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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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967년 독일, 프랑스의 교포와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당시 중정부장이였던 김형욱의 간첩조작사건. 그리고 2년 뒤에 3선 개헌이 일어났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박정희가 3선 개헌 덮으려고 이짓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60년대 독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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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반인반신은 경제 개발할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서독으로 광부와 간호사를 때거지로 수출했다. 당시 서독은 히틀러가 싼 똥을 잘 치워놔서 예전의 강대국의 위상을 회복했기에 일찍이 서독으로 가는 유학생들이 많았다.
동독도 소련 후장 잘 빨면서 히틀러가 싼 똥 다 치워놓고 빨갱이 나라 중에서 두 번째로 잘 살던 나라가 됐다.
이때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양국의 주민들은 서로 친근하게 부르면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던 사회였다.
당시 한국인들의 대북관[편집]
6.25로 전부 거지 되고 인민재판 꼬라지를 겪었는데 퍽이나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있나. 월북하던 사람들은 원래 그런 인간들이라서 그랬을 뿐이다. 당시 의외로 대북관이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 있는데, 출처를 찾아보면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같은 정신 나간 운동권 관련 서적이다. 제발 운동권 개소리를 진실이라고 쓰지 마라. 하도 종북몰이를 해대는 보수 정부 때문에 반감 있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택도 없는 선날에 당하지는 말아야지.
ㄴ 근데 이 말도 다소 무리는 있는 게, 이렇게 말하면 제2공화국 때 있었던 평화 통일 시위[1]와 장면 내각의 군비 감축 정책, 그 반발로 생긴 5.16 등이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위 글대로 북한에 부정적인 사람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에이, 곧 통일이 될 건데 좀 넘어가면 뭐 어때?' 같은 말랑말랑한 안보 의식을 가진 사람도 더러 있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비극의 시작[편집]
올 ㅋ 걸려들었엉💜[편집]
근데 1968년, 북괴가 김신조를 보내고 울진과 삼척에 공비를 보내서 양민을 학살하는 등, 천조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로 인해서 안 그래도 심했던 북괴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 되었고 시기도 마침 3선 개헌을 할 때라서 야당과 지식인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그들이 눈에 거슬렸던 반인반신은 개헌을 묻기 위해, 북한 대사관을 자주 왔다리갔다리 한 독일 교포와 유학생들을 표적으로 삼게 되었다.
월척-임석진[편집]
개헌을 묻어버리기로 작정한 반인반신은 주 서독 대사관으로 하여금 북한 대사관과 접촉한 사람들의 정보를 캐오기 시작한다. 때마침 아주 좋은 촉매가 하나 생긴다. 바로 조선일보의 어느 기자가 동베를린의 어느 대회에 관람을 갔다가 사라진 것이다. 중정은 자료를 조사하다가 그 기자와 친했던 임석진이 북한 대사관에 방문하고 그들에게서 난수표를 받은 것을 발견한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눈치 챈 임석진은 빨리 머한민국으로 가서 반인반신에게 직접 난수표를 보여주며 자신이 북괴로부터 공작금을 받고 대남공작활동을 했다, 이렇게 사는 놈이 여럿 된다면서 자수했다.
선정 대상[편집]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
당시 한국사회에서는 충격이 컸다. 당시 똑똑이들과 금손들이 북한 대사관과 접촉했던 것이 알려졌으니까. 그중에서 일부 들면,
- 이응로: 화가. 프랑스에서도 인정받던 금손이었다. 납북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북한과 접촉.
- 윤이상: 작곡가. 말이 필요없는 금손. 이분은 작품구상을 위해 평안도 강서군에 있는 강서대묘 사신도를 보고 왔다.
- 천상병: 괴짜 시인으로 유명했던 사람. 아예 독일에도 안 간 사람이다. 이분도 당시엔 이름있던 금손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 때문에 고문 받고 진짜 이름대로 골병이 들었다.
- 그외 파독 광부 중 이산가족: 대체로 좋은 대학 나왔던 인텔리들이었다. 이들은 납북됐거나, 북에 있던 이산가족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납치[편집]
헬조선 대사관은 김형욱의 지령에 따라서 불란서와 서독에 있던 한국인 교포들 200여 명을 끌어들이는데, 이놈들은 아무한테 알리지 말고 조용히 가자며 차에 태우거나, 아예 읍읍해서 한국으로 데려왔다. 지금이나 당시나 국제법 상으로는 해외에 사는 범죄자는 당국의 허가 혹은 인터폴 같은 걸로 잡아야 한다. 근데 대사관이 저딴 짓을 했다.
고문[편집]
이렇게 납치된 분들은 중정 취조실에서 온갖 고문을 받았다. 그냥 북한과 이야기만 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코렁탕을 먹였다. 윤이상 아재의 경우 고문으로 대가리에 빠따 하나 맞고는 머리에 피가 철철 나서 그 피로 자기는 간첩이 아니라고 혈서 쓸 정도였고, 천상병 아재는 전기 고문 때문에 정신병이 걸렸을 정도였다.
재판과 유럽의 경제 제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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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 간첩단이라 불렸던 피고문자들은 재판에 섰다. 상기한 대로 이 재판정에는 독일, 법란서에서도 인기 있던 윤이상과 이응로가 있었다. 때문에 이 재판 소식이 독일과 프랑스, 아니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완전한 나라 망신이 되었다. 때문에 독일인과 프랑스인들은 한국대사관 앞에서 윤이상과 이응로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인권 후진국이라며 한국에 대해 강한 비판을 했다. 근데 헬조선이 계속 뻐기고 지랄하다가 이들이 경제제재를 가해버린다.
결국 헬조선은 깨갱하며 고추가 작아졌고 그 결과 동백림 간첩단이라 불리던 피고문자 100여 명들은 석방된다.
각주
- ↑ 당시 시위 구호가 그 유명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