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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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중반에 유럽 대륙에 출현한 사르트르를 포함한 일련의 철학자들을 일컫기 위해 생겨난 말이다.
역시 가장 유명한 말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다. 간단하게 풀이하면 '내가 있다(실존)'가 '내가 무엇이다(본질)'보다 먼저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통상적인 사물은 본질이 실존에 선행한다. 이를테면 의자는 그 존재보다는 '앉기 위한 것'이라는 본질이 우선이다. 그러니까 '앉기 위한 것'이라는 본질에 따라 의자의 존재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자에 대해서는 그 본질에 따라 앉기 편하다거나 불편하다는 평가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존재하고 난 뒤 자신의 본질을 규정한다. 가령 너는 찐따라는 본질에 따라 출현한 것이 아니라 너의 존재가 먼저 출현한 후에 너 자신의 선택에 따라 찐따가 된 것이다.
사르트르가 이렇게 실존이라는 존재 형태에 대해 자세히 해명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르트르를 포함해 존재 문제에 관해 천착한 철학자들을 싸잡아 실존주의자라고 불렀다. 댕청한 사람들의 이런 도매금에 사르트르는 자신을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부르기를 거부했으나 나중에는 이를 받아들여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강의를 하고 그것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를 위시해 메를로-퐁티, 야스퍼스 등의 철학자들은 자신을 실존주의자로 묶어서 부르는 걸 매우 싫어했다. 알베르 카뮈도 그랬다.
나중에 68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잘 모르겠다 그건. 확실한 건 사르트르는 68혁명 때 학생들이랑 같이 거리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