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장충단 집회 방해사건

조무위키

주의! 정말 극혐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너무 미개합니다.
주의! 이 글은 자ㅡ랑스러운 헬조선의 현실을 다룹니다. 이런 것들과 살아가는 당신에게 탈조선을 권합니다.
주의! 이 문서는 깡패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깡패 새끼들에게 삥뜯기거나 살해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

  1. redirect 틀:Trim Video] on YouTube

1957년 5월 25일에 있었던 장충단 잡회 방해사건. 일찍이 이처럼 대규모 집회에 정치주먹이 끼어든 사건은 지금까지도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민주주의와 자유가 주먹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는 이 엄청난 역사의 현장은 언뜻 보기엔 자유당과 정치주먹들의 승리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큰 덕을 단단히 본 쪽은 야당이었던 것이다. 김두한의 생각처럼 핍박받는 야당의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본 국민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야당을 동정하고 여당을 규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57년 5월 25일, 자유당의 실정에 염증이난 조병옥, 장택상, 민관식, 김두한[1]등의 야당인사들이 장충단 집회에서 자유당의 독재를 규탄하는 시국 강연회를 열었다가 정치깡패들에게 털려서 강연회가 취소된 사건이다.

상세[편집]

야당이던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은 장충단공원에서 자유당의 실정과 독재를 비판하는 시국강연회를 주최했다. 이 강연회에는 20만~30만이 넘는 서울시민들이 모였는데, 당시 서울인구가 116만명정도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이 졸라 많이 모인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집회답게 자유당이 알아챘고, 자유당은 동대문깡패들에게 집회를 좆망시키라는 지령을 내렸다.

야당의원들이 차례대로 시국강연을 하고 있을때 조병옥이 강연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유지광의 지령[2]을 받은 깡패들이 조병옥슨상님께 온갖 쌍욕과 비난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급기야 스피커를 불태우는 상황에까지 갔다. 시국강연을 하던 의원들은 김두한의 경호아래 피신하는데 성공은 했다만, 조병옥 슨상님이 깡패새끼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큰 부상을 입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깡패새끼들이 민주주의를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미개한 상황에서 호위로 나온 경찰들은 조금도 터치하지 않았고 오후 4시30분에 깡패때문에 집회는 종료되었고 깡패들도 떠났다.

이때가 되야지 중부경찰서 서장이 나타나고, 결국 범인이 나오긴 했지만, 이사건의 표면적인 수괴였던 유지광만 솜방망이 차벌을 받게 되는등 경찰이 깡패를 대놓고 지원해주는 미개한 사건들이 터지게 되면서 여론은 자유당에 완전히 척을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사건 터지기 전에도 깡패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였지만, 이사건에 대해 보도한 한 신문기사에서 '깡패'라는 말을 쓰면서 깡패라는 말이 보통명사로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야인시대에선[편집]

집회방해사건과 관련된 본질은 역사그대로 나온다.

이 드라마에선 진작에 동대문파에게 영역과 인원들을 뜯겨나가서 이를 갈고있던 이화룡의 명동파가 동대문파에 대한 민심이 매우 악화된 것을 감지하고 '요오오오시'하면서 동대문파를 공격했다가 곽영주가 보낸 경찰에게 조직이 공중분해당한다.(충정로 도끼사건.)

그리고 위에 나온 영상에서 눈치깠겠지만 중앙극장에서 도망치던 심영고자총을 맞기직전부터 등장하는 브금이 등장한다.

  1. 야당쪽 호위를 맡았다고 함.
  2. 자유당이 흑막이긴했지만 이사건을 일으킨 실질수괴는 이새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