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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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말의 황건적[편집]
말에는 유벽이 두 사람 등장하는데 이 두 사람의 이름과 근거지가 같기 때문에 종종 혼동된다. 삼국지연의와 그 영향을 받은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한 사람인 것 처럼 나오거나 196년에 죽은 기록만 보고 유비와 반란을 일으킨 유벽이 허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예.
다만 196년에 참수당한 기록을 잘못으로 보고 그 유벽이 유비와 반란을 일으켰다는 관점도 있다. 비슷한 사례로 자까지 같은 유대가 있다. 이쪽은 두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삼국지평화에서는 헌제가 종실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야기할 때 뜬금없이 창주의 유벽으로 언급되어 종실인 것으로 나오는데, 유비가 조조로 인해 신야, 번성을 잃고 유벽에게 의탁하기 위해 멀리 창오로 가려 했다는 언급을 보면 유벽이 아닌 오거일 수도 있다.
196년에 죽은 유벽[편집]
황건적의 난이 진압된 이후에 잔당으로써 남아 여남, 영천에서 황소, 하의, 하만 등과 함께 할거했다.
초평 연간에 원술에게 호응하다가 이후 손견에게 호응하여 지원받았다. 그러나 196년에 조조의 공격을 받아 참수되었다.
위의 설명처럼 밑의 인물과 동일인물로 196년에 참수당한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관점이 많으며, 또한 정사 삼국지에는 유벽 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오기도 있기 때문에 각종 판본이나 창작물에서 여남, 영천에서 반란을 일으킨 부분에서 유벽의 이름을 아예 삭제하거나 유벽이 조조에게 투항했다가 밑에 나온 인물의 행적처럼 조조가 원소와 싸울 때 원소에게 호응했다는 것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밑의 인물과 열전 자체가 합쳐진 인물로 등장한다.
1과 이름, 한자가 같은 후한 말의 황건적[편집]
여남의 황건적으로 원소가 유비를 여남으로 보내 함께 허도 아래를 공격하게 하였다. 이후의 소식은 불명.
초창기 유비의 몇안되는 무장이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원소에 의지하고 있던 유비를 도와 여남성에서 공도와 함께 조조군을 공격할 준비를 하였으나 조조군의 공격을 받았다 위기에 몰려 자살하려는 유비를 말리고 고람에게서 유비를 지키려다가 고람에게 죽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