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 가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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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일본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느프브 팬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마쓰이 가즈오 松井 稼頭央 Kazuo Matsui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No. 77 | |
기본 정보 | |
생년월일 | 1975년 10월 23일 |
출생지 | 오사카 부 히가시오사카 시 |
국적 | 일본 |
학력 | PL가쿠엔 고등학교 |
신장 | 177cm |
체중 | 85kg |
선수 정보 | |
입단 | 1993년 세이부 라이온즈 3순위 |
투타 | 우투양타 |
포지션 | 유격수, 2루수 |
경력 | 세이부 라이온스 (1994~2003) 뉴욕 메츠 (2004~2006. 6. 9) 콜로라도 로키스 (2006. 6. 9~2007)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8~201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1~201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18) |
소개[편집]
세이부가 낳은 90년대~00년대 초 체고의 유격수
스위치 히터 최초의 트리플3 달성자
우리나라에선 이종범이 이 사람하고 제일 비슷하다
프로 입단 전[편집]
PL가쿠엔 고등학교에서 팀의 투수로 활약했는데 팔이 작살나는 부상을 당히 한때 슬럼프가 왔었다. 그럼에도 신체 능력이 너무 재능충이라 스카우터들이 평가를 잘 해줬다.
1993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세이부 라이온스가 3순위 지명으로 교섭권을 얻어 세이부에 입단했다. 입단 직후 강한 어깨와 빠른 발을 가진 수비를 갖췄다는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내야수로 전향했고 스위치 히터로도 전향했다.
세이부 시절[편집]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나 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나 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
놀랍게도 사이타마현에선 우라와 레즈만큼은 아니어도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시 많은 세이부팬들의 저주로 눈앞에 검은 안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
94년까진 2군에서 썩다가 95년부터 1군에 등록되서 백업으로 주로 출전, 21도루를 기록했다.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도약한 96년엔 50도루, 97년엔 62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에 오른다. 98년도 리그 MVP, 99년부턴 15홈런으로 장타력까지 생기며 일본야구 대표 유격수로 성장한다.
수비 범위의 넓이와 어깨의 힘 등 높은 신체 능력을 살린 수비가 특징인데 특히 어깨의 힘은 일본인 선수로서는 톱클래스였다. 머표적으로 3루수와 유격수 사이의 깊은 땅볼을 1루에 노스텝으로 송구해 아웃으로 처리하는 플레이부터해서 화려했던 허슬 플레이가 많았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8년 동안 통산 1143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 연속 3할 대의 타율과 시즌 170개 이상의 안타를 기록했고 2001년에 개인 통산 1000안타를 역대 4위에 해당되는 가장 빠른 기록을 달성하는 위업을 세웠다.
2002년에는 역대 8번째이자 스위치 히터로서는 사상 최초의 트리플3를 기록했고, 20세기 센추리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되었으며 리그 체고의 5툴 플레이어로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소속 팀인 세이부의 리그 우승을 4차례(1994년, 1997년, 1998년, 2002년)나 이끈 경험을 갖고는 있었지만 정작 팀은 일본시리즈에서 모두 좆발려서 일본 시리즈 우승 경험은 한번도 없었다...
2003시즌 종료 후에는 FA권을 행사해 11월 17일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12월 8일에 뉴욕 메츠와 계약에 합의하면서 12월 10일에정식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는 트레이드 거부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메이저 시절[편집]
외야수 마쓰이는 성공했지만 내야수 마쓰이는 일본리그를 씹어먹던 그 포스를 거의 잃었는지 메이저 생활 내내 그저그런 내야수로만 남았다.
ML 7년간 타율 2할 6푼 7리에 32홈런 211타점 102도루를 기록. OPS는 7할을 간신히 넘겼다.
산에서 지내면서 타격 스탯이 별 차이가 없었다는게 아쉽다. 산동네에선 그래도 두 자릿수 홈런은 칠 줄 알았는데...
다시 NPB로[편집]
2010년 11월 25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총액 3억엔의 2년 계약에 합의했다는 것을 발표하면서 8년 만에 일본 야구계에 복귀했다
2011시즌 첫해 7월까지는 똥만 싸다 8월에는 월간 MVP를 수상하며 밥값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2할 6푼, 9홈런, 48타점, 15도루의 저조한 성적을 남기면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2루타는 34개를 기록하며 리그 1위를 나타냈고, 도루 부문에서는 도루 성공률은 8할 대의 이상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등번호가 세이부,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에 착용했던 7번으로 변경되었다.
2012년 2월 3일, 라쿠텐의 2대 주장으로 지명되었지만 역시 11년하고 별반 다른게 없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3시즌엔 11홈런으로 모처럼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지만 타율이 2할 4푼대로 씹창이 났다. 팀은 이 시즌에 다나카를 중심으로 하여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 마쓰이는 드디어 프로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14시즌엔 2할 9푼으로 반등하지만 15년엔 다시 2할 5푼으로 타율이 떨어진다. 그리고 올해는 세월의 무게를 못 버티고 성적이 개판이됐다... 물론 연봉도 엄청 깍였다.
결국 17시즌을 끝으로 코치 전임 제안을 받았으나, 현역 연장을 위해 라쿠텐을 퇴단했다. 그리고 계약한 팀이 본인의 데뷔팀 세이부. 플레잉코치로 뛴단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1할 5푼도 못치는 극심한 수준으로 부진했고 세이부 측이 2군 감독직을 제안, 그걸 수용하며 2018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019년부턴 세이부의 2군 감독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예정.
기타[편집]
아사무라 히데토가 마쓰이를 좋아하여 등번호를 32번으로 썼었다. 지금은 3번으로 바꿈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의 오리지널 캐릭터인 토모자와 료의 모티프가 이 선수이다.
한국계 3세라고 한다. 근데 이 사람이 한국계라고 하는데 자꾸 마쓰이 히데키가 한국계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