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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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월 7일 - 1990년 11월 1일
그 유명한 내 사랑 내곁에라는 노래를 자기 목숨과 바꾸어 세상에 알렸다.
개요[편집]
원래는 학구파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영향인지 어릴 때 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냈으나 음악을 하게 되면서 성적은 자연스럽게 내려갔고 결국 고등학교도 중퇴하였다.
음악활동에서도 나중에 방황을 하게 되다가 언더그라운드 여러 그룹에서 활동하면서 가수로서의 진면모를 보이게 된다.
흔히들 김광석, 유재하와 같이 비운의 스타로 알려진 인물이다.
성격은 상당히 거칠면서도 내적으로는 상당히 여리고 눈물도 많았다. 1987년 11월 1일 유재하가 세상을 떠나자 엄청나게 울었다고 한다.
이 내적의 여림은 대체로 술로 많이 달랬는데 결국 건강이 크게 악화 되고 결국 5집 넋두리를 낼 시점부터 간경변에 걸리게 된다.
넋두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혼신을 다해 부른 '내 사랑 내 곁에'의 목소리와 비슷하다. 원래는 미성의 목소리를 가졌지만 후에는 건강 악화로 익히 아는 거친 목소리가 되었지. 1집 봄여름가을겨울과 2집 사랑했어요랑 후에 나오는 노래들을 들어보면 괴리가 심하다.
사망 및 내 사랑 내 곁에[편집]
결국 1990년 11월 1일 간경변이 악화되어 안타깝게 요절하고 만다.
알다시피 정확히 3년전에 유재하가 요절한 날짜와 같다.
여담으로 에픽하이 2집에 수록된 11월 1일을 들어보면 1절에는 유재하, 2절에는 김현식을 추모하는 가사임을 알 수 있다. (1절에는 가리워진 길, 2절에는 내사랑 언제나 그대 내 곁에, 비처럼 음악처럼 등이 언급된다.)
자신의 목숨과도 바꾼 노래인 6집 내 사랑 내 곁에는 1991년 골든디스크 대상에 오르고 200만장이 넘게 팔렸다.
싱어송라이터로 아는 사람들이 이 내 사랑 내 곁에도 김현식 본인이 작사 및 작곡을 한 줄 알지만 사실은 당시 유명한 작곡가 오태호씨가 어느 공연 대기실에서 자신이 부르고 있었는데 그걸 김현식이 듣고 자신에게 줄 것을 의뢰하여 이렇게 대작이 완성 된 것이다.
히스토리 후에서 고 김현식에 대해서 다루는 특집을 방영한 적이 있으니 한 번 보자.
그가 6집을 얼마나 처절하면서도 혼신을 다 해 녹음했는지 나와있다.
주변 사람들은 김현식이 평소에는 항상 고통스러워 하다가도 6집 녹음만 하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고 증언했다.
술 때문에 상당히 악화된 병이라 술로 고통을 참고 생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나중에는 술로도 고통을 참을 수 없게 될 상황까지 갔다. 그 고통을 참으면서 녹음한게 6집이다.
이 내 사랑 내 곁에는 사실 한 번에 녹음한 건 아니고 건강악화로 부분별로 녹음하여 완성시킨 것이다.
사후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하거나 창법을 따라하기도 했지만 원곡을 넘는다는 평가는 없다.
김현식하면 이 노래이다.
대표곡[편집]
내 사랑 내 곁에
비처럼 음악처럼
넋두리(당시 김현식이 느꼈던 절망감, 허탈함, 슬픔 등을 절규처럼 표현한 곡이라 김현식의 노래 중 가장 어렵다고 평가받는 곡이다. 때문에 인지도에 비해 커버곡이 너무나도 적은데 김수철을 제외하면 제대로 부른 가수가 없다.)
사랑했어요
사랑사랑사랑
비오는 날의 수채화(이건 정확히는 권인하랑 강인원이랑 같이불렀지만 김현식파트가 워낙 강렬함)
봄여름가을겨울
눈 내리던 겨울밤
어둠 그 별빛
도시의밤
골목길
쓸쓸한 오후: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처음으로 쓴곡인데 배리매닐로우 노래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그것만 빼면 좋다
아무말도 하지 말아요
떠나가 버렸네
이별의 종착역
언제나 그대 내곁에
여담[편집]
11월 1일에 유재하와 같이 운명을 달리한 터라 방송에서도 추모일이 다가오면 가끔씩 이 두 사람을 주제로 엮어 특집을 내보내기도 한다. (라스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여기서 그에 대한 일화도 엿볼 수 있다.)
몇 년전에는 미공개 곡과 사망 직전 까지 녹음한 곡들을 엮어 나온 앨범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추모콘서트가 매년 열리는 듯 하다. (이것과 관련해 안 좋은 일이 최근에 벌어지기도 했다.)
거친 목소리 만큼이나 거친 성격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특히 주먹이 매워서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만에 쓰러졌다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들국화 앨범 타이틀도 참여했고 밴드보컬 김종진 전인권과도 친분이 깊은 사이이다.
이 분의 노래들 중 넋두리는 매우 어려운 난이도로 유명하다. 때문에 편곡도 거의 되지 못했고 사실상 김수철 말고는 원곡의 느낌을 담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될 부분이 있는데 이 분도 대마초를 하신 흑역사가 있다. 신해철과 마찬가지로 좀 묻히는 부분이 있는데 특이한게 있다면 아들인 김현식을 어머니가 직접 신고하였다고 한다.
사실 김현식이 의사가 말렸는데도 술을 많이 마신 이유와 간경화로 사망에 이르게 된 이유가 아끼던 후배 유재하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도 유재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술을 엄청 마셨다고 한다.
데뷔 초기에는 미성이었다. 데뷔곡인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내 사랑 내 곁에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엠넷의 AI 복원 프로그램인 다시 한번의 터틀맨에 이은 두 번째 대상으로 선정됐다. 부른 노래는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다만, 1990년에 돌아가신 분이라 생전 목소리와 차이나 홀로그램 퀄리티 등등 전체적으로 터틀맨에 비해 상당히 아쉬운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