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토 마사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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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4천왕 중 한명으로 다케다 신겐에게 신뢰받은 무장이다.
다케다 노부토라의 중신이었던 쿠도 토라토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이 노부토라 새끼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바람에 형과 같이 유랑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다케다 신겐이 노부토라를 추방하면서 거지 형제는 가이 다케다로 돌아올 수 있었고 이 때 신겐은 노부토라의 행위에 대한 사과, 망명에 대한 사과와 함께 돈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사토요는 가와나카지마를 비롯한 각종 전투에 참가하고 미노와 성 공략에서도 성과를 올리면서 점점 신겐의 주요 무장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568년에 후다이 명가인 나이토 씨를 계승하였고 1573년에는 미카타가하라 전투에 참가하였다. 마사토요는 생전에 전공 표창장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다케다 신겐은 마사토요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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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토요 정도로 무사의 재능이 있다면 보통 인간 쯤은 압도적으로 뛰어넘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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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번도 표창장을 안 줬다고 한다. 이 당시 표창장은 많이 받을수록 역량이 인정되는 경향이 있었으며 현대로 치면 일종의 직무 경력서와 같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신겐에게는 마사토요가 아무리 놀라운 공적을 세워도 그 정도야 마사토요라면 당연히 해낼거라고 생각했던듯 하다. 여하튼 표창장이고 지랄이고 마사토요 본인이 "개인의 공로에 매달리는건 병신짓"이라며 딱히 원하지도 않았다고 하니 큰 문제는 없었던것 같다.
신겐 사후 다케다 가츠요리가 대빵 자리에 오르면서 나가시노 전투가 터지는데, 당연스럽게도 마사토요는 극렬히 철수를 요청했다. 공격하면 피해가 막대하므로 일단 후퇴를 하거나 혹은 장기전으로 적의 군량이 없어지길 기다렸다가 한번에 치자! 라고 진언했으나 존나 씹혔다고 한다. 결국 다케다군은 패배하였고 마사토요는 바바 노부하루와 함께 가츠요리가 퇴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후미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