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폴란드-리투아니아

조무위키

경고! 이 문서에서 다루는 지역이나 국가는 헬보딸입니다!
해당 항목에 서술된 곳은 헬조선보다도 딸리는 디스토피아입니다.
만약 여기로 탈조선하실 생각이라면 포기하십시오. 그냥 이곳에서 계속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주의!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망했습니다.
이 문서와 상관있는 분들은 벌써 망했거나 곧 망합니다.
벌써 망해서 더럽게 재미없거나 매우 혐오스러운 내용을 담습니다.
이 문서와 관련되어 인생 망치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이 문서의 대상은 거대합니다!
크고... 아름다워요...

ㄴ 폴란드 분할 이전까지

주의! 이 문서는 약육강식을 인간 사회에서 실행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존나 애미뒤진 제국주의자가 작성했거나 그와 관련된 것을 다룹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생에서 일어날 만한 약육강식을 인간 사회에서 실행하는 개새끼들이거나 그런 새끼들이 좋아할 만한 대상입니다.
이 병신 새끼들은 지능은 있는데 행동이 원시인 이하라서 인간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쌍병신들입니다. 아무쪼록 이런 새끼들을 본다면 운지천을 먹이고 자연속으로 보내줍시다.
왈왈~ 크아앙~ 어흥~ 으르릉... 컹! 컹!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연합 왕국으로 1569년부터 1795년까지 존재했던 대공국이다.


성립 배경[편집]

당시 리투아니아는 루소 차르국(지금의 러시아)과 전쟁 중이었는데 루소 차르국과의 전쟁에서 불리해지자 폴란드의 지원을 요청했다. 폴란드는 이를 거절했지만 만약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합쳐진다면 리투아니아에게 지원을 해준다고 약속하여 폴란드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성립된다.

역사[편집]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은 시초부터 왕의 권리가 제한되고 귀족 중심의 정치를 하는 귀족 공화정이었으며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등의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국가였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이 성립되자 폴란드는 루소 차르국과의 전쟁을 치르게되고 불리했던 전세가 단숨에 유리하게 바뀌면서 전쟁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이 대가로 리투아니아의 관할 구역은 축소되었고 리투아니아 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초대 국왕이었던 지그문트 2세가 사망하자 의회는 프랑스인이었던 앙리를 폴란드 리투아니아의국왕으로 선출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샤를 9세가 죽자 앙리는 프랑스로 빤쓰런 한뒤에 앙리 3세가 된다. 앙리가 빤쓰런한 이유에 관한 추측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귀족 중심의 정치체제가 앙리에게 마음에 안들어서 빤쓰런 했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결국 지그문트 2세의 여동생과 그의 약혼자가 공동군주로 오르게 되며 왕권은 더더욱 악화되고 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중부유럽의 강대국중 하나였으며 지그문트 3세때는 당시 쇠퇴하던 러시아를 신나게 털어먹으며 지그문트의 아들을 러시아의 차르 자리에 앉혀놓기도 하였다.

지그문트 3세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군주까지 겸하고 있었는데 스웨덴에서 칼 9세가 쿠테타를 일으켜 스웨덴 군주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게되자 지그문트 3세는 폴란드 리투아니아와 스웨덴의 두 국가의 군주가 되기 위해 스웨덴 제국과 몇차례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스웨덴 제국에게 크게 패하면서 연방의 쇠퇴기가 찾아온다.

1648년 카자크인들이 대홍수라고 불리게 될 반란을 일으켰을때 반란하나 제압못하고 대패하는 처참한 국력 수준을 보여주었고 어찌어찌 휴전하는가 싶더니 휴전 조약의 내용에 불만을 품은 카자크인들의 재봉기(1651년) 역시 반란을 제압못해 외부 세력에 의존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스웨덴의 학살이랑 약탈에 지친 카자크인들은 폴란드랑 손을 잡아 스웨덴을 몰아내고 러시아랑 프로이센과 협정을 맺는데 성공하지만 프로이센은 폴란드의 속국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스웨덴과 러시아에게 영토를 할양해주어야만 하였다. 이 사건으로 1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으면서 폴란드의 국력은 더더욱 쇠퇴하고 만다. 이렇게 처참해진 국력에도 불구하고 대홍수 반란 이후에 잘 싸운 전투가 있는데 바로 2차 빈 포위 전투이다. 물론 오스만 제국 vs 러시아,베네치아, 오스트리아,폴란드-리투아니아 였기에 오스만 제국에게 크게 불리하게 적용된 전투라고는 하나 대홍수 반란으로 국력이 엄청나게 쇠퇴하였는데도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만으로도 잘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후 폴란드는 주변 강대국(스웨덴,러시아,오스트리아,오스만,프로이센)들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경제적으로 주변국에게 종속되어 갔으며 결국 프로이센의 세력균헝 제한으로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은 폴란드 분할을 맞게 되어 멸망하고 만다.

쇠퇴 이유[편집]

폴란드가 중부유럽의 강력한 나라에서 약소국으로 변화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였다. 정알못들은 왕권이 제한되고 귀족 중심의 체제가 입헌군주제랑 다를게 없다면서 무작정 좋다고 씨부리지만 입헌군주국은 왕이 헌법에 의한 통치를 하면서 왕권이 제한되는거지 폴란드처럼 왕이 아무것도 못하는 통치체제가 아니다. 게다가 입헌군주국이나 공화정이 되려면 중앙집권 국가를 거쳐 절대왕정의 체제를 거쳐야지만 온전하게 돌아가지 시작부터 입헌군주제나 공화정을 실시하면 사회 제도 발전의 모순으로 국가의 쇠퇴를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 당장 소련 꼴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귀족들은 나라가 망해도 나는 망하면 안된다는 이기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상공업의 발전이 자기들에게 해가될까봐 폴란드 분할 시절까지 중세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상술했듯이 왕은 아무것도 못하는 정치체제였기에 왕이 상공업 발전을 하려고 해도 귀족들의 반대로 계속 무산되고 만다. 게다가 폴란드는 다수결제가 아닌 만장일치제였기 때문에 자기이득 보려고 하는 귀족 한명이 트롤링을 저질러도 그 귀족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개혁 자체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주변의 다른 유럽 국가들은 상공업 발전으로 점차 근대 사회로 넘어가서 산업화가 이루어지지만 폴란드는 아직도 중세 시절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는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되고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했던 농업마저 러시아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에게 밀렸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점차 종속되어 폴란드 분할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폴란드 분할로 인해 폴란드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폴란드 왕은 상공업을 발전시키고 산업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나 위대한 귀족님들께서는 마지막까지 자기 이득을 볼려고 외부 세력을 끌어드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폴란드는 폭★망 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