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오맹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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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7일(2021-02-27)부로 고인이 되었습니다.


吳孟達


1952년 1월 2일 복건성 하문 출생이다. 하지만 1959년 마오쩌둥의 탄압때문인지 부모님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해서 아주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1] 1973년 주윤발과 같은 시기에 TVB 연예인 훈련반에 들어가면서 연예인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TVB드라마 초류향전기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헬조선에선 주성치랑 같이 찍었던 영화에서 개그치는 할배로만 나오는걸로 알지만 홍콩내에선 초창기 윤발따거와 함께 꽃돌이로서 여러 드라마를 찍고 단독으로 여러 흥행작의 주연을 맡은 연예계의 거물로 취급받는다.

홍콩판 로다주[편집]

개천용이 됐다가 돈방석에 앉았던 당시 상황에 시원시원하고 놀기좋아하던 본성때문에 도박, 섹스, 에 빠져 순식간에 30만 홍콩달러의 빚을 지고 삼합회가 돈내놓으라고 쫓아댕기고 채무 불이행으로 깜빵에 갈뻔하는 엠창인생으로 전락했던적이 있다.

엠창인생이 된 오맹달은 랄부친구였던 주윤발에게 손을 벌려봤지만 윤발따거는 "친구여, 자네가 만든 빚은 자네가 알아서 해결하게!" 하면서 쿨하게 그를 거절했다. 오맹달은 분노하여 "난 이새끼 죽을때까지 미워하겠다!"하면서 그와 연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엠창인생인건 변함없었고 커리어도 끊겼다. 결국 몇년간 슬럼프에 빠져 인생을 낭비했다가 <천약유정>에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줘 금상장 최우수 남조연상을 얻으면서 재기했다. 엠창인생이었을 때 돈을 빌려주지 않은 주윤발이 축하인사를 보내자 대놓고 씹었다고. 하지만 얼마뒤 그 영화의 감독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엄청난게 알려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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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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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중 칼이 없는 자는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그러자 제자들이 칼을 꺼내어 "주여 여기 칼이 두 자루 있습니다."라고 하니 주께서 보시고 "아주 좋아, 충분해!"

주윤발따거말이다.

원래 오맹달이 맡았던 배역은 딴사람한테 맡길려고 했는데 윤발따거가 싹싹빌어서 캐스팅됐다고 한것. 이 말을 들은 오맹달은 이런 엠창인생을 사람으로 만들려고 피똥싸게 노력한 윤발따거를 찾아가 울면서 사과했다고 한다. 윤발따거는 눈물겨운 그의 사과를 듣고 이런 명대사를 남겼다.

그때 당시 형님께 돈을 빌려주는 것은 형님을 해치는 일입니다. 왜냐면 그 돈으로 형님은 도박을 계속 할것이 뻔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ㅠㅠ 파도파도 미담만 나온 윤발따거니뮤ㅠㅠㅠ

암튼 이런 킹갓엠페러머제스티 윤발따거의 선행에 광광울었던 오맹달은 주윤발과 형님동생하는 최고의 랄부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주성치와의 인연[편집]

주성치에게 오맹달은 스승, 동료, 랄부친구이다. 주성치가 동네친구는 바로 데뷔하고 7년간 보조출연자나 하면서 입에 풀칠할 때, 오맹달은 똥수저였던 그를 데려와 밥맥여주고 재워줬다고 한다. 그래서 주성치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본인이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소림축구까지 자신이 제작한 영화에 주역으로 캐스팅해줬다고.

하지만 주성치가 영좋지않은 인성에 대한 논란때문에 홍콩 영화판에서 아싸가되고 결정적으로 쿵푸허슬을 제작하는동안 자신이 주역으로 캐스팅된 드라마도 거절하고 쿵푸허슬의 주역인 돼지촌 촌장자리를 원했는데 주성치 개새끼가 딴놈을 캐스팅해버리는 대형사고를 터뜨린 것 때문에 지금은 서먹해졌다고 한다.

화해했니마니 하는데 주성치가 SNS를 거의 하지 않는걸로 유명하고 맹달따거가 2010년대부터 병으로 골골대기 시작해서 활동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정확한건 둘만이 안다.

사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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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간암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했으나 2021년 2월 27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배역[편집]

  1. 다른 본토출신인 이연걸, 견자단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6070때 대륙에서 학창시절 보내고 80년대 후반~90년대초반에 홍콩으로 이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