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
조무위키
조선의 무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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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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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대첩을 이끌었거나, 그에 준하는 쾌거를 이룬 세계 각국의 명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의로움과 지혜, 문무까지도 겸비하여 진정한 군인, 무인(武人)이라 할 만한 인물이기에 가히 본받을 만한 행적은 본받는 게 좋습니다. |
이 글은 전잘알과 관련된 글입니다. 이 글은 전쟁과 군사를 존나 잘알거나 전쟁의 전략과 전술을 잘하는 사람에 대해 다룹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 |
“ |
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明月)은 눈 속에 찬데,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一長劍) 짚고서서 긴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
” |
존나 과소평가되고 있는 조선의 명장.
이게 다 고구려 뽕맞은 새끼들이 기껏해야 고구려 옛땅 일부 수복한 거라고 공적을 축소해서 그렇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윤관의 동북9성은 결과가 롤백이니 진짜 상병신짓이지.
6진 개척 이전과 발해 멸망 사이에 얼마나 긴 간극이 있는지 따져보면 이건 수복이 아니라 새로운 정복질이다.
ㄴ이때 조선은 발해를 한국사로 생각도 안 했음. 고구려 멸망 이후 첫 수복에 가깝다고 인식함.
거기에 6진땅이 공격하기 쉬운 평지도 아니고 존나 춥고 험한 산지인데 여길 홈그라운드로 삼고 있던 여진애들 죄다 쫓아내고 알박은 걸 보면 김종서가 보통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6진 개척 때문에 흔히 장군이라 불리지만 사실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다. 무예도 그리 뛰어나지 않은 편이었다고.
ㄴ 용력에 관한 일은 휘하 무장인 이징옥이 담당했다. 이징옥이 인지도가 없어서 김종서가 다해먹은 줄 아는 사람이 많다.
황희 뒤를 이어 영의정이 됐는데 말로만 청백리하지 실제로는 적당히 썩어있던 황희 정승과는 달리 부정부패 없던 진짜 강직한 정승이었다고 한다. 분명 수양대군 일당이 썼을 조선왕조실록에도 비리 하나 적혀있지 않은 걸 보면.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살아있는한 자신의 정권탈취가 힘들것이란걸 알고 야밤에 자기 따까리들을 끌고 우르르 몰려가 김종서를 기습, 말 그대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쳐 두부외상으로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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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김종서는 죽지 않았고 살아남아 반격을 꾀했으나, 끝내 반격에 실패하고 암살 당했다. 암살 당하기 직전 자기가 압송되서 정식으로 문초받고 사형 당할 줄 생각하고 가마 갖고 오라고 일갈했으나 그에겐 불행하게도 수양대군은 그 정도로 정적의 명예를 챙겨주는 새끼가 아니었다.
가수 김종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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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행복하기일~
겨울비, 대답 없는 너, 아름다운 구속을 부른 대한민국의 록커.
이 노래들을 포함한 모든 곡을 직접 작곡했으며, 아예 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수 김종서보다 작곡가 김종서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의 창법은 젊은 시절에 전문적인 공부 없이 다리 밑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며 완성한 노근본 창법인 데다, 가뜩이나 어려운 창법이라, 나이를 먹을수록 라이브가 막장이 되어갔다.
그렇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라이브가 안타까운 수준까지 떨어졌을 무렵, 우연히 성악가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띠용! 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성악가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자신의 창법에 성악을 접목할 방법을 연구하여 지금의 창법으로 재탄생하였다고 한다.
확실히 라이브가 몇 년 전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낫다.
젊은 시절 못지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반 백 살이 넘는 나이에, 한평생 써오던 창법을 자신의 색을 유지한 채로 성공적으로 바꿔낸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서태지랑 친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서태지가 말하길, 서태지가 어릴 적에 예술계엔 마약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녔는데, 이때 아무것도 모르던 서태지에게 저런 건 진짜 음악이 아니라며 단단히 일러뒀던 게 김종서라고 한다.
KBS 스펀지에 출현해 음성격파를 시전한 음공의 달인이기도 하다.[1]
김경호보다 한참 선배인데도 급식충들한테 김경호 짝퉁으로 오해받을 때가 많다.
덜 알려진 명곡으로 다시 난 사는거야, 별이 있다. 들어봐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