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무로 테츠야
조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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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1월 27일생 일본의 뮤지션, 키보디스트, 작곡가, 프로듀서.
일본 대중음악계의 거물이자 1990년대 J-POP씬을 구축하다시피 한 인물. 물론 이 때문에 J-POP을 획일화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 | "코무로 테츠야 군은 일본인의 귀를 교육시켰다." (「小室哲哉君は日本人の耳を教育した」) |
” |
학력은 와세다대학 사회과학부 중퇴.
인생사[편집]
어렸을 때부터 도쿄예술대학 교수에게 클래식 음악을 배울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부잣집 아들이었다. 중학생 때 신디사이저(롤랜드 SH-1000)가 사고 싶어서 집에 있는 기타, 바이올린, 엘렉톤을 멋대로 팔아서 샀을 정도. 물론 집에서 오지게 야단 맞았다고 한다.
1974년 16세 때부터 프로 뮤지션 활동을 시작했다. 다만 시작은 작곡가가 아닌 여러 가수들의 백밴드 키보디스트. 여러 밴드를 전전하며 활동하다 대학을 자퇴하고 기존에 활동하던 SPEEDWAY라는 밴드의 멤버인 우츠노미야 타카시(보컬), 키네 나오토(리더, 키보드, 기타)와 함께 1984년 TM NETWORK라는 3인조 밴드를 결성하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사실 TM NETWORK 활동보다는 작곡가 및 프로듀서 활동이 유명하다. 90년대 '코무로 사단'과 '코무로 붐'은 그야말로 전설. 대표적으로 trf와 globe, 카하라 토모미, 아무로 나미에 등등이 유명하다. 코무로가 프로듀스한 앨범의 판매량을 다 합치면 1억 7천만 장 정도 된다.
특히 1997년에는 1년에 낸 세금만 11억 7천만 엔으로 일본 고액 납세자 4위에 들었었다. 당시 페라리를 색깔별로 모았을 정도. 한때 스베누 CEO였던 황효진의 롤모델이 코무로였나보다…
다만 2008년 저작권 사기 때문에 그의 음반이 판매 금지되고 그의 노래들이 방송 금지되며 나락으로 떨어졌던 적이 있으나[1] 수많은 사람들의 성원으로 복귀하였다.
2008년 저작권 사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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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코무로는 음악적 성과의 저하, 계속되는 과소비와 잇다른 사업 실패 때문에 빚더미에 시달리던 상태였다. 사실 코무로는 이 시점에도 1년에 1억 엔이 넘는 저작권료를 받고 있었으나, 들어오는 족족 2번째 부인 asami에게 위자료·양육비로 차압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과소비를 멈추지 않다가 결국 사채까지 쓰게 되고, 일단 사채부터 땜빵하자면서 저지른 게 이 저작권 사기.
자기 곡들의 저작권을 한 개인 투자가에게 10억 엔에 넘기려고 그 투자가에게 미리 5억 엔을 받아놨었으나, 코무로는 이미 그 전에 돈 때문에 자기 곡들의 저작권을 타인에게 넘긴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저작권 체계에 대해 무지한 비(非)업계인을 상대로 한 악질적인 사기였다. 그때 일본 언론들은 코무로를 거의 지금의 황효진 버금가는 악질 사기꾼으로 신랄하게 욕하고 있었다.
여성 편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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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얼굴이 좀 돼서 여자들 좀 후리고 다녔었다. 1988년에 아이돌 출신 가수 오오타니 카나코와 결혼했다가(이 때문에 오오타니가 활동하던 그룹 '키라라와 우라라'는 해체됐다) 4년만에 이혼하고[2], 카하라 토모미와는 금방이라도 결혼할 것처럼 동거하더니 어느 순간 짐싸서 나가버리는 식으로 차버리고, Kiss Destination의 보컬이었던 asami와 속도위반으로 결혼했다가 asami가 출산 때문에 병원에 있을 때 KEIKO(globe 보컬)와 불륜을 저질러서 10개월 만에 이혼했다.
물론 이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례들만 모은 것이고, 찌라시에 보도됐던 수많은 스캔들과 염문설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사실 80년대 중반에 다른 가수에게 곡을 줄 때도 여성 가수에게만 곡을 주는 등 여성 편력이 조금씩 보이긴 했다. 현재 마누라인 KEIKO가 3번째 부인이던가?
노래 실력[편집]
┗일본 인터넷에서 '모기 목소리(モスキートボイス)'라면서 까인다.
사실 뛰어난 음악성에 비해 가창력은 씹병신이다.[3] 작성자는 RUNNING TO HORIZON(89년에 나온 솔로 데뷔곡. 이걸로 오리콘차트 1위 먹음) 처음 들었을때 가수 누군지 모르고 들었다가 쌍욕 나왔는데 그거 부른 가수가 코무로라는거 알고 멘붕했던 적이 있다.
물론, 코무로의 본업은 보컬리스트가 아니고 키보디스트 겸 작곡가니까 노래 못 불러도 상관없긴 하지만.
은퇴와 복귀[편집]
2018년 1월 19일 은퇴했다. 원인은 불륜 및 돌발성 난청으로 은퇴인데 후자는 2017년부터였고 전자는 아내인 KEIKO를 간병해주다가 마늘주사 맞으러 가서 미혼모인 간호사와 눈 맞았다고 주간문춘에서 1월 16일 발표한 후 나온 내용으로 도쿄의 고급 호텔과 코무로의 스튜디오, 그리고 코무로의 집에서까지 둘이서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일본놈들이 이 새끼가 외도한 것에 동정여론을 주며[4] 이 사실을 발표한 주간문춘이 욕을 존나 쳐먹고 기자는 "코무로의 은퇴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 라며 사과를 하였다. 이에 대한 국내 여론은 "역시 일본놈들"이 대다수이다. "이 새끼가 외도한것은 충분히 잘못되었으나 간호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길래 외도까지 하겠냐", "코무로가 불쌍하다."라는 개같은 의견이 대다수로 미화당하고 있으며 소속사인 AVEX에서는 "본인에게 맡기겠다."며 커버는 커녕 책임도 안지고 있다. 그 결과 은퇴라는 결정을 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 "지난 35년간 감사했다, 참여 프로젝트는 전부 마무리짓겠다"며 은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근데 이 간호사랑 "남녀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남성으로서 성 기능 퇴화=고자'라는 이유다. 그러니까 관계를 갖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진실인지 개소리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더니 2020년 7월 16일 아키모토 야스시의 간곡한 요청으로 노기자카46의 신곡을 작곡하면서 복귀했다는 기사가 떴다. 하지만 이제 코무로가 했던 인간 쓰레기짓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라 일본 내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
각주
- ↑ 이 때 통장 잔고가 6259엔 뿐이라고 말해 그의 화려한 부귀영화를 기억하는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던 적이 있다.
- ↑ 그런데 이후 오오타니의 남동생인 오오타니 켄고를 프로듀스해서 데뷔시켜준 걸 보면 이 결혼은 비교적 원만하게 끝난 듯 하다.
- ↑ 그렇다고 코무로가 음치란 뜻은 절대 아니다. 사실 뮤지션, 그러니까 작곡가라고 무조건 뛰어난 가창력이 필요한 건 아니다. 유희열, 정재형을 보라.
- ↑ 코무로가 기자 회견에서 당시 일본에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간병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파고든 게 컸다. 보도한 주체가 유서 깊은 찌라시라는 점도 한 몫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