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하르카
조무위키
제22왕조 / 제23왕조 / 제24왕조→ 이집트 제25왕조 파라오 목록 →제26왕조 |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피이 (기원전 744년~기원전 714년) |
셰비쿠 (기원전 714년~기원전 705년) |
샤바카 (기원전 705년~기원전 690년) |
타하르카 (기원전 690년~기원전 664년) |
부흥운동 | |||
타누타멘 (기원전 664년~기원전 656년) |
이집트 제25왕조의 파라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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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바카 | → | 타하르카 | → | 타누타멘 |
네코 1세 제26왕조 파라오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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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90년 ~ 기원전 664년 |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
개요[편집]
이집트 제25왕조의 제4대 파라오.
치세[편집]
피이의 아들이었다. 기원전 690년 샤바카가 사망한 후 즉위했다. 이 사람의 재위 초창기는 25왕조의 최전성기이기도 했다. 기원전 685년 쯤 나일강이 가장 높은 수위로 범람했다. 10.5m를 약간 넘는 수준이라 카더라. 게벨 바르칼에 아멘 신전을 건설하고, 카와, 타보, 아스완 등에서 건축사업을 벌였다.
암튼 원래 같으면 최전성기를 구가해야 하는 게 맞는데, 문제는 당시 동쪽에서 세계 최강국인 신아시리아 제국이 미친듯이 떡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이사야 서에는 '티르하카'라고 나온다. 이집트는 유다 왕국을 방패막이로 하여 아시리아를 견제하고 있었다. 센나케립 때부터 이집트는 아시리아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에사르하돈 때 본격적으로 이집트와 격돌했다.
기원전 673년 2월 아시리아의 에사르하돈은 유다 왕국의 므나쎄를 굴복시킨 상태로 이집트로 1차 원정을 떠났으나 패배했다. 기원전 671년 2차 원정 때는 성공해서 7월 5일 멤피스가 함락되었고, 타하르카는 테베로 빤쓰런을 쳤다. 왕족들, 신하들, 백성들이 모두 사로잡혀 니네베 시에 끌려가게 되었다.
에사르하돈이 집으로 돌아간 틈을 타 테베에서 세력을 규합한 뒤 하이집트 쪽을 다시 탈환했다. 에사르하돈은 3차 원정을 하려고 했으나 기원전 669년 사망했다.
이후 아시리아에서는 16살 짜리 천재 왕인 아슈르바니팔이 즉위했다. 기원전 667년 다시금 이집트는 아슈르바니팔의 침략을 받았다. 이번에는 이집트가 완전히 박살나서 아시리아에 먹혔다. 그리고는 이집트를 대리 통치하도록 사이스의 권력자 네코 1세를 파라오로 앉힘으로서 이집트 제26왕조를 세웠다.
기원전 665년 타하르카를 지지하는 세력이 아시리아를 조지기 위해 난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짰으나 뽀록이 나서 진압되는 사건이 있었다.
타하르카는 25왕조의 원래 발원지인 누비아로 빤쓰런 쳐서 파라오를 계속 자칭하다가 기원전 664년 사망했다. 전성기를 이끌던 군주에서 한순간에 망국의 군주가 되어버린 불쌍한 인물. 다만 쿠시 왕국 자체가 망한 건 아니었고, 아시리아도 쿠시까지 진격하는 데는 좆도 관심 없어서, 빤쓰런 뒤에도 타하르카는 계속 쿠시의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타하르카는 25왕조의 전대 파라오들이 묻혔던 엘 쿠루가 아닌 누리 산을 자신의 장지로 선택하고 그곳에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후대의 쿠시 군주들도 타하르카의 전례를 따라 누리 산에 자신의 무덤을 조성했으며 이 산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인 누리-1 피라미드가 타하르카의 것이 아닌가 학자들이 추정한다.
이후 샤바카의 아들로 태어났던 타누타멘이 쿠시 왕국의 왕으로 즉위해서 파라오를 자칭하고 25왕조의 이집트 회복을 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