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커 톨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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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만들어진 미국의 자동차. 정식명칭은 터커 48이다.
천조국 자동차 업계 빅3의 계략 땜에 빛을 못보게 된 비운의 명차이기도 하다.
개발 역사[편집]
이 차를 만든 터커 모터스의 설립자인 프레스톤 터커는 11살때 운전을 하고 16살때 자동차를 분해해서 그 부품들로 장사할 정도로 열성적인 차덕후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공업고등학교로 다녔으나 이후 경찰공무원을 거쳐서 캐딜락과 포드에 취직을 했으며 2차대전때 해군에 복무한 뒤 전쟁이 끝나자 그는 그동안 쌓았던 노하우와 혁신적인 차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로 여러 엔지니어들을 모아서 터커 48을 만들게 된다.
성능[편집]
5,500cc의 배기량과 166마력의 알루미늄제 엔진을 자랑한 이 차량은 최고시속 196km/h를 낼 수 있었으며 가솔린 1리터로 10km를 달릴 수 있는 엄청난 연비를 자랑했고 피아노 건반식 키 모양의 4단 반전자식 변속기와 4바퀴에 따로 반응하는 독립식 서스펜션,퓨얼 인젝션 그리고 디스크 브레이크와 같은 기술은 물론 비틀림을 최소화한 차체 디자인,완충제를 부착한 대시보드 그리고 당시로선 거의 중요하지 않았던 안전벨트도 착용 하는 등 당시 언론들이 이 차를 보고 '20년이나 앞선 자동차'라고 극찬할 정도로 당시로선 혁신적인 성능을 지녔다.
비극적인 결말[편집]
“ |
거대한 조직이 개인의 아이디어와 자유를 짓누르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를 말살시키는 행위이며, 내가 태어난 조국이 나에게 준 고통과 슬픔이다. 언제 어떻게 미국의 자동차가 위협을 받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한때 적국인 나라에서 자동차나 라디오를 사들여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나는 조국의 건전한 양심을 믿으며 아메리카의 꿈 또한 영원하리라 믿는다. |
” |
— 프레스톤 터커, 최종판결에서 진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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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언론들의 극찬은 물론 프레스톤 터커 자신도 이 차를 천대 이상씩이나 생산할 것이라고 언플을 했으나 당시 크라이슬러와 GM 그리고 포드와 같은 미국차 빅3들은 자신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이 혁신적인 고성능 차량을 견제했으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안그래도 중소기업이였던 터커의 자금줄을 끊게 만들었다. 이 공작이 어느정도였냐면 이 차를 극찬하던 언론들이 비판적으로 변할 정도였다. 그녀석들이 터커를 망하게 했다는 객관적인 물증은 없으나 정황상으로 그들의 공작은 너무나 뻔했다.
결국 온갖 시련이 닥친 터커는 무리한 결단을 내리는데 생산도 하지 않는 차로 계약을 시도해서 자금을 받아 내는것. 이때를 노린 빅3는 언론에 제보하고 매수해서 터커를 사기꾼으로 몰아갔고 계약자들은 결국 터커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이 재판으로 터커는 15만 달러의 벌금과 115년의 징역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이 선고를 들은 터커는 큰 충격을 받아 기절했다. 이후 여러 공방과 항소 끝에 1950년, 터커는 무죄를 선고 받게 됬으나 이미 지칠대로 지친 터커는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열정과 꿈은 포기 못해서 브라질 투자자들을 찾아서 스포츠카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무죄를 선고받은지 6년후인 1956년, 53세에 터커는 간암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