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크로마티
조무위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나 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나 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
이 문서는 참교육에 관련된 것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참교육의 은혜를 다룹니다. 만일 참교육을 거부할 시 성적은 개좆망행이니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헤이, 영쑤!! 돈 두 댓!" |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인물은(는) 존나 셉니다. 이 문서는 노오오력충도 따라갈 수 없는 초인적인 전투능력을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니 처맞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이 인물에개 개겨서 개같이 처맞아도 디시위키는 일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
놀랍게도 도쿄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요미우리빠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워렌 크로마티
Warren Livingston Cromartie | |
기본 정보 | |
생년월일 | 1953년 9월 29일 |
출생지 |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
국적 | 미국 |
신장 | 183cm |
체중 | 90kg |
선수 정보 | |
입단 | 1973년 몬트리올 1순위 |
투타 | 좌투좌타 |
포지션 | 외야수, 1루수 |
학력 | 잭슨 고교-데이드 대학 |
경력 | 몬트리올 엑스포스(1974~1983) 요미우리 자이언츠(1984~1990) 캔자스시티 로열스(1991) |
소개[편집]
교진 역사상 체고의 용병
야구도 잘했지만 주먹질도 잘하는 참교육의 대가이기도 했다.
96경기 연속 4할 유지라는 일본야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시절[편집]
몬트리올시절 주전 좌익수를 먹을만큼 메이저 시절 커리어가 나쁘지 않은 선수였다. 1981년엔 규정타석 미달이긴 하지만 3할을 치기도 했다.
눈에 띄는 타격 성적은 아니었지만 1981년을 제외하면 매 시즌 많은 경기에 나설만큼 내구성 하나는 좋았다.
1983시즌 종료 후 FA로 풀렸는데 데려간 팀이 메이저리그 구단이 아니라 요미우리였다.
요미우리 시절[편집]
1984년 입단 첫 해에 35홈런으로 이제껏 믈브에서 경험도 못해봤던 30홈런 시즌을 처음으로 맞이했다.
1985년엔 리그 최다 2루타를 포함 3할-30-100을 했지만 한신의 랜디 바스가 머폭발하는 바람에 좋은 스탯을 찍고도 묻혔다.
1986년엔 타율 0.363에 37홈런을 찍고도 타격왕, 홈런왕을 차지하는데 실패했다. 느프브 역사상 3할 6푼대 타율로 타격왕 못해본 선수는 지금까지도 크로마티가 유일하다. 1987년엔 86년보다 성적이 떨어졌지만 턱걸이로 3할을 찍긴 했다.
1988년엔 잘 하고 있다가 투수가 던진 공에 손가락을 맞는 부상으로 인해 망했다.
그리고 1989년. 장타를 포기하고 오로지 4할에만 치중하겠다. 4할치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하며 미친듯이 똑딱질에 전념했다.
규정타석인 403타석을 채우고도 4할을 유지했지만 경기 출전을 강행했고 결국 시즌 끝났을때 타율은 0.378로 떨어져 있었다. 이 해에 크로마티는 당연하게도 타격왕에 올랐다.[1]
1990년엔 시즌 초반을 거하게 말아먹었지만 후반기에 89년모드로 회귀하면서 2할 9푼대 타율로 체면치레는 했다.
1990년 시즌 이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NPB통산 779경기 951안타 171홈런 558타점 26도루 타율 0.321 출루율 0.350 장타율 0.558 OPS 0.908
메이저리그 복귀[편집]
1991년 캔자스에서 벤치선수로 3할 1푼대의 타격을 보여주면서 쏠쏠한 활약을 보였지만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MLB통산 1107경기 1104안타 61홈런 391타점 50도루 타율 0.281 출루율 0.347 장타율 0.402 OPS 0.749
은퇴 후[편집]
일본 독립리그 감독도 하고 코치도 하고 방송에도 나오면서 지냈다. 그런데 독립리그 감독시절 팬들한테 쌍욕하고 주먹 휘둘러서 짤렸다. 그래서 한때는 주특기인 주먹질을 특기로 살려 프로레슬러로 활동하기도 했다.
몬트리올 야구단 부흥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활동중이다.
본인의 일본시절을 담아낸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제목은 '일본에서의 장타'
기타[편집]
현역때는 지금 기아의 버나디나처럼 풍선껌을 존나 찰지게 씹었다. 씹고 불고 터트리는 모습이 익살스러움 그 자체였다.
관중석을 향한 만세 유도 제스처나 상대 배터리 도발 제스처 등 퍼포먼스가 상당했다.
머리에 공을 맞은 다음날에 결승 호무랑을 때려버리기도 했다. 사구 맞은 당시엔 병원에 실려갔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아보였지만 머리에 공 맞고 각성한건지 홈런을 쳐 버렸다.
1987년 주니치전에서 자신에게 사구를 던진 투수 미야시타 마사미에게 사과하라는 제스처를 했지만 미야시타는 찰지게 씹었다. 이에 빡치신 크로마티 성님께서 친히 미야시타의 뺨에 쨉을 날리며 참교육을 시켰다.[2]
1990년 카프전에선 고의사구를 하기위해 던진 공을 받아쳐서 끝내기 적시타를 치기도 했다.
일본의 만화인 돌격! 크로마티 고교의 모티프가 바로 크로마티다. ㄹ데 크로마티는 자기 이름을 지좆대로 쓴 작가한테 초상권 침해라면서 소송을 걸었다. 결국 작품 내에서 고교의 이름은 프로 선수하고 관계가 없다는 문구를 쓰는 것으로 쇼부쳤으나 크로마티는 성에 안 찼는지 작품 내에서 자기처럼 같이 이름이 쓰인 찰리 매뉴얼, 랜디 바스, 오레스테스 데스트라데 등의 선수들하고 협동해서 추가소송을 할랬지만 셋 다 크로마티 말을 쌩까서 소송은 물건너갔다.
메이저에서도 중견수를 본 적이 없던 크로마티지만 정작 요미우리에선 중견수로 뛰었다. 그렇다보니 요미우리시절 뇌수비도 간간히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