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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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日本建築)은 일본 열도에서 형성되어 온 일련의 건축 양식들을 일컫는 용어이다.
특성[편집]
기본적으로 고대 중국의 건축양식을 베이스로 깔고 있다. 이는 야요이 시대부터 일본 열도가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온 것에 연연한다. 건축물은 목조 건축물이 주를 이뤘으며, 지붕은 곡선 지붕이 주로 채택되었고, 기와를 얹음으로써 마감이 되었다.
일본 열도는 히노키(편백나무)의 자생지이기 때문에 목조건축을 위한 자재가 충분한 편이었으며, 지진이 잦은 지형이라는 점도 목조건축물의 일본 열도 내에서의 정착에 주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 목재는 석재에 비해 그 무게가 경량이고 자재 채취 및 운반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동력이 석재에 비해 적었고, 따라서 목조건축이 석조건축에 비해 재료, 노동력 및 시공 시간을 절약한다는 점도 목조건축이 일본 내에서 우세를 점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역사[편집]
고대 불교건축[편집]
6세기경 일본 열도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일본 건축은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치게 되었다. 일본의 통치자들은 불교를 이용하여 그들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대규모의 불교 건축물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전근대 동아시아인들은 대체로 고층건물을 짓지 않았으나, 불교 건축물은 그 웅장미를 살리기 위해 페이크 다층건물로 짓는 경우가 많았는데, 본 건물의 외부에 다층건물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덧대는 차양지붕을 모코시(裳階)라고 한다. 모코시를 두르게 되면 그만큼 본 건물에 가해지는 하중이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본 건물의 기둥은 S급 목재가 쓰이게 되며, 기둥 상부에는 공포가 짜인다. 반면 모코시 지붕은 그 하중을 낮추기 위해 건축 양식들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건설된 대규모 건축물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통치자의 위엄을 느끼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 크고 웅장한 건축에 대한 욕망은 이어졌고, 이러한 정치 엘리트들의 후원에 힘입어 일본의 건축가들은 목조건축의 기술적 한계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쿄토의 니시혼간지(西本願寺) 아미타당의 규모는 42미터x45미터이며, 그 옆의 어영당의 크기는 48미터x62미터에 이르렀다. 특히 나라 시에 있는 토다이지(東大寺) 대불전의 정면길이는 57미터이고, 측면길이는 50미터에 이른다. 사실 오늘날의 토다이지는 나라 시대 이후 불에 탄 토다이지를 재건한 것인데, 원래의 토다이지는 정면의 길이가 86미터에 달했으며, 건물의 높이는 46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본화[편집]
비록 중국에서 전래된 건축 양식이 일본에 뿌리내렸다 할지라도, 일본은 중국과는 그 토양이 달랐고 따라서 중국식 양식이 항상 일본의 사정에 맞는 것은 아닐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고온다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지진이 잦았기 때문에 중국식의 양식을 그대로 채용했다가 가벼운 지진에도 건축물이 붕괴되는 사례도 흔했기 때문이다.
10세기경부터 일본에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혁신들이 고안되기 시작하였다. 먼저 나게시(長押)라고 불리는 횡부재를 기둥 상하부에 설치하여 기둥을 보강해 하중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어느정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그리고 비가 자주 내리는 다습한 환경에 건축물을 커스터마이징하기 위해 지붕의 경사를 보다 더 높였다. 지붕의 경사는 서까래와 지붕널판 사이에 지붕의 하중을 받쳐주는 요소인 하네기(桔木)를 박음으로 인하여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하네기의 등장으로 인해 서까래가 보다 더 지붕의 하중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서까래는 보다 더 미학적인 형태로 변환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건축물의 지붕은 진보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에도 시대[편집]
일본의 오랜 정치적 혼란이 수습되고 경제가 발전한 에도 시대에 일본 건축은 가일층 세련된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먼저 일본 건축의 오랜 발전방향인 건축의 경량화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의 혁신이 창출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산가와라(桟瓦)이다. 원래 기와는 수키와와 암키와로 나뉘어져 있으나 산가와라는 수키와와 암키와를 하나의 기와로 합쳐 기와를 경량화시킨 것은 물론, 건설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시키는 효과까지 얻어내었다.[1]
산가와라는 비록 그 모양새의 중압감이 떨어져 불교 건축물 등 고급 건축에는 잘 채택되지 않았으나, 민가 등의 건축에서는 빠른 속도로 보급되어 주류 기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본의 도심지 민가인 마치야는 에도 시대에 현재의 일본 전통가옥의 그것과 같은 모습으로 진보하였다. 지진이 잦고 목조건축이 주류라 화재가 잘 발생하기 쉬웠던 이유로,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주택에 큰 가치를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원가절감과 경제의 성장에 힘입어 그런 일본의 민가들도 세련된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처럼 경제가 가옥이 사회에서 갖는 중요성이 높아지자 일본 정부의 가옥보호정책도 강화되었다. 에도 막부는 적극적으로 화재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였는데, 운하망을 강화하는 한편 석조제방을 대거 건축하는 등의 노오오력을 기울여 화재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하였다.
갤러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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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한 전소 이후 재건된 토다이지 대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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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식 마치야
각주
- ↑ 산가와라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에도 개량 기와라는 이름으로 수입되어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