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이웅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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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뤼 문서뤠서 설명하른 대상른 북괴롬덜과 밀접한 관계가 맀습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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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우리도 도전과 열정과 노오오오력으로 자유인이 됩시다.
이민으로 노력의 가성비가 조금이나마 올라갈 수 있도록 노오오오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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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당시 남한청년(지금의 5060대 틀딱아재들)에게선 보기힘든 180에 떡대도 있던 거구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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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雄平

프로필[편집]

  • 출생 : 1954년 9월 28일 북괴 평안남도 대동군 청계리[1]
  • 사망 : 2002년 5월 4일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간기능부전으로 사망.
  • 본관 : 수안군
  • 가족 : 사회안전부[2] 소좌 이광정(아빠), 맹성월(엄마), 그외 누나 2명, 누이동생 3명, 남동생 1명이 있었지만 귀순이후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사망했고 귀순이후 1남1녀를 둠.
  • 복무 : 북괴 공군 상위 (1977년부터 귀순이전), 대한민국 국군 공군(2002년 최종계급 대령)
  • 학력 : 1990년 한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36기.

설명[편집]

1983년 2월 25일 MiG-19를 몰고 귀순했던 귀순장병. 본래 나름 잘나가는 집안에서 태어나 북괴 공군 1비행사단의 책임비행사로 복무했지만 좆같은 공산주의경제때문에 연탄공급이 개병신이 되서 군관인데도 겨우배급받은 석탄을 얼굴에 검댕이 묻혀서 연탄으로 반죽해서 써먹는 안습한 생활을 하다 수령님만 믿으면 사회주의낙원간다는 주체사상은 병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저 대한늬우스에 나온대로 귀순하기 3년전부터 북괴에 불만을 품고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 게다가 비행기 라디오로 몰래몰래 남한 방송을 들으면서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삼양라면썰은 일종의 기폭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귀순을 결심한 그는 1983년 2월 25일 개천군비행장에서 미그기를 타고 편대를 따라 이륙했다. 그는 갑자기 기수를 돌려 남쪽으로 시속 920km수준으로 빠르게 런하기 시작했고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50m ~ 100m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남하했다. 결과적으로 개천비행장에서 이륙한 10시 30분에서 15분밖에 안지난 10시 45분 해주시상공을 지나 연평도에서 NLL넘고 당시 팀스피릿훈련을 하던 국군 방공망에 들어왔다.

이때 국군은 그의 미그기를 보고 요격을 위해 F-5를 보냈지만 미그기는 날개를 흔들어 귀순의사를 밝혔고 이 F-5는 미그기를 유도해 11시 4분 제10전투비행단이 있던 수원비행장에 착륙시켰다. 그리고 북에 남은 그의 가족들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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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후 1983년 5월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예편되었고 1984년 11월 2일 공군사관학교 교수의 딸과 혼인해 1남 1녀를 두었다. 이후 공군에서 근무하면서 95년 공군대령으로 진급해 공군대학 정책연구위원및 교관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97년 생긴 간경화로 인해 계속 골골대다가 2002년 5월 4일 간기능부전증으로 사망했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참고로 이웅평의 귀순을 도운 당시 F-5편대 편대장 박종헌소령은 이덕에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대장이 되어 32대 공군참모총장을 임했다.

1987년 2월 김신조와 함께 대만으로가서 청진시에서 배타고 런해서 대만에 남았던 김만철일가[3]에게 대한민국으로의 이주를 권유하기도 했다.

  1. 대한민국기준 대동군 임원면 청계리, 現 북괴령 평양직할시 용성구역 청계동
  2. 초기 북괴에서 주민통제를 했던 비밀경찰기관으로 혹부리 뒤진뒤에 이래저래 개편되어 지금은 인민보안성이됨.
  3. 대한민국이 북괴보다 압도적으로 잘산다는 것을 몰라서 그냥 대만에 눌러살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웅평, 김신조의 권유덕에 대한민국으로 월남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