마코토(008) • 마쓰바라 세이야(009) • 마쓰자와 유스케(014) |
코칭스태프 | 다카하시 요시노부(24/1군 감독) • 무라타 신이치(89) • 오바나 다카오(87) • 다바타 가즈야(83) • 기무라 류지(85) • 에토 아키라(80) • 니오카 도모히로(81) • 이바타 히로카즈(82) • 오오니시 다카유키(86) • 무라타 요시노리(84) • 이토 히로시(77) 사이토 마사키(77/2군 감독) • 도요다 기요시(75) • 미사와 고이치(73) • 다시로 도미오(72) • 오제키 다쓰야(74) • 고사카 마코토(70) • 긴죠 다쓰히로(71) • 다카다 마코토(76) • 존 터니(106) • 이이다 유지(107) |
명예 종신 감독 | 나가시마 시게오(3) |
영구결번 | 오 사다하루(1) • 나가시마 시게오(3) • 구로사와 도시오(4) • 사와무라 에이지(14) • 가와카미 데쓰하루(16) • 가네다 마사이치(34) |
각주
- ↑ 정식 타이틀 제정은 1994년부터이다.
- ↑ 신인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현역 생활 모든 시즌에서의 베스트 나인을 수상한 유일한 선수다.
- ↑ 원래는 친구인 투수 스기우라 타다시랑 함께 난카이 호크스에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막판에 마음을 돌려서 요미우리로 갔다. 이때 스기우라는 나가시마와는 달리 그대로 난카이로 가서 같은 해 나가시마랑 마찬가지로 데뷔하자마자 리그를 씹어먹는 최강급 주축선수로 자리잡으며 신인왕을 탔고 이듬해인 1959년 일본시리즈 때 4연투 4연승으로 나가시마가 간 요미우리를 압살시켜버리고 호크스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시리즈 MVP를 탔다.
- ↑ 데뷔 시즌부터 은퇴 시즌까지 전부 베스트나인을 수상한 건 나가시마가 유일하다. 다만 기자투표로 수상자를 뽑는 방식이라 자이언츠의 모기업인 요미우리 신문의 버프도 어느정도 받았던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 ↑ 그러나 홈런왕은 왕정치가 포텐 터진 이후로는 단 한번도 차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