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유리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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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국왕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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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모
(기원전 37년~기원전 19년)
유리명왕
고유리
(기원전 19년~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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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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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년~4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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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역대 왕
1대 2대 3대 4대 5대
동명성왕 유리명왕 대무신왕 민중왕 모본왕
재위기간
기원전 19년 ~ 18년

유리왕은 고려를 세운 동명성왕의 첫번째 아들래미이다. 소서노와 결혼해서 애 둘을 낳기 전에 예씨 부인과 젊을 적에 붕가붕가 하고선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던 그렇고 그런 사이다.

그후 애비없이 자란 유리왕은 길에서 활놀이를하다가 지나가는 아줌마의 항아리를깨뜨리게 되는데 이 아주머니에게 애비없이 자라서 이모양 이꼴이라는 패드립을 듣게 되고 충격을 받아 어머니에게 애비가 누구냐고 캐물어 애비를 찾아 졸본으로 떠나게 된다


원래 주몽 본인도 이런 아들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서는 자기 아들이 맞다고 해서 증명을 해보라 했는데 소지품 중에 부러진 칼이 있는것이다. 이것은 떠나기 직전에 아들이 크면 찾아와서 내밀어 보라고 한 일종의 증거품인 셈이다. 존나 안 보이는 곳에 숨겨서 못 찾았을텐데 어떻게 찾았냐면 돌아다니다가 대들보가 들썩거려서 들춰봤더니 숨겨져있었다.

하여튼 이렇게 그는 아들래미로 인정을 받게됐는데 문제는 원래 있던 자식 둘이 찬밥 신세 됐다며 한강으로 탈주했다. 뭐 어차피 거기 있어봐야 좋을거 하나 없으니 잘한일이다.

ㄴ 그 아들들이 백제를 건국 했다.

왕으로 있을 적에는 부여하고 외교적 마찰을 심하게 빚었다. 자식새끼 잘못둬서 황룡국이라는 다른 이웃국하고도 관계가 씹창날 뻔 했다. 그리고 원래 수도였던 졸본은 너무 생산성이 씹창이라 국내성으로 이주했는데 말하자면 설사에서 똥으로 갈아탄것이다.

사실 유리가 주몽의 아들이 아니라 주몽세력이 부여에서 건너온 1차세력, 유리가 2차세력이라는 학설도 있다. 다만 당시에는 중앙집권화도 되지않았고 왕권도 약하던 시기이기때문에 유리가 주몽의 아들을 자처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당장 신라만해도 박석김 돌아가면서 왕했는데 고구려도 주몽의 계루부 출신이 아닌 다른 부족 출신도 왕하지말라는 법은 없다. 물론 태조왕 이후로 중앙집권화가 완벽하게되어서 왕은 계루부에서만 할 수 있도록 바뀌었지만 그 이전은 글쎄

연도별 요약[편집]

  • 출처:삼국사기
  • 기원전19년:4월 부여에서 고구려로 온다. 10월 주몽이 훙거해서 왕이 된다.
  • 기원전18년:다물후 송양의 딸과 결혼
  • 기원전17년:배우자가 죽어서 새 배우자 둘을 맞이하니 중국에서 온 치희와 고구려 사람 화희다. 둘 사이가 개판이었는데 유리왕이 기산이라는 곳으로 1주일 동안 사냥갔었는데 화희가 치희한테 짱개 씨발년아 운운하니까 빡쳐서 중국으로 하고 유리왕이 뒤늦게 쫓아가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한숨쉬면서 노래부른게 그 유명한 황조가
  • 2년:하늘에 제사지낼 때 쓸 돼지가 도망가느라 제사를 관장하는 신하돼지잡으려고 국내성까지 쫓아갔는데 그곳 터가 좋다고 유리왕에게 말한다.
  • 3년:10월 국내성으로 천도한다. 12월 무려 신하 협보(주몽과 같이 고구려 세운 오이 마리 협보 중의 그 협보 맞음)가 유리왕한테 사냥 작작하고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간언하니까 유리왕이 빡쳐서 그를 좌천시켰다. 결국 협보는 빡쳐서 고구려를 떠났다. 근데 유리왕대의 국내성은 지금의 집안 지역이 아닌 환인지역이라는 설이 있다. 이유는 대무신왕 문서에서 기술.
  • 8년:이웃국 황룡국에서 태자 해명에게 선물했는데 해명이 그 을 부러뜨렸다. 유리왕 빡침.
  • 9년:유리왕이 태자 해명을 자살시킨다. 김부식삼국사기에서 이 일을 두고 父不父 子不子(애비는 애비답지 못했고 자식새끼는 자식새끼답지 못했다)라고 일컫는다.
  • 14년:대무신왕을 태자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