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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우치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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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orted>Admin02님의 2021년 8월 22일 (일) 20: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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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대상은 닌텐도 그 자체입니다.

이 문서는 닌텐도의 영웅 또는 닌텐도의 독점 게임 그리고 닌텐도 그 자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과 닌텐도 다이렉트에선 그/그녀/그것을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대상을 욕보일 시 많은 닌스퍼거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It's me! Mario!

틀:갓텐도

화투나 만들던 좆만한 구멍가게를 아타리쇼크에서 게임계를 구원한 전설의 게임회사로 만든 인물이다.

생긴게 야쿠자같다.

(혹자는 아타리쇼크 자체가 닌텐도가 만든 가짜신화라고 하는데 좆까는 소리다.)


애비가 옆집년이랑 눈맞아서 도망간 이후 할애비 손에서 컷다.

1927년생으로 태평양 전쟁 막판에 징집 당할뻔 했으나 무슨 빽을 쓴건지 징병을 피했다.

이후 할애비로 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히로시는 1958년 시찰삼아 미국에 다녀온 이후

카드 쪼가리나 만들고 자빠져있다가는 가망이 없다는걸 깨우치고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다

인베이더가 대박치는거 보고 옳타꾸나 싶어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 아류작인 Space Fever를 내놓는것으로 게임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패미컴을 만들어 아타리쇼크 이후 무주공산이 된 천조국에 상륙. 비디오게임계를 재건하고 전설을 쓰기 시작한다.

'똥게임 남발=대량의 악성재고 발생'으로 좆망한 아타리쇼크를 교훈 삼아 자사 기기로 발매되는 모든 게임의 질과 발매량을 엄격하게 통제해따.

이후 독점적 지위를 이용, 관리를 구실로 서드파티를 심하게 갈구고 소매점에 악성재고를 강매하는 등의 갑질을 하다 플스 발매로 죽창을 맞게 된다.


게임계를 살린 인물이지만 의외로 본인이 비디오게임을 한건 평생에 단 한번, 그것도 지가 좋아하던 바둑게임이였다고 한다.

그나마도 1시간도 안되서 멀미난다고 컨트롤러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런 양반이 흥할 게임일지 망할 게임일지는 귀신같이 알아봤으니 신기한 일이다.


성격은 개차반으로 막말을 잘하고 난봉질을 좋아했다.

자기가 차린 러브호텔 최다 이용자가 야마우치 본인이였을거란 말이 있을 정도다.

사위가 처음 인사왔을때 룸싸롱 대려가서 자기 딸보다 어린 섹파를 옆에 끼고

'남자는 가정에 충실해야제!'라는 고급유머를 구사했다는 카더라가 있을 정도다.


보다 못한 주변사람들이 야마우치 마누라에게 이혼을 권유할 정도였지만 어째서인지 마누라는 참고 살았다.

마누라와는 달리 애비 난봉질에 질린 딸은 아예 연을 끊으려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해 미국 건너가서 5년간 연락도 끊고 보내주는 돈도 거부했지만 야마우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찌어찌 연락이 닿은 엄마가 '그래도 애비인대 손자들 얼굴은 보여줘야지.'라고 징징거려서 5년 만에 돌아왔는대 딸에게 사과는 커녕 쌩까버렸다고 한다.

결국 딸도 '내 애비는 저런 인간인가 보다.'하고 포기하고 어영부영 화해를 하고 말았다고.


가족한테만 막한게 아니라 지 하고 같은 계층에 있는 다른 교토 사업가들을 속물이라고 대놓고 무시하고 비웃어서 왕따를 당했다.

마누라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그딴 속물들하고 못 놀겠다며 한번도 사교모임에 나간적이 없다한다.

시애틀 인수당시에도 '니들이 구단 어렵다고 징징거려서 사주는거임ㅋ'라고 건방진 소리를 해서 북미에서 마저 어그로를 끌었다.

(사실이긴 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직원들한테는 잘했다고 한다. 이거다 싶으면 무적권 밀어줬다고.

하기야 직원들한테 까지 저 지랄 했으면 닌텐도 망했지.


웃기는건 닌텐도가 북미 진출한 시기를 기점으로 난봉질도 딱 끊고 마누라가 뭔 개지랄을 해도 절대 안 나가던 사교모임에도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점에 갱년기가 와서 사람이 바뀐건지.... 아니면 '이제 북미진출도 했으니 가오 좀 챙겨야겠다,' 생각한건지....

신기하게 사람 보는 눈이 좋다. 대표적으로는 이와타 사토루. 사토루가 HAL연구소 시절 프로그래머인 시절, HAL연구소 파신 직전 히로시는 한가지 조건을 주며, HAL 연구소를 지원 했는데, 그 조건이 HAL 연구소 사장직을 이와타에게 넘기는 것이였다. 이때 부터 히로시는 이와타를 다음 회장 후계자로 보았던것 이였다.

2013년 9.19에 폐렴으로 사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