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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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三國志에 관련된 것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삼국지는 역사가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역사적 사실에 각종 구전 민담, 전설 등을 섞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로 구분됩니다. 三國志演義는 단지 재미를 위한 진실과 거짓이 섞여있는 中國 소설로 받아들이면 빛이 되지만 역사서 正史三國志처럼 받아들이면 어둠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삼국지 시대의 中國人과 현재 中共人은 종족, 언어만 빼면 엄연히 다른 사람들이니 삼국지에 심취해 中뽕으로 흑화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제갈량이 최후를 맞이한 곳. 현재 중공기준으로 섬서성 보계시 기산현 오장원진 남쪽에 있다. 사진에서 배모양으로 둘러싸인 구릉지대가 오장원이다.
원래 제갈량은 생전 마지막 북벌때 부풍군 미현의 위수이남까지 올라간다음 위수 프리패스로 장안을 조질 생각이었지만 위나라군에게 바로 갔다가 좆될 수 있으니 진령산맥과 가까운 곳에 베이스캠프를 세우기로 했고 그 베이스 캠프로 선정된 땅이 그 오장원이었다.
면적이 대략 7km^2정도인데 서울 종로구의 평창동이 8km^2정도니 거의 한국의 동수준에 해당하는 경작지를 가지고 있는데다 남쪽에는 한중으로가는 퇴각로인 야로곡, 동쪽 사수를 건너면 관중평야가 있어서 진격에도 좋고 구릉자체도 높아서 촉나라가 베이스캠프로 삼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여기서 제갈량은 계속 사마의가 지키고 있던 위나라 진영을 계속 슴만튀를 하면서 계속 100여일간 공격을 했었고 나중에 위군에게 제대로 죽빵하나 갈길 수 있는 타이밍에.....
故 제갈량이 사망한다.
제갈량 사후 중국 공산화 초기부터 한동안 중공군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갈량이 죽었던 곳이라 충분히 관광지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그냥 농사짓고 민속신앙 졸라믿고 사는 깡촌 오장원진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