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토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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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로마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로마니스타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 프란체스코 토티
Francesco Totti
AS로마 No. 10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76년 9월 27일 출생지 이탈리아 로마 국적 이탈리아 신장 180 cm[1] 체중 82 kg[1] 유스팀 포르티투도(1984) 스미트 트라스테베레(1984~1986) 로디자니(1986~1989) AS 로마(1989~1992) 클럽 AS로마 (1992~)[2]
588경기 243골
국가대표 이탈리아 (1998~2006)
58경기 9골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공격수
발롱이고 챔스고 스텟이고 나발이고 축구하느님
로마의 황제
다른선수 다 3d로 공찰때 혼자 6d로 공차는 축구선수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의 토티를 동경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아다도 13살때 깨셨다.
개요[편집]
AS 로마의 전설적인 레전드
나이도 많고 스팔레티 감독과 불화가 터지면서 이적설이 제기되었으나, 로마와 1년 재계약을 맺으면서 이적설이 사그라들었다.
16-17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한다.
클럽[편집]
AS 로마[편집]
우승[편집]
Serie A (1) : 2000/01
Coppa Italia (2): 2006/07, 2007/08
Supercoppa Italiana (2) : 2001, 2007
준우승[편집]
Serie A (7) : 2001/02, 2003/04, 2005/06, 2006/07, 2007/08, 2009/10, 2013/14
Coppa Italia (5): 200203, 2004/05, 2005/06, 2009/10, 2012/13
Supercoppa Italiana (3) : 2006, 2008, 2010
상세[편집]
“ |
내 등 번호, 10번이 새겨진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과 페레스 회장의 친필 편지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은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유니폼을 보내 왔고 나는 레알 마드리드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자니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로마를 위해 평생을 바쳤고 내가 없는 로마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로 갔더라면 나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던 걸 후회하지 않는다. |
” |
— 토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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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에 있을 때 나는 항상 벤치에 있었고, 토티는 언제나 필드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
” |
— 과르디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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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13세 소년 토티에게 먼저 구애의 손길을 뻗친 건 다름 아닌 AC 밀란이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로마팬이였던 토티는 거절, 1988년 AS 로마 유스팀에 입단한다. 이듬해 1군 팀과 정식계약을 맺은 데 이어 16세에 세리에A 데뷔전을 가졌다. 1997년 AS 로마 역대 최연소 주장 기록인 21세에 클럽의 주장완장을 달고 현재까지도 AS 로마에서만 뛰고 있는 대표적인 원클럽맨. 역대 최장 주장역임 기록은 덤.
이후 토티와 함께한 로마는 상승가도를 걸으며 본격적인 세리에 A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당시까지 세리에 A는 북부 3강(유벤투스와 밀란 둘)이 번갈아가며 우승하던 3강 고정 시대였는데, 흔히 말하는 7공주 시대를 거치며 슬슬 입질을 넣기 시작하더니만 2000/2001 시즌 드디어 스쿠데토를 차지하며, 북부 3강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던 세리에의 헤게모니를 부수는 데 성공한다. 물론 이 때 로마의 스쿼드가 현재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짱짱했다고는 하지만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빈첸조 몬텔라, 카푸, 알다이르, 나카타 히데토시 등 그들을 한데 모으고 시너지효과를 일으킨 건 다름 아닌 주장 토티였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듬해 비록 유벤투스에 승점 1점이 모자라 우승을 놓쳤으나 전년도에 이룬 18년만의 우승은 줄곧 중위권 정도로만 평가되었던 로마가 노는 물을 달리하게 된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안습하게도 로마 = 준우승이라는 콩의저주가 걸린 것인지 2000년대 들어 세리에 준우승만 9번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그런 팀에서 토티는 유스팀에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뛰고 있다. 노쇠화가 진행되었다는 지금도 경기를 뒤집기에 충분한 저력과 한방을 지니고 있다. 36세를 맞이한 시즌 리그만 15골. 리그 7위에 해당한다.
2010 / 2011 시즌 종료된 시점 로마에서만 467경기 206골. AS 로마 역대 최다출장 및 최다골 기록이자, 세리에 A 역대 최다득점 5위 기록이다. 10골만 더 넣으면 3위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한국시간 2012년 1월 21일 체세나와의 홈경기에서 통산 211호 골을 기록, 세리에 A 단일클럽 최다골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2013년 3월 5일엔 통산 225호 골을 기록하면서 군나르 노르달과 함께 세리에 A 통산 득점 공동 2위에 올랐으며 3월 20일, 226호 골을 기록하면서 단독 2위로 올라섰다. 이제 그의 앞에는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 중 하나로 추앙받는 실비오 피올라가 보유한 274골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2014년 세리에A 시즌이 끝난 현재, 로마에서만 561경기를 뛰었으며 235골을 기록중이다. 심지어 그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보낸 선수이다.
2013-14 시즌 팀의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끌며 팀의 4년만의 UEFA 챔피언스 리그 복귀에 기여하였으며, 2014년 9월 30일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특유의 칩샷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역대 최고령 득점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이번 챔피언스 리그 골로 개인 통산 300골을 달성하게 되었다.
15-16 시즌 들어서는 급격히 팀내에서의 입지가 줄어들었는데 제코의 영입에 이어 겨울 이적시장에 제로톱으로 쓸 새로운 선수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페로티와 AS모나코로부터 스테판 엘 샤라위도 영입되어 토티가 벤치를 지키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토티는 이렇게 벤치 생활을 보내는 것에 대헤 거부하면서 올여름 계약 만료후 이적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오로지 로마를 위해서 뛰어온 로맨티스트이자 원클럽맨이 허무하게 이야기의 끝을 맺게 될련지.. 모친 안녕하신지 궁금한 제코새끼... 한국에서야 토티의 이미지가 좋은 편이 아니다보니 늙고 실력이 떨어졌으면 안나오는게 맞다 라는 의견이 많다. 문제는 그 대상이 토티라는 점 때문에 갑론을박이 오고가는데.. 여하튼 팬들로써는 매우 안타까운 시점. 다행히 시즌 막바지에는 스팔레티와 토티가 서로 화해를 하며 곧 로마와 1년 재계약을 맺을거라는 현지보도가 떴다. 그에맞게 출전시간도 늘어나 비록 교체출전이지만 매경기 꾸준히 출전하며 최근 5경기에서 4골 1도움을 기록, 슈퍼조커로서 절정의 폼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골들도 질경기를 비기거나 이기게 만드는 결정적인 골들이라서 축팬들은 역시 토티라며 감탄하는중
2017년 은퇴 후 로마 디렉터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