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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필리프 페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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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본받을 만한 행적은 본받는 게 좋습니다.

ㄴ1차세계대전과 전간기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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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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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2차세계머전 나치 협력

한때는 프랑스의 영웅이었으나 배신자로 변절한 프랑스의 인물

1856년에 태어난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제1차 세계대전때는 전쟁영웅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후로는 복잡한 평가를 받고 있다.

딱히 특별하지 않은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서 군대에 들어갔지만 당시 프랑스군의 닥공 교리였던 엘랑 비탈을 이게 말이 되냐며 깠는데 이로인해 높으신 분들에게 제대로 찍혀서 출세길이 막히게 된다.

출세길이 막혀서 승진이 매우 늦어 전역하기 직전이 돼서야 대령을 달게 됐는데, 이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대전 초기 엘랑비탈에 충실했던 프랑스군이 아무데나 마구잡이로 헤딩하다 신나게 얻어터지고 있을 때 일찍이 닥공은 말이 안된다며 까고 다닌 페탱은 독일군의 공세를 여러번 저지해냈으며, 그 공으로 을 달게 된다.

이후로 계급이 쭉쭉 올라가다 1916년 베르됭 전투때 크게 피해입으면서 밀리던 프랑스군을 맡게 되었다.

이때 페탱은 독일놈들을 존나 쳐죽여서 알아서 나가떨어지게 하는걸 목표로 삼았으며, 전방에서 지친 부대를 후방 부대와 교환해서 휴식을 취하게 하는 방식으로 병사들의 체력과 사기를 보존했다.

하지만 이를 본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는 페탱이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 하지 않고 병사들을 놀게 두고 있다며 불만을 가졌고, 결국 페탱을 후방 지역 사령관으로 전출시켰다.

이듬해 1917년엔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는데, 이때 페탱은 제일 큰 공훈을 세우게 된다.


페탱의 전임자 로베르 니벨은 당시의 정권교체로 정치적인 고립에 빠져있어서 이를 벗어나고자 공세를 계획했다.

근데 교체된 정권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공세계획을 홍보하며 다녔는데, 그게 너무 지나쳐서 독일군한테 그 정보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정보를 입수한 독일군은 준비를 단단히 했으며, 결국 니벨이 계획한 공세는 시작한지 하루만에 10만명의 사상자를 남기는 등 무지막지한 피해를 기록하며 끝나게 된다.

별 성과도 없는 공세에 임하며 엄청난 피해를 입은 프랑스군 병사들의 분노는 폭발했으며, 폭동과 하극상이 곳곳에 일어났다.

이런 모습들은 1년전 러시아가 보여줬으며, 그 러시아가 결국 전쟁에서 이탈한 것을 보면 프랑스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니벨의 후임으로 총사령관이 된 페탱은 폭동이나 하극상 등의 주동자들을 처벌하면서 공세를 중단하고 더 많은 휴식을 보장하는 당근과 채찍 전술로 프랑스군을 수습한다.

페탱 덕분에 수습된 프랑스군은 전쟁을 계속 수행했으며, 결국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게 된 것이다.

ㄴ 지금까지 정신력 강요하는 장성분들 좀 봤으면 좋겠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의 대영웅이 된 페탱은 여러 요직을 거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때에는 스페인의 대사를 지내고 있었다.

히틀러가 프랑스를 침공하자 영혼까지 강간당한 프랑스 정부의 수뇌부는 자기네들의 똥을 처리하라고 페탱을 본국으로 소환한다.

그러자 당시 스페인의 총통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저 자들은 그들의 실책을 장군님께 떠넘길겁니다."며 가지 말라고 했지만 페탱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는 대답을 한 다음 귀국한다.

귀국한 후 히틀러와 정전협정을 체결한 후 비시 프랑스의 주석이 되는데, 이때의 행적 때문에 나치의 부역자란 소리를 듣게 된다.

실제로 페탱은 독일에서 망명해온 반 나치 인사, 유대인들을 독일로 돌려보냈으며, 독일의 전쟁에 필요한 군사, 물자들을 지원했었다.

하지만 페탱은 완전히 무릎을 꿇지는 않았기에 여러 식민지들과 많은 군사력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연합군이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지를 공격하는 횃불작전을 실시하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비시 프랑스군은 짧은 시간안에 연합군에 항복했으며, 이를 보고 제대로 빡친 히틀러는 결국 페탱을 체포해서 프랑스 전역을 삼키게 된다.

2차대전이 끝나자 이번에는 프랑스에게 체포된 페탱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페탱을 지지하고 있는 자들의 세력이 컸기 때문에 2차대전 프랑스의 영웅인 드골은 목숨만은 살리자고 해서 종신형으로 감형했는데, 영웅에 대한 예우도 있겠지만 함부로 죽였다간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도 그다지 사형을 내리는걸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하는 설도있었다.

감옥에 갇힌 페탱은 1951년에 죽었다.

프랑스를 팔아먹은 개새끼라는 이미지는 거의 없다.그나마 좆질은 했다 이정도? 그래도 피에르 라발보단 훨 낫긴하다.걘 프랑스 자체를 다 팔아쳐먹고 나중에 벌집행^^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평가가 크게 다른것을 보면 어느 반도의 반인반신과 비슷해보인다.

ㄴ 페탱 평가가 갈리는건 나치 협력자 청산해야 되는데 페탱을 인정해버리면 나치협력자 청산명분이 사라져서 그런게 크지않냐? 실제로 페탱덕에 프랑스 피해가 크게 줄어든건 좌우에서 동의할거고

특히 틀딱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 똑같다.

왜냐면 그때의 틀딱들은 1차대전 참전용사들인데, 당시 엘랑 비탈에 충실했던 프랑스의 똥별들이 병사가 얼마나 갈려나가든 상관하지 않고 공격만 명령했을 때, 페탱만이 병사들을 챙겨주며 전장에서 받는 고통들을 덜어주려고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