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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편집]

국뽕 병신들: 응 커향~

2016년 2월 24일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드라마 영화로 동주와 함께 2016년 초 국산 영화 투 톱이다.

조정래 감독이 2002년 나눔의 집 봉사활동을 통해 만나게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였다.

미국, 일본, 한국에서 시사회를 열었는데 관객들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검사외전와 함께 동주에게 준엄한 철퇴를 맞을 전망이다.

안 보면 일본인이라고 한다.

ㄴ 자동 탈조선 ^오^

개요[편집]

검사외전이 상영관을 70%를 차지하고 데드풀주토피아 등 다른 영화들에 밀려 개봉관도 제대로 못 잡고 조기종영 할 뻔했으나 관객들의 예매 운동과 박원순, 이재명 시장, 유기홍 의원 등의 지원으로 상영관을 늘릴 수 있었다. 높은 예매율에 콧대 높았던 CGV도 한 발 물러나서 상영관을 늘렸다.

후평[편집]

일뽕, 역갤러 거르고 솔직하게 말하면 퀄리티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착하면 다나카 꼴 나는 거야 시발...

좆쓰레기 아리사카가 반자동으로 나간다.

나름대로 회상형 액자식으로 표현해서 느낌을 살리려고 한 거 같은데 회상하면 회상만 하지, 뭔 신내림을 하는지 이해 불가 존나 무리수다. 애초에 회상형 액자식이면 현재 → 회상 → 과거 → 현재 → 메시지 순이어야 하는데 귀향은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갔다가 존나 멀미가 난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문제를 담았으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굿으로 끝난다. 또한 결론은 일본은 나쁜 새끼들 이라는 뜻밖에 안 보인다.

또 무당은 왜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시발년들아 제발 보러가라고 지랄하지 마라. 귀향 봐야 한국인이면 스시 먹으면 일본인 되는 거냐?

이게 존나 문제가 되는 게 봤으면 알겠지만 우는 사람 존나 많다. 그 당시 애미뒤진 역사적 사실이니까 슬프기는 한데 감성을 지랄나게 팔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다. 그냥 보고 나면 '쪽빠리 씹새끼'밖에 남지 않아서 한일 관계만 박박 긁을 뿐 혐일 제조기에 불과하다.

이 영화로는 절대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세 번 목욕 재개하고 검은 양복을 입고 하얀 국화꽃을 가슴에 달고 팝콘을 먹으면 아니된다 하더라. 캬아 여기 애국뽕 근엄죽에 말아서 두 사발만! 그래서 귀향 감독님과 관련자 분들께서 수익금 전액 기부하시겠죠?

나치 같은 좆본군 새끼들 ㅠㅠ 동주는 착한 영화 인정합니다 제 영화 다음으로 추천합니다! - 타영화 존중하는 데드풀

소재는 좋았으니 작품성은 떨어지는 아까운 영화다. 작품성를 고려한다면 동주가 더 좋다.

ㄴ 사실 소재도 딱히... 이거 볼 시간에 그냥 동주를 봐라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별점 5점 만점에 2점 주고 한 줄 요약에 아무것도 안 쓰자 김치워리어 같은 거 보면서 딸치던 사람들이 악플을 마구 달며 "네 다음 쪽바리"를 시전했다.

참고로 이동진은 같은 위안부 영화인 《낮은 목소리》에 별점 5점 만점 중에서 4점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까인다. '역사에 대한 울분, 영화에 대한 한숨'이라고 하던데 진짜 씹공감이다. 평론 개잘하네

역시 좆본군 새끼들은 미국 측에서 봐도 삼족을 멸해야 마땅합니다 ㅠㅠ 역주행 1위 기록 찍는데 동조해주셔서 ㄱㅅ -디즈니

좆쓰레기 스너프 필름이다. 감독이 그 망할 놈의 《인생은 아름다워》조차 보지 않은 것일까? 아무리 민감한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위의 사례처럼 재밌고 유쾌하게 그려낼 수 있는 법인데 이런 좆같이 민감하고 쓰라린 소재를 미시점으로 화면에 담으니 상영시간 내내 눈을 치켜뜨는 게 고문이었다. 마치 잘린 닭목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끔찍한 영화다. 아니 역사가 비참했던 걸 누가 모르냐? 난 영화를 보러간 거지 서프라이즈 재현극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란 말이다. 이 따위 쓰레기를 엄마 손 잡고 주토피아 대신 봐야 했을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친구들과 영화 갑자기 보러가서 평점 보는데 이거 높길래 그냥 봤더니 높은 이유가 있었다 ㅅㅂ 국뽕 포대기로 빤 건지 시작부터 내용이 존나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옆사람들이 쳐다보더라. 중간엔 졸았고 마지막에 돌아와서 밥 처먹는 게 ㄹㅇ 압권이다. 시발 보다가 중간에 나가서 롤 한 판 하는 게 더 이득이었을 듯

아 시부랄... 이 영화 ㄹㅇ 19금 안 받을 정도로만 수위 만들어놓았다. 애미 디졌더라. 아무리 사실에 가깝게 만들려고 해도 그렇지, 난 이게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위 글의 작성자는 누구에게 한 소리 듣고 한을 푸는 것인가?[편집]

우와 한 새끼가 공을 들여서 이때까지 글 쓴 새끼들 전부 영알못 병신 새끼로 만듦.

하는 말 중 태반이 감독이 의도한 바와 너무 다르다. 작품을 보는 시선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본인이 확실한 것처럼 신나서 떠드는 모습을 보자니 손가락을 가만히 둘 수가 없다.

일단 진심으로 어이없는 것이, "민감한 소재를 사용해도 다른 영화처럼 재밌고 유쾌하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심히 궁금하다. 얘네들은 위안부 관련 문제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 착석했는지 묻고 싶다.

감성을 과하게 팔았으며 그것이 3인칭으로 불 수 없게 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으셨고 이것 때문에 이걸 강조해서 슬프게 만든 뒤 일본에게 악감정을 심자고 감독이 생각을 했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이것이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로는 귀향을 자세히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군이 무조건 악으로만 표현이 되었는가? 작중 '다나카'라는 인물이 존재한다. 그는 내적갈등을 겪으면서 소녀를 죽이지 못했다고 사살된 비운의 일본군이다. 이것을 영화에 넣은 이유가 뭘까? 설마 일본군을 미화하려고 했던 걸까? 감독님은 일본군 또한 피해자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으셨다고 한다. 심지어 이 부분에 대해서 할머니 중에서도 인정하신 분도 계신다.

우리나라의 똥군기가 어디서 왔는가? 일본에서 왔다. 일본도 존나게 처맞고 그 때문에 일본에서 대책을 마련한 것이 위안부다. 사실 맹목적 목표는 연애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한적인 10분에 소녀는 덜덜 떨기만 하고 뒤에서 서두르라고 재촉하고 여유가 있겠는가? 그 과정에서 폭력이 행사되는데 사실 감독의 의도한 바는 일본이 한국에게 저지른 끔찍한 짓보다는 여성에게 남성적 폭력을 가하는 끔찍한 장면을 넣고 싶다고 말했다.

ㄴ 그런 영화가 단체 강간 장면을 그렇게 무차별하고 역겹게 야동처럼 집어넣냐? 피해자들에게 직구로 돌 던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진짜 이 감독 영화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진짜 개쓰레기 영화다. 존나 화나네.

한마디로 감독의 포커스는 '일본 새끼들 씹새끼' 같은 것이 아닌,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런 고통을 겪으셨다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굿을 하는 장면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하는데 귀향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뜻도 있지만 귀신이 되어서 온다는 뜻도 있다. 때문에 귀신과 강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굿을 가져온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굿을 하는 것으로서 은영이의 혼을 달래고 집에서 밥을 먹으며 행복하게 끝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감독은 분명 위안부 할머니를 어떻게든 위로해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이 말이 틀리더라도 굿을 왜 넣었냐느니 등 대차게 까는 이유는 잘 생각이 되지 않는다. 영화와 이질적인 것도 아니고, 귀신과 연관성이 있으며, 과거의 인물이 지금은 귀(鬼)가 되어서 이승을 떠도는데 굿을 넣은 것이 큰 문제가 되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뜻도 모르고 재미와 자극을 추구하며, 감성을 자극한다느니 밀리터리 고증이 잘못 됐다느니 한국 영화계가 왜 위태로운지 납득이 저절로 되려고 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으로 까이는 이유 또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게 뭐가 잘못된 건지? 그저 본인이 이해하기 힘들어서 자신에게 이런 구도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그 열등감을 작품에게 날 세우는 것이 아닌지 생각 좀 해보자.

윗 사람의 말에 반박[편집]

나무위키에서도 많은 것이 서술되어 있지만 작품과 소재는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귀향을 강렬히 실드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퀄리티가 낮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제작비가 25억에 기간도 꽤 길었다고 한다.

음... 위안부를 소재로 했다고 너무 띄우지 말고 질적인 면으로 보자는 말도 있다. 조금 기분 나쁘게 들릴 순 있어도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퀄리티 쪽으로. 그러니까 위안부 소재는 잠시 치우고 영화의 퀄리티에 집중해보자.

그리고 연출이 어색한 점이 많다고도 한다. 앞서 말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것이 너무 급하게 이리저리 휙휙 움직이는 느낌?

많은 이들이 말하는 건 이거다. 소재는 그렇다 쳐도, 영화로서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스스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오히려 너 자신이 소재에만 집중, 감정에 몰입하여 영화의 퀄리티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진 않았는지.

디시위키는 누가 편집하고 수정했는지 볼 수 있거든. 이중인격자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ㄴ 누군진 몰라도 이렇게 자세하게 나를 파해치는 걸 보면 분명 어딘가 빡친 게 있는 거다.

마지막 줄, 네가 쓴 결론은 외국 수출급 갓귀향 이 글귀를 쓴 것만 봐도 대갈빡이 터칠 정도로 빡쳤을 거다 아주. 그건 지웠다 내가.

꼬우면 내 아이피로 문서를 열어라. 성심성의껏 답변해주겠다.

ㄴ 아니... 쥐좆만큼도 안 빡쳤고 그냥 즐겨찾기에 등록되어있으면 수정 목록이 알아서 뜨는데 뭘 파헤쳐... 좆같은 게 있다면 설띵충 등판해서 잼이 뒤짐.

이 사람의 말에 첨언[편집]

나는 참고로 영화 좀 공부하고 보는 놈이다. 위안부는 민감한 소재다. 왜곡해서도 절대 안 되고, 잊혀서도 절대 안 된다.

자칫 잘못 다루면 잡내가 많이 나는 식재료가 있듯이 이런 민감한 소재일수록 연출적으로 잘 다뤄야 한다. 하지만 영화의 퀄리티는 개씹똥망이다.

클리셰 범벅이다. 특히 영화 초반에 주인공 주위에 대놓고 나비가 나오는데, 후반에서 일본군이 나비를 박제하다가 나비 날개를 부러트리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토가 나올 뻔했다. 너무 일차원적인 연출이며 이는 감독이 거의 고등학교 UCC에 나올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냥 굿 장면 빼고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지 아주 뻔하디 뻔한 영화였다.

굿 장면 또한 그렇게 실험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영화를 망친다.

독립 영화의 메리트는 제작사, 배급사의 보이지 않는 손을 뿌리치고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여 독창적이고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귀향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인면수심으로 팩폭을 때린다면 '수준 미달의 영화 감독이 민감하고 애국심에 불타오를 수 있는 주제를 등에 업고 수익을 거둔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 이 영화 볼 때 주위에서 존나 훌쩍이더라. 나는 이 중요한 주제로 이따위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빡쳐서 눈물도 안 나왔다.

이 영화가 낮은 평을 받는 이유[편집]

좀 진지 빨고 얘기하면 헬조선의 일제시대를 다루는 영화와 기본 매커니즘이 같다고 볼 수 있는 영화는 홀로코스트 영화, 즉 유대인 학살에 관한 영화다. 홀로코스트 영화의 경우, 다양한 감독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만들었고, 그 중 상당수는 아직도 띵작으로 불린다.

이런 영화 중에 당장 손꼽으면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쉰들러 리스트》등이 있다. 이런 영화들이 왜 아직까지 명작으로 불리는가. 뭐 나치 새끼들이 워낙 개새끼였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간적인 면모가 그 이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바로 이게 귀향과 차별되는 점이다. 물론 이 영화들에서 나치가 개새끼로 표현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 비중만큼 잘 다뤄지고 있는 게 그 당시 상황에 놓였던 한 개인의 심리와 감정을 농밀하게 담아낸 거다.

《쉰들러 리스트》는 내용의 잔혹함 속에서 독일인임에도 인간애 하나로 수많은 유대인을 구하려는 근본적인 인간애적 모습이 담겨있고 《피아니스트》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미친 세상 속에서의 절망과 고통, 그 와중에서도 끓어오르는 예술혼을 담았고 《인생이 아름다워》는 한 가족의 가족애, 그리고 그런 민감한 소재를 단순히 적의에 찬 분노가 아닌, 진심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 따듯한 감정과 아련함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홀로코스트 영화 중에서 이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 헬조선의 일제강점기 영화, 특히 《귀향》같은 영화를 한 번 보면 개인의 그런 심리는 개나 줘버린다. 그냥 기승전결 일본 개새끼! 이러고 끝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한 정서 자체가 안 좋으니까 그렇게 찍어도 국뽕들이 좋다고 돈 내면서 보지만 영화의 순수 스토리 방면에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뭔가 깊이 고민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 영화가 개인의 시점이 아닌, 《전함 포템킨》처럼 아예 다수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영화라면 모를까, 이미 한 개인의 시각으로 진행된다면 그에 걸맞는 인간 내면의 깊음을 담아내야 되는 거 아닌가? 솔직히 일부 일뽕새끼들 제외하면 어느 ㅅㄲ가 일제강점기 좋다고 하겠냐. 다 싫다고 하지. 이걸 영화로 표현하려면, 그 당연한 관점 이상의 무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필요한 무언가는 감독 재량이겠지만, 최소한 이러한 요소들을 집어넣음으로써 단순히 분노의 외침이 아닌 그 이상을 보여줘야 된다는 걸 귀향 감독은 모르는 듯하다. 그렇기에 영화 자체로서의 완성도는 낮을 수밖에 없는 거고. 그에 반해 《동주》는 위의 조건들을 잘 충족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배경이 일제 강점기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윤동주 개인의 내면을 잘 드러낸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은 거다.

긍정적 평가[편집]

지나가다가 첨언해본다. 스포일러가 다수 있다. 아직 안 본 사람은 거르는 게 좋겠다.

분명 《동주》보다 완성도가 떨어짐은 인정한다. 하지만 독립영화 수준의 자금력으로 만든 영화가 소재와 시대적 배경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준익 감독의 인생작이라고까지 불리는 《동주》나 세기의 명작 《인생은 아름다워》와 비교되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모금해서 만든 영화가 그 정도 퀄리티가 나온다는 게 더 신기하지 않은가.

내용 면에서 아쉬웠던 점은(본지 꽤 되어서 기억이 정화하진 않을 거다) 굿이나 무당 등의 무속 관련 소재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나왔던 점은 다들 초반에 의아했을 것이다. 나도 잠깐 상영관 잘못 찾은 듯했다. 하지만 《귀향》의 '귀'는 '귀신 귀'자다. 영제는 Spirits' Return인가 그렇다.(어퍼스트로피가 어디에 붙었나 잘 모르겠다.) 흔히 생각하는 '귀향'은 아니다. 물론 이중적인 의미겠지만 감독이 더 중점을 둔 것은 당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망한 피해자들의 원혼이 조선 땅(그러니까 현재의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 사용된 장치가 마지막 굿이고, 굿을 하려면 당연히 무당이 있어야 한다. 즉, 굿과 무당은 영화의 아이덴티티이자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근데 그걸 잇는 액자식 구성이 조금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다. 앞부분을 살짝 쳐내든지... 모르겠다. 영화는 볼 줄만 안다.

또 한 인물의 심리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는 부분은 일부 동의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액자 안의 과거 시점은 그러지 못했고, 액자 겉의 현재 시점에서는 꽤 괜찮게 표현한 것 같다. 영화 본 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할 동사무소 씬이나, 마지막 굿 장면이나, 곳곳에서 나오는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나. 아마 과거 시점은 실제 위안부 사건이 나오니까 인물보다는 사건 위주로 극이 진행됐으며, 현재 시점은 이미 사건이 끝나고 수십 년이 흐른 뒤니까 자연히 인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사건도 다루면서 인물의 심리까지 잘 표현하는 게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물론 그렇다고 과거 시점에서 심리 묘사가 꽝인 건 아니다. 드물게 착한 일본군 병사와 일본어로 얘기하다가 진짜 이름을 물어보자 조선어로 몰라요... 하는 장면이라든지.

뭐 아무튼 현재 시점에서 많이 나온 할머니의 심리 묘사 덕분에 할머니가 된 캐릭터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된 것 같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울었던 부분도 굿을 통해 언니의 영혼과 만났을 때 할머니가 같이 집에 가자며 우는 장면이고.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이 영화의 가장 훌륭했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을 통해 한 인물의 과거 시점 감정과 현재 시점의 감정을 일치시켰다. 이로 인해 현재 시점 인물에 치중된 감정이입이 과거 시점의 인물들에게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내가 글을 못쓴다. 이해하길 바란다. 할머니는 굿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다시 보는 중이었고, 할머니에게 감정을 이입한 관객들은 그 할머니가 과거 시점의 인물들에게 가지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단순히 위안부 영화라고 불쌍해서 펑펑 운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감성팔이라는 사람들에게 몇 마디 하고 싶은데, 도대체 뭘 감성팔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 견해로는 별로 슬프지도 않거나 슬플 필요가 없는 장면에서 BGM, 혹은 억지 울음 연기, 개연성 없는 장치들(예를 들면 《부산행》의 후반에서 공유가 애를 안고 있는 과거 회상과 터널 지나면서 뜬금없이 노래 부르기)을 통해 억지로 슬픔을 쥐어짜는 것이 감성팔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슬픈 영화지, 슬픔을 쥐어 짜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제가 그건데 뭐.

아, 그리고 이 영화의 주제는 일본군 개새끼가 아니다. 기승전은 일본군 개새끼일지도 모르나(정확히는 발단-전개-위기-절정까지) 결은 아닌 듯하다. 이미 희생된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가 더 맞겠지 싶다. 물론 영화를 보고 일본군 개새끼를 안 외칠 사람은 없겠다만 관객들이 느낀 건 분노보다는 슬픔 쪽이 더 크지 않았을까. 착한 일본군 캐릭터가 등장한 걸로 보아서 일본제국군 전체를 매도하진 않았다. 물론 그 대장 새끼는 용서가 안 된다.

여기까지다. 긴 글 봐줘서 고맙다.

ㄴ 위에 글 쓴 새낀데 몇 가지 더 추가하고자 한다. 일단 모금 방식으로 찍은 영화라서 비교가 가혹하다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대차게 까이던 《연평해전》도 모금해서 찍은 영화다. 그리고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관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결과다. 관객들은 이 영화가 어떻게 찍혔는지 전혀 모르며, 설사 수많은 고난 끝에 영화를 만들었더라도 영화가 재미없으면 그건 그냥 재미가 없는 거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런 부분에서 쉴드치는 건 아니라고 봄.

그리고 확실히 액자 밖 구성의 심리 묘사는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았느냐면 그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 정도라도 그 정도 심리의 흐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액자 속 심리 묘사가 잘 되지 않은 건 이 영화 최대의 약점이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일부러 액자 구성을 취한 건 나름대로 그 당시와 지금의 두 가지 시점에서 위안부를 보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원론적으로 액자 구성 자체가 바깥은 어디까지나 액자 속 구성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즉 액자 속 내용이 튼실해야 이야기도 매끄럽게 흘러가게 된다. 이러면 그 당시보다 지금의 시점을 중요시하는 구성을 취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액자 밖 구성에 정성을 들였다고 보긴 힘들다. 뭐 이게 자금 부족이나 기타 외부 여건들 때문에라면 할 말은 없다. 나름대로 분발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받은 명성은 분명히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를 넘어섰다. 이런 점이 《귀향》에 논란의 여지가 생기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