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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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십자고상.gif | 놀랍게도 그 대상을 건드는 순간 전세계의 13억 천주교인들이 전부 들고 일어나 너님에게 파문 어택을 날릴 것입니다. 본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을 욕보일 시 짱깨인구랑 맞먹는 가톨릭교도들의 마녀사냥을 받아 지옥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본 대상을 찬양하셔도 좋으나 너무 나가진 마십시오. |
1821년 8월 21일 ~ 1846년 9월 16일(향년 만 25세)
한국최초의 천주교 신부.
성인명은 안드레아이다.
집안 대대로 천주교신자였는데, 원조헬조선의 기독교박해로 인해 고향이던 면천을 떠나 어린나이에 용인으로 이사를 갔다. 덕분에 실록에는 용인출신으로 나온다.
1836년에 최양업, 최방제과 함께 선교사의 눈에 들어가 세례를 받고 신학생이 되어 마카오[1]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신학+중국어+프랑스어+라틴어를 공부한 김대건은 두차례의 조선귀국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상하이로 이주했다.[2]
1845년 8월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한국최초의 천주교 신부가 되었다.
프랑스 선교사 페레올 주교, 다블뤼주교와 함께 강경으로 밀입국을 하는데 성공. 밀입국이후 방방곡곡을 다니며 선교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해외에 있던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의 밀입국을 지원하기 위해 조선지도를 몰래 보내려다가 발각되어서[3] 감옥으로 들어갔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라틴어, 프랑스어를 마스터한 덕분에 몇년전에 영국상선에게서 받은 세계지도를 번역해주고 세계정세나 서양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는등 ㅆㅆㅅㅌ치는 능력을 보여준덕분에 조정에선 '사형안하고 관직주고 돈도많이 줄테니까 배교좀 해라'비는 수준까지 갔다.
운좋게도 그가 사형당하기 2일전에 프랑스 선교사가 사형당했고 프랑스 상선들이 이에 항의하러 조선에 들어오는 일이 발생했다. 조선은 대놓고 개기면 무슨꼴이 날진 알고 있어서 프랑스와의 협상을 결정했고 김대건을 협상대표로 올려놓는다. 본인도 여기서 협상 성공하면 조선내 천주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져서 천주교 탄압이 덜해질거라 판단하고 협상에 임하기로 했다.
하지만 프랑스내부 혼란때문인지[4] 짱깨때문인지 같이 딸려온 무장상선들이 암초에 침몰해서인지는 몰라도 프랑스 함대들이 종이쪼가리 한장 던져주고 탈주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협상은 취소되고 만다. 거기다 끝까지 배교를 거부해서 결국 순교했다.
이후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로 부터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부터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그 중 13세의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한 최연소 순교자인 유대철 베드로도 포함)들과 같이 시성이 되어 성인이 되었다. 이 때부터 세례명으로 '대건안드레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생가는 성지(솔뫼성지)로 조성되었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들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