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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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문관.
탐관오리란 주장에 대한 반박[편집]
애비새끼가 조선의 상병신성 증명한 임오군란 원인을 만든 탐관오리 민겸호다.
연좌제의 나라 개조선 아니랄까 봐 단순히 탐관오리의 아들이란 이유로 백성들에게 미움받았다.
심지어 전봉준이 봉기할때 공표한 부패관료 블랙리스트 중 하나다.
이 탓에 지 친척인 민자영처럼 타이밍좋게 죽어서 미화된 놈이란 말도 있다...는 ㅅㅂ 개지랄
세도가문인 여흥민씨란 이유만으로 탐관오리일 거란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조선 왕가가 병신이라고 세종대왕까지 병신일 거란 개소리랑 동급이다
민영환은 오히려 대한제국의 진정한 충신이었다.
백성들한테 미움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탐관오리였을 거란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최고 반례로는 바로 김홍집이 있다.
이분은 심지어 백성들한테 맞아죽었다.
아니, 그럼 김홍집은 한명회, 김자점, 이완용 뺨치는 조선의 최고 간신이란 말인가?
아무튼 민영환은 이괄 뺨칠 정도로 진급이 엄청나게 빨랐는데, 20대에 호조판서, 병조판서 모두 꿰차고 30대 초에는 형조판서까지 꿰차게 된다.
이분은 지금으로 치면 20대~30대 초 나이대인 기재부장관, 국방부장관, 법무부장관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런 요직을 다 차지하고 다닐 수 있었던 건 친척이자 온건개화파의 영수였던 민영익이 정쟁에서 밀려난 이후 그 포지션을 대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애새끼 때부터 정부의 요직 다 해드시며 중앙에서 뺑뺑이 돌았는데, 과연 백성들을 괴롭힐 뭔 껀덕지가 나올진 의문이다.
당장 동학농민운동의 트리거였던 조병갑만 하더라도 지방의 수령인 고부군수였다.
그래도 중앙 통제에서 벗어난 지방고을 수령이어야 뭔가 백성들 괴롭혀서 해먹을 껀덕지가 나온다.
근데 상술했듯 민영환은 쪽쪽이 떼고 걸음마할 때부터 이미 중앙 관료가 되어 노예로 구르고 있었다.
물론 지 애비도 중앙의 관료이면서 해먹은 케이스긴 하지만... 애초에 그 새낀 뭘 해먹었다는 확실한 기록이 있잖아?
근데 민영환은 딱히 뭘 해먹었단 기록이 없다.
근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민영환이 탐관오리란 건지;
차라리 애새끼 때부터 요직 다 해드셨다고 세도정치 낙하산인사라고 까는 거면 모를까
개화 운동[편집]
여흥 민씨가 대부분 그랬듯이 친러파, 온건개화파였다.
그렇다고 고좆이나 민비마냥 러시아한테 이거 퍼주고 저거 퍼주고 다 퍼주는 호구새끼였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민영환이 친러스탠스였던 건 오직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누가봐도 일본은 강한 나라고 대놓고 조선을 삼키려는 게 눈에 보이는데 나름 일본 견제할 강대국을 끌어들인답시고 찾아낸 게 러시아란 얘기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보면 민영환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한 건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 맞긴 하다.
결국 외세만 더 늘어난 셈이니까.
그런데도 민영환은 당시의 썩어빠진 친러파들이랑 분명히 달랐다.
당시의 친러파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전제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의 의사도 무시하고 무리하게 외세를 끌어들인 것이지만,
민영환은 순수하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 손 벌리며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초에 민영환은 대깨러가 아니었다.
미국이라도 끌어들여 독립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친미로 갈아탔을 사람이었다.
애초에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막기 위해 이승만을 밀사로 파견한 사람이다.
그리고 민영환과 다른 친러파들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다른 친러파 온건개화파들은 애초에 정치 체제를 바꾸는 데에 관심이 없었고, 오직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것도 외래 문물의 본질적 가치에 주목한 것이 아닌, 외래 문물들을 단순히 강력한 신무기, 신기한 사치품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에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민영환은 달랐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성향 조직이었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최대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으론 입헌군주제를 생각하고 있었고, 필요하기만 하다면 공화정까지 계획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즉 청나라 말기에 비유하자면, 다른 친러파들이 양무운동을 하고 있었다면 민영환은 변법자강운동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독립협회의 이승만이 조선 정부에 의해 모가지가 따일 위기에 처하자, 한규설과 함께 적극적으로 구명해서 이승만의 목숨을 구해내기도 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이승만의 목숨을 구했다.
런승만이라 까이긴 해도, 이승만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생각해보자.
이순신 구해낸 거 원툴로 지금까지 영웅으로 추앙받는 정탁처럼 민영환도 이승만을 구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후대에 두고두고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위인이다.
이게 바로 민영환이 단순히 자기 권력 보전하려고 온갖 똥꼬쑈를 하던 당시의 조선의 썩어빠진 친러파들이랑 분명히 다르다는 씹증거다.
나라를 지켜낼 수만 있다면 뭐든 했을 사람이고 자기 목숨까지 던질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이다.
그리고 지켜내지 못하자 진짜로 목숨을 던지게 된다.
하지만 고좆 입장에서 눈엣가시였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후원하던 민영환이 무사할 리는 없단 게 불 보듯 뻔한 일...
사실 민영환 본인도 문제였는데, 겁도 없이 고좆에게 서구를 본받자며 민권 신장과 입헌군주제를 건의하기까지 한다.
결국 고좆 후빨 매국조직이던 황국협회에 의해 탄핵당해 실각하게 된다.
실패한 독립 운동, 그리고 자결[편집]
위에서 말했듯이 민영환과 한규설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방해하기 위해 이승만을 밀사로 보내게 된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우린 알고 있겠지만 결과는...
그리고 진짜 안타까운 점이 있는데 (위에서 말했듯) 민영환이 공화주의자로 몰려 정치적 파워를 잃는 바람에 을사조약 체결 당시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한규설 혼자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고 5:1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진 RG?
결국 을사조약을 막지 못, 아니 아예 막아볼 기회조차 없었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잃는 장면을 자기 집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자리에 민영환만 있었더라도...
결국 개빡친 민영환은 여러 뜻있는 관료들과 함께 을사오적을 처벌하라고 상소를 수차례 올리지만...
일본 헌병에 의해 번번히 무산되고 개같이 실패하고 만다.
뭘 해볼 만한 팔다리 다 잘리고 목숨을 걸고 지키려던 나라의 멸망마저 막지 못한 민영환은 결국 저승에서 응원할테니 모두 독립을 위해 힘내라고 하고 자살했다.
이 시기 나라를 망친 것를 사죄한답시고 자살하거나 용서를 구한 고위층은 그가 거의 유일했다.
독립운동이라도 해보지 왜 그냥 죽었냐는 이상한 말이 떠도는데,
민영환 정도의 위치의 사람은 자결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독립운동가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의 고위층은 나라가 뺏기니 전부 일본의 귀족으로 갈아탔다.
애초에 나라를 지킬 마음이 없고 일신의 부귀영화 지키기에만 급급했다는 뜻이다.
즉 일본 입장에선 조선 정부가 스스로 원해서 나라를 갖다바쳤다!고 홍보가 가능하단 뜻이다. 솔직히 이건 팩트 아닌가?
하지만 민영환과 한규설은 달랐다.
민영환은 아예 자결했고, 한규설은 일본의 작위를 끝끝내 거부했기 때문이다.
조선 정부가 스스로 나라를 갖다바쳤다는 주장의 반례인 셈이다.
민영환은 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며 별짓을 다해봤고, 결국 무슨 수를 써도 먹히지 않고 결국에 남게 된 건 몸뚱아리 하나뿐인데,
최후엔 그 몸뚱아리의 목숨까지 끊어서 민영환급 고위 인사가 한일병합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자결했다!라는 한 줄의 기사로 남게 된 것이다.
아무튼 나름대로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해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얘기이다.
근데 ㅅㅂ 이런 거랑 별개로 그냥 나라 멸망 못 막은 거 책임 지고 백성들에게 사죄한답시고 자결한 것만으로 충분히 대단한 거 아니냐?
개센징 중에 지 잘못인 것조차 책임 안 지는 새끼가 수두룩한데 말이지
자결 이후[편집]
자택에서 자결한 직후 그 시신이 누워있던 마룻바닥 자리에서 대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그냥 정몽주와 비슷한 케이스의 우국충정을 상징하는 썰 비스무리하다 느껴지겠지만 진짜 당시의 사진이랑 당시의 대나무가 전해지고 있단 게 문제
한옥의 마룻바닥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나무가 도저히 자랄 수 없는 환경이다
대나무는 지상의 나무보다 땅 속의 뿌리가 훨씬 큰데, 마룻바닥의 틈새는 흙이 쌓여봤자 잔디풀이 조금 자랄까 말까 한 정도이다
말 그대로 당대의 미스터리였다는 얘기
일본에선 당연히 이 대나무 사건이 백성들의 반일정신을 고취시킬 거라며 뽑아버렸지만,
골 때리게도 그 대나무엔 뿌리가 없었다고 한다.
이 대나무는 실제로 고대박물관에 전시되고 있고 실제로 뿌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