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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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년(명종 6년)∼ 1599(선조 32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탈영이라는 중죄를 저질러서 각종 매체에서 보면 런승만 못지않은 쓰레기로 등장한다. 불멸의 이순신에선 이순신을 존나 까대고 견제하던가 명량에선 거북선에 불을 지른다던가...
하지만 실제로는 인성질은 하지 않았고 탈영이든 뭐든 오히려 이 사람이 온전히 보전한 12척의 판옥선 덕분에 충무공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승산이 없다고 보고 포기해서 일본 해군과 안 싸우려고 뻐댕겼던건 맞지만 드라마처럼 이순신한테 대들기 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찌질거린다고 갈굼 먹었다.
미복귀니 뭐니 하는 소리가 있는데 탈영한건 팩트다. 이순신도 배설이 육지로 가던 날 일기에 "이 날 배설이 도망갔다."라고 쓰고 있다.
쉽게 정리하면 칠천량의 PTSD를 극복 못하고 탈영한것떄문에 인생 조졌다. 그 한번만 버텼어도 전후에 공신대우받고 잘먹고 잘살수 있었을거다. 근데 하기사 당시에는 누구나 명량해전은 승리 못한다고 할 정도로 무모하기 그지없는 싸움이었기에 칠천량에서 심하게 데인 배설이 싸우긴 힘들었겠지만
그의 형제들은 임진왜란 때 여러 공을 세웠지만 배설이 모반 혐의로 인하여 부친을 포함한 일가가 사형에 처해진다.
솔까 왜선이 600척인데 12척으로 이기자는게 말도 안되는소리다.
영화 명량에서는 거북선을 불태우고 이순신도 암살하려고 한 묘사로 인해 배설의 후손이 감독하고 각본가를 고소하기도 했다. 400년전 죽은 사람 모욕해도 송사에 휘말릴 수 있으니 여기서도 조심들 하자. 다만 이건 배설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고 비하한 것이니 고소당할만 하다.
그렇다고 원균 까내린거 갖고 원가 놈들이 지랄하는 것까지 두려워하진 말자. 그건 팩트로 까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