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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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의 행정구역 | |||||||||||||||||||||||||||||||||||||||
자치시 | 계룡시 | 공주시 | 논산시 | 당진시 | |||||||||||||||||||||||||||||||||||
보령시 | 서산시 | 아산시 | 파일:Img 01 07 001.gif천안시 | ||||||||||||||||||||||||||||||||||||
자치군 | 금산군 | 파일:부여군로고.gif부여군 | 파일:서천군로고.gif서천군 | 예산군 | |||||||||||||||||||||||||||||||||||
청양군 | 파일:태안군로고.gif태안군 | 홍성군 | |||||||||||||||||||||||||||||||||||||
참고 | 밑줄: 도청소재지 한국의 행정구역, 천안시 행정구역 |
개요[편집]
충청남도에 위치한 작은 동네이다.
롯데가 터를 잡고 발전시키고 있는 곳이고 각종 리조트 및 아울렛 등이 들어섰다.
맥도날드, 버거킹, KFC 등 주요 패스트푸드점은 하나도 없으나 그래도 롯데리아는 쓸데없이 두 곳이나 있는 동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백제가 마지막으로 도읍을 정한 사비성이 위치한 곳으로 삼천궁녀가 단체 익사했다고 알려진 부소산성, 그 유명한 정림사지 오층석탑, 그리고 금동대향로의 실물이 보존된 부여역사박물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근데 박물관 관리는 진짜 좆도 안함. 박물관에 나와서 관리하는 사람이 한 10명은 될까? 어쨋든 후진 동네임은 틀림없다.
백마강을 가로지르는 백마교를 건너가다 보면 거대한 성문이 보이는데 고증 따윈 좆도 안 해놨다. 위치선정도 병신. 그리고 거기 지나면 당시 백제의 궁전을 재현한 실물 크기의 모형도 있는데, 위치며 모양새며 다 주작이고, 심지어 판타지이다. 그대로 믿지 마라. 그 옆에는 각 지방의 찌질이들을 모아놓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JP가 이곳 최고의 아웃풋이다.
백제 멸망 이래로 계속 깡촌이었지만 백제를 역대 백제왕들 후장이 헐어버릴 정도로 빨아주던 미개한 좆본인들에겐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라, 일제시대에 서울 남산에 지어진 신궁보다 더 큰 규모로 신궁을 지으려고 했다. 심지어 이 신궁 공사에 덴노도 개입했다고 한다.
물론 완공되기도 전에 해방되서 걍 철거
읍면[편집]
舊 부여현 지역[편집]
부여읍[편집]
扶餘邑
면적 58.86㎢
본래 소부리(所夫里)라고 불리던 깡촌이었지만 538년 성왕에 의해 백제의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백제가 멸망하고 671년부터 686년동안 소부리주가 세워지고 나서는 개좆망했다.
부군면 통폐합시기 부여군 현내면, 대방면, 몽도면을 합하여 만들어졌고 지금의 이름은 1917년 10월 1일 현내면에서 부여면으로 개명되면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부여군의 중심지로 읍내에서 1키로 정도 걸어가면 마치 문명에서 벗어난 듯 미개한 농촌의 공간이 펼쳐진다. 읍내는 해발고도 28m 이상으로 건물을 올리지 못하게끔 고도제한이 걸려있다.
ㄴ요즘 애들은 읍내라고 한다며? 나 어릴때는 부여 아니면 시내라 그랬는데...
금강발 대규모 충적평야로 구성되있다.
규암면[편집]
窺岩面
면적 46.53㎢
본래 금암리에 있는 여울의 이름을 따 천을면이라 했는데 1914년 천을면, 송당면, 도성면이 합해고 규암에서 이름을 따 규암면이 되었다. 금강천이 청양군 청남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금암리 오천산에서 수목리까지 100m내외의 구릉지대로 되어있으며 금강 대곡류와 금천의 합류지점은 구룡평야의 일부에 해당한다. 현지인들은 이상하리만큼 규암이라 하지 않고 기암이라 부른다. 중심지인 부여읍엔 규제와 유물 때문에 개발이 어려워서 사실상 규암을 신도시 취급한다. 신축 아파트는 거의 규암에 있고, 새로 짓는 시설도 규암 위주로 짓는다. 보령선 역을 규암면에 짓는 이유도 이거 때문이다.
은산면[편집]
恩山面
면적 69.45㎢
1914년 부여군 가좌면, 공동면, 방생면을 합하고 은산봉의 이름을 따 은산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산지가 많고 하천유역에 평야가 깨작깨작 붙어있는 형태라 보리농사를 많이 짓는다는듯? 밤나무도 많이 심었다.
각대리 숭각사지, 금공리 + 가곡리 + 신대리에 산재한 고인돌, 가중리 도천사지가 있다.
은산리 산자락에는 귀실복신이 백제부흥운동을 했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당산성이 있으며 이 당산성일대에서 당군에게 갈려나간 백제부흥군을 기리는 은산별신제라는 전통의식이 존재한다.
초촌면[편집]
草村面
면적 27.95㎢
1914년 논산에 합병되는 노성군의 소사면을 흡수하면서 면적이 커졌다.
망월산, 감투봉의 산지를 제외하면 모두 평야지대로 여름철 심심하면 홍수로 털렸지만 초평리 ~ 응평리, 소사리 ~ 진호리간의 제방공사덕분에 안정적인 곡창지대로 탈바꿈했다.
붉은간토기, 검은간토기, 납작한 밑, 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으로 다른 헬반도지역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와는 완전히 딴판인 토기와 진주 대평리 유적이 남강댐건설로 수몰됨에 따라 한국최대규모의 청동기유적이 된 것으로 유명한 송국리 유적이 초촌면에 있다.
舊 석성현 지역[편집]
석성면[편집]
石城面
백제 진악산현(珍惡山縣)으로 불렸는데 686년 석산현(石山縣)으로 개명되어 부여군의 영현으로 되었다. 940년에 석성현으로 개명되었으며 1414년 이산(尼山)과 합해져 이성현(尼城縣)이 되었다가 다음해에 고다진으로 통하는 요충지라해서 복구되었다.
이 석성군은 1914년 군의 절반인 현내면, 북면, 증산면, 비당면이 석성면으로 개명되어 부여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논산으로 빠져나갔다.
사비성의 위성요새로 보이는 포곡식 석축산성인 석성산성, 인강사지, 석성군시절 옛 현청인 동헌, 석성향교가 있다.
1973년 현북리가 부여읍으로 이관되었다.
舊 임천현 지역[편집]
임천면[편집]
林川面
임천군의 중심지.
백제에서는 가림군(加林郡)이라 불리며 수도방어선의 핵심으로 엄청난 푸시를 받았다. 웅진도독부로 백제고지를 지배하려 했던 당나라새끼들의 지원을 받은 백제부흥군이 672년 가림성에서 신라군을 공격했지만 신라한테 털리면서 신라땅이 되었다. 이후 고려시대까지 주현급 마을로 취급을 받아왔지만 고려중후기이후부턴 그냥 깡촌으로 전락.
1914년 임천군 읍내면, 지서면을 스까해 임천면으로 개명되었다. 주머니꼴로 북쪽이 돌출된 평면형 지역이다. 북쪽의 금성산, 남서쪽 무제산발 잔구성 산지를 제외하면 금강본류로 들어가는 여러 지류때문에 충적평야가 크게 발달했다.
구교리 대조사, 칠산리 치산서원, 군사리에 있던 가림성, 임천향교, 만사리 퇴수서원이 있다.
세도면[편집]
世道面
면적 41.92㎢
1914년 임천군 인세면과 초신면이 합하여 만들어졌다. 1973년 장암면 사산리를 병합했다. 금강이 곡류하는 사행천의 보호사면을 이루고 있어서 넓찍한 충적평야를 가지고 있다.
장암면[편집]
場岩面
면적 47.70㎢
임천군 북박면, 내남면, 성백면을 합하고 장암의 이름을 따 장암면이 되었다.
합곡리, 원문리, 석동리는 구룡평야의 일부라 충적평야지대이고 금강 곡류의 보호사면인 정암리, 장하리, 하황리는 홍수가 날때마다 심심하면 털렸다고 한다.
하천부지면적이 군내에서 콩번째로 가장 넓은 면이다.
장하리 흥학당, 부여 장하리 3층석탑, 점상리 조신묘, 상황리 고분이 있고 정암리 + 북고리 + 합곡리에는 파손된 토성이 즐비해있다.
충화면[편집]
忠化面
면적 37.08㎢
성충, 계백등 백제8명의 충신이 태어난 곳이라는 구전 전설때문에 팔충면(八忠面)이라 불렸는데 1895년 가화면을 합하면서 팔가면이 되었다. 지금의 충화면은 1914년 팔가면에서 개명된 것이다.
북의 금천수계와 남의 금강본류수계로 생활권이 나뉘어 있고 주곡농업을 주로 하며 이외에 양잠, 염소사육등으로 입에 풀칠중이다.
오덕리에 선좆과 평해공주의 태실비가 있다.
양화면[편집]
良花面
면적 32.78㎢
1914년 임천군 대적면, 홍상면을 합하고 적량과 홍화에서 이름을 따와 양화면이 되었다. 동으로 금강본류가 흐르고 서로 여사천이 합류하기에 충적평야가 발달되있다.
舊 홍산현 지역[편집]
홍산면[편집]
남면[편집]
면적 20.99㎢
홍산군의 남쪽이라 남면이라 한 것인데 1914년 상동면의 일부를 흡수했다. 북부는 금천발 충적평야인 남평평야이고 남부는 장암면, 충화면, 옥산면과 자연경계를 이루는 구릉지역이다.
내곡리에 동절사, 삼룡리에 효자정려문이 있다.
옥산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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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25.37㎢
1914년 홍산군 하서면과 상서면이 합해지고 옥녀봉의 이름을 따 옥산면으로 이름지어졌다.
T자모양의 곡을 이루는 산악지대가 존재하고 서쪽은 옥녀봉, 동쪽의 비홍산, 남쪽의 원진산에 둘러싸인 분지지대이다.
최근에 본 면에서 한 틀딱 여러명이 장의차가 지나가자 통행료를 내라고 협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해 주민들은 장례식방해죄와 공갈죄로 곧 경찰조사 들어간다고 한다. 아주 신안군, 밀양시랑 동급인 새끼들이다 씨발 ㅉㅉ
내산면[편집]
면적 40.45㎢
본래 성주산, 아미산, 월명산 안쪽에 있다고 산내면이라 했고 지금 내산면의 실질 전신은 1895년 월하산 안쪽을 분리한 내산내면이다. 1914년 대야면의 일부를 흡수했다. 경지율이 19%밖에 안되는 산악지대이다. 주암리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있다.
외산면[편집]
면적 56.03㎢
1895년 월하산 바깥이라 하여 외산내면이라 했는데 1914년 내산면의 일부를 흡수했다. 차령산맥이 주맥을 이루는 산악지대이고 그사이에 웅천의 상류가 있다. 경지율은 군내에서 가장 낮은 15.7%고 부여군의 유일한 소방목지인 외산목장이 있다.
장항리에는 갈포를 원료로 하는 벽지공장이 있다. 무연탄이 만수리, 장항리, 수신리, 지선리에서 생산되는데 이 무연탄은 서해화력발전소가 있는 비인쪽으로 간다고 한다.
무량사 , 깁시습 부도, 화성리 오층석탑이 있고 만수리일대 수리바위쪽 협곡지역이 단풍철 ㅆㅅㅌㅊ 랜드마크로 유명하다고 한다.
JP의 생가가 여기있다.
구룡면[편집]
면적 21.86㎢
1908년 홍산군 해안면(海岸面)으로 불리다가 1914년 상동면을 흡수하고 구룡들의 이름을 따 구룡면이 되었다. 북쪽은 망진산을 비롯한 산악지대고 남쪽은 원래 바다였을듯한데 지금은 구룡천과 금천이 합류하며 생기는 충적범람원인 구룡평야로 구성되있다. 이때문인지 금강에 제방이 생기기전까지는 금천의 범람으로 심심하면 침수되던 곳이었다.
태양리 백제석실고분이 있고 구봉리와 논치리에는 백제시대 산성이 있으며 금사리에는 남방식 고인돌과 창렬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