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노 리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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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 다도 양식이 이 사람에 의해 탄생했다. 아 물론 다도의 진짜 아버지는 중국이고 센노 리큐는 일본식 다도의 아빠다.
이전 문서에 이 사람 때문에 쓸데없는 양식이 다 생겨났다고 젹혀있던데, 오히려 리큐는 이전의 번잡한 다도를 간소화시켰다.
신분은 스님이었다. 법명은 '소에키'.
오사카에서 태어나 거의 중년... 아니 노년?에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선생을 맡았다.
와비(侂び)라는 미의식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수수하고 좁은 다실에서 차분하고 간소하게, 기품있고 소박하게 여하튼 마음을 다스리는 느낌적인 그런 느낌이다.
왜 이딴 미의식을 주장했냐면 인간 목숨이 한낱 파리새끼 수준인 센고쿠 시대에서는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마음을 조화롭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 틀리면 칼로 내리치거나 할복을 명령하던 시기인지라.
노부나가까지는 센노 리큐에게 나름 괜찮은 제자로 남았는데 다른 제자인 히데요시 이 원숭이 새끼는 진성 골칫거리였다. 간소함을 나타내는 다실을 황금으로 떡칠하여 황금다실을 짓질 않나 여하튼 과도하게 제멋대로였다.
얼마나 제멋대로였는지 나중에는 센노 리큐에게 개거지발싸개 같은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그 명령의 내용이...
리큐쨩~ 할복하라데스
결국 센노 리큐는 자결해서 죽었다. 센노 리큐가 죽은 가장 큰 이유는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려고 출병 계획을 세웠을 때 이를 반대하다가 히데요시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때 히데요시 보면 자기 천하인으로 올린 군략가 쿠로다 간베에가 '아 조선을 지금 왜 치고 있습니까? 쓸데없는 짓 자제요'라고 조선 침공에 반대 내지 소극적이었다는 이유-구로다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내쳐버리는 등 좀 맛이 가고 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