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일본의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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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패턴: 사과 후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 등판. 한국이 뭐라고 그러면 왜 그러는지 이해 못하고 빼액.

과거 일본제국 때 피해 준 거 미안하다고 사과함. 근데 전쟁 일으킨 A급 전범 새끼들에게 참배함.

참배한 걸로 지랄하면 내정간섭 하지 말라고 함. 내정간섭 하지 말라면서 시발 한국재판으로 경제보복을 때리냐 원숭이 새끼들아?

우리는 방금 지나간 전쟁 중에 우리가 저지른 괴로움을 깊은 후회로 바라봅니다. 속죄를 위한 의지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오직 부분적이라도, 일본은 전쟁 배상에 대한 호의와 의무를 충족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일본은 과거의 일본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헌법이 가리키는 대로, 일본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입니다.

 
— 1957년, 기시 노부스케 내각총리대신


당신들에게 표현하고, 당신들을 통해 호주의 국민들에게 전쟁 중에 저질렀던 것을 마음속으로부터 슬퍼하는 것은 나의 공식적 의무이며, 내 개인적인 소망입니다.

 
— 1957년, 기시 노부스케 내각총리대신

기시 노부스케는 현 일본 총리인 아베의 외조부로 좆본군의 예토전생을 위한 일본의 개헌과 관련된 발언의 아버지격 되는 인물이시다.

'우리의 두 나라' 그곳의 긴 역사는 불행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유감이며 우리는 깊게 후회를 느낍니다.

 
— 1965년 6월 22일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대신


일본 측은 전쟁을 통해 중국인에게 저지른 심각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날카롭게 알아채고, 스스로 깊게 책망합니다. 더욱이, 일본 측은 중국 정부에 의해 제시되는 ‘관계 복구를 위한 세 개의 원칙‘을 완전히 이해하는 태도로서 두 나라 사이 관계의 정상화를 인식할 작정일 입장을 재확인합니다. 중국 측은 스스로 이것에 대해 환영을 표했습니다.

 
— 1970년 11월 29일,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총리대신


과거의 전쟁을 통해서 중대한 손해를 준 책임을 깊게 통감한다. 과거 침략전쟁을 반성해야할 것이다.

 
— 1982년 8월 24일, 스즈키 젠코 내각총리대신


일본 정부 및 일본국민은, 과거에 있어 한국 국민들에게 막대한 고통을 준 것을 깊게 자각한다.

 
— 1982년 8월 26일, 미야자와 키이치 내각관방장관


금세기에 있어, 양국의 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정말로 유감스럽고, 다시 반복되서는 안 될 것입니다.

 
— 1984년 9월 6일 일본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쇼와 덴노


과거 우리나라의 행위는 귀국 및 귀국민에게 다대한 곤란을 가져왔다.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 1984년 9월 7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관방장관


당시 일본 정부의 의사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이주 당한 분들이 독립한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것은 비극이며, 이에 대해 정말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기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 1990년 4월 18일, 나카야마 타로 외무대신


우리 일본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시기, 귀국의 사람들이 겪었던 불행을 생각하며, 나는 통석(痛惜)의 념(念)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 1990년 5월 24일, 헤이세이 덴노


한반도의 국민들이 우리나라에 의해 괴로움과 슬픔을 겪은 것에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여 솔직하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1990년 5월 25일, 카이후 토시키 내각총리대신


우리 일본국민은 우선 무엇보다도, 귀국에 대해 반성하는 기분을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총리로서 재차 귀국 국민에 대해서 반성과 사과의 기분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1992년 1월 16일, 미야자와 키이치 내각총리대신


나는 한반도의 분들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의 뜻과 사과의 기분을 표명하겠습니다.

 
— 1992년 1월 17일, 미야자와 키이치 내각총리대신


정부는 종군위안부로서 그들의 국적과 출생지에 관계없이 형언할 수 없는 곤란을 겪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유감을 표합니다.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할 깊은 양심의 가책과 결단력으로, 일본은 대한민국과 다른 국가들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평화주의 국가로서 자국의 위치를 관리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은 대로, 난 정말로 이 쟁점에 관해 몹시 슬픔을 느낍니다.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의 의견을 들음으로서, 난 그런 곤경을 겪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슨 방식으로 우리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싶습니다.

 
— 1992년 6월 6일, 가토 코이치 내각관방장관


과거의 잘못을 결코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깊은 반성과 결의아래 새로운 한일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1992년 7월 6일, 가토 코이치 내각관방장관


그 출신지의 여하를 불문하고, 종군위안부로서 고통을 받은 모든 분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은 당시 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에 심한 상처를 입혔던 군 당국의 만행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다시 한 번 자국의 진실한 사과와 참회를 출신 장소와 위안부 여성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치료할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부상을 겪은 이들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넓힐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 1993년 8월 14일,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


과거의 우리 나라의 침략 행위나 식민지 지배등에 재차 깊은 반성과 모든 피해자들께 사죄를 드린다.

 
— 1993년 8월 23일, 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총리대신


수많은 식민지 지배나 침략 행위로 아시아 국민들에게 준 고통을 인식해 깊은 반성의 뜻을 표명한다.

 
— 1995년 6월 9일, 중의원 결의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諸國)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총리대신


나는 종군위안부만큼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손상시킨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 1996년 6월 23일,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총리대신


우리 나라가 과거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배에 의해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과 함께 사죄를 드리며 새로운 한일우호를 위해 노력하겠다.

 
— 1998년 10월 8일, 오부치 케이조 내각총리대신


나는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전후 50주년에 각의 결정을 거쳐 발 나온 무라야마 담화로 우리 나라의 생각은 뚜렷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도 각료의 한 명으로서 이 담화의 작성에 종사했습니다만, 이것은 그 후의 역대 내각에도 인계되어 지금 많은 일본인의 상식이며, 공통의 인식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2000년 8월 30일, 고노 요헤이 외무대신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는, 당시의 군의 관여 아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손상시킨 문제였습니다.나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재차,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이 경험되어 심신에 걸쳐 달래기 어려운 상처를 입어진 모든 분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기분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과거의 중량감으로부터도 미래에의 책임으로부터도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우리 나라로서는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과와 반성의 기분을 근거로 해 과거의 역사를 직시해, 올바르게 이것을 후세에게 전하는 것과 동시에, 이유없는 폭력 등 여성의 명예와 존엄하게 관련되는 여러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임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2001년,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총리대신


우리 나라는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제국(諸國)의 사람들에 대해서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국민을 대표하고, 여기에 깊은 반성의 뜻을 새롭게 해 희생이 된 분들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나타냅니다.

 
— 2003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총리대신


일본은 겸손한 정신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항상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깊은 참회와 진심어린 사죄의 감정으로, 일본은 2차 세계 대전 종전부터 끊임없이 경제적 힘을 군사적 힘으로 전환하지 않으면서, 모든 문제를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는 원칙으로, 의지를 힘으로 쓰는 일이 없이 단호하게 유지해 왔습니다. 일본은 다시 한 번 세상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해결책을 제시할 뿐 아니라, 신뢰의 관계를 존중하는 것을 세계의 국가들과 즐깁니다.

 
— 2005년 4월 22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총리대신


일본은 식민 통치와 공격을 통해 많은 국가의 국민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거대한 피해와 고통을 입혔습니다. 진심으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면서, 난 다시 한 번 깊은 참회와 가슴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하고, 또한 전쟁에서 국내와 해외 모두의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난 끔찍한 전쟁의 교훈을 악화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전쟁을 다시 수행함 없이 세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기로 정해져 있습니다.

 
— 2005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총리대신


백년 전 바로 8월 일한병합조약이 체결되고, 그 후 36년에 이르는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1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드러났듯이, 정치적·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한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하여 성실히 임하고자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가지고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는 데 솔직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측은 잊기 쉽고, 당한 측은 그것을 쉽게 잊을 수 없는 법입니다. 이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하여, 이에 다시금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 2010년 8월 10일, 간 나오토 내각총리대신


난 식민지 지배로 인해 야기된 크나큰 피해와 고통에 대해 갱신된 깊은 유감과 마음 깊은 사과를 표합니다.

 
— 2010년 12월 7일, 간 나오토 내각총리대신


제국시대 일본 포로였을 동안 그들이 받은 학대에 대해 일본을 방문한 호주인 전쟁 포로 집단에게 사과합니다.

 
— 2011년 3월 3일,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대신

출처

홍콩전투 후의 캐나다인 전쟁 포로의 대우에 대해 캐나다에 사과합니다.

 
— 2011년 12월 8일, 의회 차관 외무정무차관 토시유키 캣

출처

난징 방문 동안 중국 내의 일본인 전쟁 범죄에 대한 희생자들에게 정식 사과를 제기합니다.

 
— 2013년 1월 9일, 히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내각총리대신


바탄 용맹 행사의 날에 ‘진실한 사죄’와 ‘깊은 유감’을 표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 2014년 4월 9일, 우라베 토시나오 주 필리핀 일본 대사


전후 70년에 즈음해, 국내 외에서 숨진 모든 사람들의 목숨 앞에 깊이 머리를 숙이고, 통석의 념을 나타내는 것과 함께 영겁의, 애통의 마음을 올립니다. 앞선 대전에서는 300여만명의 동포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조국의 나아갈 미래를 찾으며, 가족의 행복을 바라면서, 전쟁의 진지에서 흩어졌던 사람들. 종전 후 혹한 또는 작렬하는 먼 타향의 땅에서 굶거나 아픈 고통으로 숨진 사람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원폭투하, 도쿄를 시작으로 각 도시에서의 폭격, 오키나와에서의 지상전 등으로 인해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남김없이 희생됐습니다. 전화를 거친 나라들에서도, 장래가 있는 젊은이들의 생명이, 셀 수도 없이 상실됐습니다. 중국, 동남아시아, 태평양의 섬들 등 전장이 됐던 지역에서는 전투뿐 아니라 식량난 등으로 인해 많은 무고한 백성이 고통받고 희생됐습니다. 전장의 그늘에서는 깊이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혀져서는 안 됩니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손해와 고통을 일본이 준 사실. 역사는 실로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의 인생이 있고, 꿈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음미할 때, 지금도 말을 잃고 그저 단장(斷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토록 고귀한 희생 위에 현재의 평화가 있다. 이것이 전후 일본의 원점입니다.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도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두 번 다시 사용해선 안 된다.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하고 모든 민족의 자결권이 존중되는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회개의 마음과 함께 우리나라는 그렇게 맹세했습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를 만들고, 법의 지배를 중시하고 오로지 부전(不戰)의 맹세를 견지해 왔습니다. 70년간의 평화 국가로서의 행보에 우리는 조용한 자부심을 품고 이 부동의 정책을 앞으로도 견지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해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습니다. 그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인 아시아 사람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고 전후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왔습니다.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도, 가족을 잃은 분들의 슬픔, 전화(戰禍)에 의해 도탄의 고통을 맛본 사람들의 아픈 기억은 앞으로도 결코 치유되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일본에서는 전후 태어난 세대가 이제 인구의 8할을 넘고 있습니다. 그 전쟁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 일본인은 세대를 넘어 과거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에 전달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 또 그의 부모 세대가 전후 잿더미와 가난의 수렁 속에서 생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세대 또한 다음 세대로 미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선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더불어 적으로 치열하게 싸운 미국, 호주, 유럽 국가를 비롯해 정말 많은 국가들이 은혜와 원한을 넘은 선의와 지원의 손길을 뻗어준데 대해 감사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미래로 구전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고, 아시아, 그리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힘을 다할 것이다. 그런 큰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교착상태를 힘으로 타개하려고 한 과거를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럴수록 일본은 어떤 분쟁도 법의 지배를 존중하고, 힘의 행사가 아니라 평화적·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앞으로도 굳게 지키고 세계 각국에 촉구하겠습니다.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핵무기의 비확산과 궁극적인 폐기를 목표로 국제 사회에서의 책임을 이행하겠습니다. 우리는 20세기에 전시 하에 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깊은 상처를 입은 과거를 가슴에 계속 새기겠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나라는 그런 여성들의 마음에 항상 다가가는 국가이고 싶습니다. 21세기야말로 여성의 인권이 손상되지 않는 세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 세계를 선도하겠습니다.

 
— 2015년 8월 15일,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


일단 사과의 진정성은 50~80년대가 그나마 좋았는데 그땐 우리나라에 뿌리깊은 반일감정 때문에 잘 조명되지 않았고 반일감정이 많이 누그러진 지금은 2차대전 참전용사들이 대부분 죽고 입만 산 틀딱들이 정계를 주무르면서 사과의 진정성도 많이 낮아졌다.

물론 60년대에도 한일수교 회담 진행되던 시절에 몇몇 쪽바리들이 한국은 식민지배에 감사해야 된다는 망언을 해서 회담이 결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