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안코쿠지 에케이

조무위키

imported>Greyculse님의 2020년 11월 5일 (목) 00:1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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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존나 나쁜 년놈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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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을 본다면 하루빨리 정의의 사도들을 호출하여 주십시오.
이 문서는 창조적인 도둑놈에 대해 다룹니다.
너무 창조적이어서 창조경제의 기틀을 잡으신 ㄹ혜님도 예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창조적이어도 죽창 앞에선 너도 나도 한 방!
나라에 예산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도둑놈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센고쿠 시대의 땡중이자 다이묘. 상당히 메이저급인 땡중에 속한다.

아키 다케다 출신으로 모리 모토나리에 의해 가문이 졷망하자 황급히 탈출, 안코쿠지로 들어갔다. 보통 이런 배경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은 세속과 인연을 끊고 승려가 되기 마련인데 얘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승려가 된 후에는 교토의 토후쿠지에서 지쿤 엔신의 제자로 수행, 이후 안코쿠지의 주지를 거쳐 토호쿠, 난젠의 주지가 되면서 땡중계의 에이스로 거듭나게 된다. 와중에 모리 새끼들이 지쿤 엔신에게 귀의하는 바람에 안코쿠지 에케이는 모리의 외교승의 직분을 얻게 된다.

나름 수완은 좋아서 그런지 오토모 가문과의 화친, 주고쿠 정벌에 나선 하시바 히데요시와의 화친을 성사시켰다. 히데요시의 경우는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혼노지의 변으로 뒤지는 바람에 화친이 성사된 것이지만 어쨌든 화친은 화친임. 훗날 모리가 히데요시에게 완전히 복속되고 시코쿠와 규슈의 정벌이 끝난 후에는 6만석이 넘는 영토를 하사받게 된다. 시발 승려인데 다이묘.

임진왜란 때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아래로 들어가 조선 침략에 한 몫했다. 안코쿠지 에케이가 참여한 전투로는 정암진 전투, 웅치 전투를 꼽을 수 있는데 일단 정암진 전투를 살펴보면 당시 조선은 경상도와 충청도가 침략당하는 바람에 곡창지대인 전라도 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때 안코쿠지 에케이가 군대를 이끌고 전라도로 들어가는 길인 경상도 의령에 나타났다. 목적이야 전라도 침공이 뻔하고. 이에 조선 측에서는 홍의 장군이라고 불리울 곽재우 장군이 안코쿠지의 맞다이 상대로 등장하면서 오오 긴장감 고조.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냐면 ㅎ 안코쿠지가 존나 쳐맞고 졌다.

웅치 전투는 전라도 웅치에서 일어났다. 웅치에는 김제 군수, 나주 판관, 각종 의병이 집결하여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방어선은 총 3개로 각각 산 아래쪽의 제 1방어선(의병), 산 중턱의 제 2방어선(나주 판관), 산 정상의 제 3방어선(김제 군수)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존나 안타깝게도 안코쿠지가 이끄는 일본군은 강력한 돌파력을 앞세워 첫째 방어선과 둘째 방어선을 뚫어버리며 산 정상까지 올라왔다. 이 전투에서 나주 판관을 제외한 지휘관들은 죄다 전멸하고 병사들도 시체로 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조선군 생존자들은 뒤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기간 중 싸우지 않을 때는 조선 유물을 훔치는 데에 열을 올린 도적놈의 새끼였으며 조선 어린이들을 납치해서 강제로 촌마개를 틀고 강제로 일본어를 가르쳤다.

전쟁이 끝난 후 안코쿠지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와 친하게 지냈다. 전쟁에서 서로 살을 부벼대며 살기도 했고 친히데요시파 쪽이기도 하니까 친할 수 밖에 없는건 자명한 이치. 그런데 하필이면 같은 모리 계열의 영주인 깃카와 히로이에랑은 척을 지는 바람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된다. 그러니까 깃카와 히로이에는 계속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로의 가담을 주장하는데 안코쿠지는 이미 모리 테루모토가 서군 총대장으로 옹립되었으니 계속해서 그 뜻을 관철해야 된다며 맞부딪친 것이다. 근데 이 테루모토의 옹립도 서군 세력의 뒷공작에 의해 히로이에 몰래 이루어졌다고 하니 친이에야스파인 히로이에의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노릇이었을 것이다.

앙심을 품은 깃카와 히로이에는 난구산에 진을 치고 모리군의 출전을 방해했다. 야마 돈 안코쿠지는 히로이에한테 달려와서 서군에 가입하라고 씨발놈아! 하고 소릴 질러댔지만 오히려 히로이에는 코웃음을 치며 싫어! 도시락 먹을거임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고 전해진다. 도시락맨의 활약 덕분에 서군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에게 패배했고 세키가하라 전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시다 미츠나리를 비롯한 서군의 우두머리는 탈주를 시도했으나 종국에는 이에야스의 부하들에게 체포당하며 하나둘씩 참수를 당했다. 안코쿠지 에케이도 교토서 오쿠다이라 노부마사에게 붙잡혔고 62세에 참수형으로 인생을 마쳤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와 친하게 지냈다고는 하지만 일화에 따르면 다카카게가 안코쿠지 에케이의 뒷담도 좀 까고 그랬던 모양이다. 한 번은 히데요시와 안코쿠지 에케이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야기 흐름이 히데요시 엄마 사망쯤에 이르자 히데요시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자 안코쿠지 에케이도 흑흑 넘모 슬퍼요 태합전하 하고 눈물을 흘렸다. 다카카게가 보기엔 존나 하나도 안 슬픈데 안코쿠지가 즉석에서 눈물을 만들어내는 명품 연기를 선보였다는 것이다. 다카카게는 안코쿠지 에케이를 두고 나라를 그르칠 땡중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