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송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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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편집]

발암 송시열유교탈레반 헬조선 지부 두목이다. 근데 얘가 사문난적으로 지목한 윤휴라는 놈도 현실 개무시하는 또라이였다. 싸움은 같은 레벨에서만 일어난다는 명언이 사실이었다.

조선 최고의 거유(巨儒)다. 인조, 효종, 현종, 숙종의 4대에 걸친 임금을 섬긴 노인이기도 하다.

조선 최악의 악질 간신배라는 조선 사간 중 한 명이다. 조선 사간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개같은 행적[편집]

본인은 예를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효종 장례 때는 염을 할 때 꽉 묶는 건 효가 아니라는 희대의 개드립을 날려 관에 시체가 들어가지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 송시열의 직계 후손인 송병준 새끼가 조상이라는 송시열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뼛골까지 그대로 쏙 빼닮아서 매국짓을 한 것이다.

이 놈은 숙종이 그냥 태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지가 노신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트집을 잡아 훼방질을 놓았다. 말 그대로 지가 조선의 임금 행세를 한 셈이다.

그 스승의 그 제자들이라고, 송시열 살아있을 때나 뒈짖했을 때나 송시열을 공자와 같은 성현의 반열에 올렸을 정도이다. 공자가 보면 관 뚜껑을 박차고 나올 일이다.

하지만 숙종은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정치력이 뛰어난 임금이었고 정통성도 가장 쩔어줬다. 안 그래도 아이큐가 무지하게 높은 데다가 판단력도 좋았던 숙종은 오직 송시열이 짜증 나서 송시열의 반대파인 남인에게서 후궁을 물색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포도부장 장희재의 여동생을 후궁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장희빈이 득남했다. 숙종은 오바질까지 해가며 돌잔치를 했는데 당시 위세와 오만함이 극에 달했던 송시열이 이걸로 숙종에게 기어올랐다.

그러자 숙종은 "너는 우리 가문의 대가 끊어지길 바라고 있는 거 아냐?"라며 송시열에게 귀양을 때려버린다.

최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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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놈들입니다. 그렇기에 천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따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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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상쾌합니다!!!

그렇게 귀양지에서도 꼰대짓하고 살다가 숙종이 내려준 사약을 먹고 뒈짖했다. 야사에 의하면 헬조선 꼰대답게 몸 보신에 관심이 많아서 애새끼 오줌을 처먹는 걸 즐겼다고 한다. 어쩌면 스카톨로지였을지도 모른다.

ㄴ 낭설이지만 어린아이의 오줌을 처먹은 덕분에 사약빨이 잘 안 받았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렇게 국정을 농단한 흔한 간신배였는데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송시열 사후 추종자들은 공자와 같은 반열이라느니 하며 송자라는 존칭까지 주면서 물고 빨고 다했다. 물론 송시열한테 탄압당한 경북괴 유림들은 성도 안 붙이고 "시열이"라고 깐다.

반박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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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이 새끼들은 송시열에 대해 좆도 모르면서 막 이상하게 서술하네. 내가 제대로 알려주마. 일단 송시열은 흔히 우리가 아는 이미지처럼 수구꼴통 영감탱이가 아님. 오히려 현재로 따지면 급진적 진보주의자라고 보는 게 맞음. 니네들은 무슨 노비종모법을 애미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라는 쓰레기 법으로 알고 있는데 이거 목적 자체가 양인 수를 늘리려고 만들어진 건 알기는 하냐? 원래는 일천즉천, 즉 한쪽이 노비면 자식은 무조건 노비였는데 노비종모법으로 인해 엄마가 양인이면 아빠가 노비여도 자식이 양인이 되게 한 거임. 뭘 제대로 알고 씨부려야지.

ㄴ 이 글 쓴 놈은 노비종부법이랑 헷갈리는 모양인데, 노비종부법은 양인 수 늘이려는 법 맞음. 하지만 양반들이 지랄 발광을 해서 노비종모법으로 후퇴한 거임. 그후 자꾸 노비 수만 늘어나고 국가 재정이 개박살이 나니까 나중에는 노비 수 줄이려고 별 노오오력을 다함.

ㄴ 노비종부법은 태종이 시행한 거고 노비종모법은 영조 때 시행한 거다. 시간 차가 얼마나 많이 나는데 뭔 개소리냐? 원래 태종이 노비종부법 시행한 거 세종이 다시 일천즉천으로 돌려놓고 계속 쭈욱 유지되다가 노비가 너무 많아지자 폐단이 많던 노비종부법 대신 종모법으로 바꾼 게 영조 때다.

ㄴ 지랄을 하네. 노비종부법으로 많아진 게 아니라 일천즉천으로 많아진 거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신분 낮은 남자가 신분 높은 여자랑 떡을 칠 확률이 높겠냐? 신분 높은 남자가 신분 낮은 여자랑 떡칠 확률이 높겠냐? 일천즉천은 애비가 정승이라도, 애미가 정승집 외동딸이라도 한쪽이 노비면 노비인 건데 퍽이나 노비가 안 늘어나게 생겼구만.

ㄴ 역알못에 난독증까지 있구나. 내가 언제 노비종부법 때문에 노비가 많아진다고 했냐? 폐단이 많다는 걸 노비가 많아진다고 해석하는 병신은 네가 처음일 듯. 그리고 니 망상을 실제 있었던 역사에 적용하지 마라. 신분 높은 남자가 신분 낮은 여자하고 떡칠 확률? 오히려 그게 제일 낮다. 시발 상식적으로 대기업 회장, 혹은 회장 아드님이나 되는 분이 일개 말단 여직원하고 썸탈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냐? 막장 드라마 때문에 뇌가 녹으신 듯? 당연히 높은 신분의 여자가 낮은 신분의 남자하고 결혼할 가능성이 더 높지. 그리고 조선 노비는 네가 생각하는 노예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지금으로 따지면 대기업 다니는 회사원인데 양반의 토지를 경작하면서 얻은 재물(쌀)이 많아서 양인 여자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부자 노비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양반 대부분이 토지를 가지고 있는데 일개 양인 남성이 어디서 농사를 짓겠냐? 당연히 남의 집 노비로 들어가서 경작해야지. 물론 여자는 집안 일 하니 남편만 노비로 살면서 토지 경작하면 되고 아내는 다행히 노비종모법 때문에 자식이 양인임.

ㄴ 노비종모법에 대한 폐해는 조선인들도 인식하고 있었다. 선조수정실록 12권, 선조 11년 8월 1일 경진 5번째기사를 보면 "국조(國朝)에서 당제(唐制)를 본받아 군사를 농민에게 부과하고 서울에 상번하는 자들에게는 다만 수위(守衞)를 맡게 하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비용과 장비는 보인(保人) 세 사람이 부담하도록 하여 번을 서게 되면 그 날짜를 계산하여 녹질(祿秩)을 주게 하였으니 군사를 대우하는 일이 제법 후하였었다. 그런데 천인 종모법(賤人從母法)을 실시한 후로 양민(良民)들이 점점 천적(賤籍)에 들어가게 되어서 군사의 수가 크게 감축되었다."라고 나와있는데 노비종모법 덕분에 양인 수가 줄었다고 당시에도 말했는데 이 지진아 놈은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왔나?

ㄴ 신분 높은 남자x신분 낮은 여자가 드물다고? 첩은 폼으로 있냐? 정식 결혼 아니고 사생아는 그야말로 널리고 널렸다. 대기업 회장이 일개 말단 여직원하고 썸탈 확률 지껄이는데 옛날 정주영 보면 본처 외에도 후처 여럿 후리고 다녔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좀 권세 있는 놈이 따로 첩 두는 게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다. 물론 좋은 소리 듣긴 힘들었지만. 오히려 양인 여자와 노비 남자가 드묾. 토지를 양반 대부분이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양반이 직접 농사 짓냐? 당연히 소작 주지. 일개 양인 남성들이 대부분 얘네들한테서 농지 소작 받아서 짓곤 했다. 무슨 조선시대 노비를 지들 맘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건줄 아는데, 씨발 노비가 되면 의식주 보장 받는 대신 완전 신체가 예속되다시피 하는데 정상적인 마인드로 생각하기는 힘들다. 당장 조선시대 노비가 급증한 시기 보면 정확하게 기근 시기와 일치함. 무슨 말이냐 하면 당장 뒈지기 직전이라 오락가락 할 지경이라 일단 살아야겠다고 몸 팔았다는 거다. 누구 보고 역알못이래. 대기업 회사원 = 노비? ㅋㅋ 웃어도 되냐? 대체 무슨 씹멍청한 마인드를 가지고 이딴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오늘날 대기업은 사표 낸 놈을 쫓아가서 다시 끌고 오진 않는다. 사생활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간섭하지도 않고, 노비 남성 > 양인 여성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대기업 회사원은 아무나 못 되는 반면 노비는 몸 팔겠다고 하면 사지 멀쩡한 놈이면 개나 소나 다 된다. 그리고 이딴 건 송시열 항목에 적지 말고 따로 파라.

게다가 여성도 주자학(즉 성리학)을 배우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으며 여성 교육까지 주장한 인물이 송시열이다. 송시열이 쓴 계녀서 같은 것도 있는데 이건 언문으로 쓰여져 있는 거임. 오히려 송시열은 노비제 완화와 여성 교육 등을 한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음.

흔히 노론을 수꼴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노론 쪽이 진보고 남인이 보수에 가까움. 노론은 노비제를 완전히 없애진 못해도 적어도 완화하는 쪽으로 가려고 했다면 남인은 철저한 계급제 쪽을 옹호함. 그리고 송시열이 좀 꼰대 같은 면이 있는데 이건 사실 자신의 개혁안이 정적들 때문에 좌절되는 경우가 많아서 좀 꼬장꼬장해진 측이 강함. 오히려 송시열은 과부의 재혼을 허용하자고 주장했다가 다른 신하들한테 "너 이 새키 반역자 놈 아니여?"해서 자기랑 조금만 안 맞아도 강경하게 쳐부술 태세로 반응했기에 이런 이미지가 생긴 거임.

결론은 유교탈레반은? 있지. 하지만 송시열은 유교탈레반이 아님.

ㄴ 송시열이 비타협적인 태도로 이후 성리학 교조화에 일조한 것도 사실이고 심심하면 아가리 파이팅이나 하고 호포제도 안 된다고 하고 대동법도 첨엔 딴지 건 놈 아니냐? 근데 노비종모법이랑 뭐 현실이랑 크게 상관도 없는 군자관 딸랑 이걸로 실드 치는 건 좀 아닌 듯. 요새 나무위키도 그렇고 당쟁 까는 놈들 서인 까는 놈들 식민사관에 찌든 역알못 취급하면서 빼액거리는 놈들이 넘쳐 나는데 그 근거라는 것도 사실 걍 '탈레반 아닌 구석도 약간 있었다'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고 일반적인 평가를 뒤집을 요소는 아니라 봄.

ㄴ 뭔 소리여? 송시열은 호포제 찬성했는데? 애초에 호포제 먼저 주장한 게 서인임. 게다가 과부의 재혼을 허락하자고 주장하고 서얼한테도 관직 주자는 서얼허통도 주장하고 노비종모법도 주장했는데 송시열이 왜 유교탈레반인지 노이해. 이 정도면 요새 유림코스프레 할배들보다 월등히 나은 거 아니냐?

ㄴ 찾아보니 반대한 건 아니네. 하지만 윤휴가 졸라 밀 때 같이 밀어줬으면 호포제 시행됐을 수도 있는데 가만히 있었던 거 보면 먼저 말 꺼내놓고 진짜 하자고 하니까 쫄보 짓한 듯. 아니면 윤휴가 하는 짓이면 무조건 싫다는 식이었거나. 그리고 흔히 알려진 탈레반 이미지랑 다르다는 건 동의하는데 역사적으로 송시열이 학문에서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서 이후에 사문난적 같은 진성 유교탈레반짓이 가능한 분위기가 된 거 아니냐. 역사에 끼친 영향으로 치면 그게 제일 큰 거고 그래서 욕 먹는 건데. 거기에 노비종모법이야 그렇다 쳐도 서얼허통이 실제로 된 것도 아니고 여자들이 관직에 나갈 수 있게 한 것도 아니잖냐. 송시열이 뭔 실학자 정도로 비중이 듣보잡이었으면 모를까 진짜 생각이 있었다면 자기나 자기 직계 제자쯤에서 시행할 수 있었던 개혁이라고 보는데?

ㄴ 음 그게 그렇게 보면 아쉽긴 한데. 과부 재혼 건도 그렇고 좀 송시열은 뭔가 화끈하게 미는 경우가 없는 듯. 그렇다고 소극적이라고 욕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자살해야 함. 그리고 조선 영, 정조 때부터 송시열이 주장한 거 거의 대부분은 실행되었으니 딱히 뭐라고 욕만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음?

ㄴ 여성 출사는 끝끝내 허용 안 됐고 서얼 과거 보는 건 영조치세 다 지나고 정조 때 시행됐는데 그건 송시열의 영향이라고 보기엔 좀 늦지.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 하면서 물 타는 것도 적절치 않은게 정책에 엄청난 영향력이 있는 오피니언 리더인 송시열이랑 여기서 키보드 뚜드리는 백수랑 적극적이지 않은 건 똑같더라도 불러일으키는 결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책임 있는 사람이 소극적이었다는 건 충분히 욕을 먹을만한 사유가 된다고 봄. 나도 일단 당쟁이나 유교탈레반 문제에서 송시열만 문제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결국은 성리학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형적인 세계관에 임금 신하 할 것 없이 다들 빠져있었던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함.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교탈레반놀이 다 같이 했고 서인 짱도 먹었고 이후에도 성리학의 탈레반화를 심화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게 송시열이니 분명 욕을 먹긴 먹어야 된다고 봄.

ㄴ 잠시만 뭔가 이상한데? 자신의 위치가 높으면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한 거 아님? 자기 권력대로 뭔가 적극적으로 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리스크가 클 텐데?

ㄴ 위에 쓴 놈이랑 같은 놈인지는 모르겠는데 너야말로 앞뒤가 안맞지않냐? 서얼허통 여성진출 하려고 했기때문에 까면 안된다면서? 근데 뭐 실제로 이룰 수 있는 위치에서 리스크 때문에 안했다는건 결국 그거마저도 그냥 개인적인 견해 내지는 언젠가 되면 좋겠다 정도의 립서비스였단 얘기잖아. 그럼 정치가 송시열을 논하는데 있어서 전혀 언급할 가치가 없는거지. 김육은 뭐 병신이라서 자기 정치생명 걸고 대동법 추진했냐? 그게 백성들을 위해서 옳다고 믿으니까 그렇게 한거잖아. 정치적인 신념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그정도 추진력은 보여야지.

ㄴ 아니 조광조가 개혁하려고 무리수 두다 저세상 갔는데 그럼 송시열도 그냥 막 밀어붙여야 했단거냐? 난 급진적인 것보단 점진적인 개혁을 좋아해서 너의 정치관이 어떨지는 모르겠다만 난 송시열의 행보가 마음에 드는데? 물론 배타적인 면이 굉장히 있긴 했지만. 그리고 대동법 건도 그렇고 내 생각엔 아마 송시열도 나처럼 급진적인 사람은 아니였던 거 같다. 송시열은 대동법의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기에 처음엔 반대했거든

ㄴ 점진적인 거 좋아할 수는 있는데 내가 보기엔 송시열은 아무것도 안 한 수준이라고 봐서 이해가 잘 안됨. 그리고 저세상 갈게 두려웠기 땜에 점진적으로 갈 만도 하다고 보기에는 송시열 정작 위에 다른데도 써있듯이 임금한테 쓸데없는 시비 졸라 많이 걸었고 자파의 이익에 관련된 분쟁에서는 타 당파 어그로 끄는 걸론 원탑이었는데?? 죽을때도 남인측 희빈장씨 소생 세자 안된다고 목숨걸고 딴지 걸다가 사약 먹고 간 거 아니냐. 자파이익에 대해서는 과단성 개쩌는데 정작 자기가 추진하고싶었던거는 뭐 제대로 한 게 없다? 이건 뭐 어떻게 평가해야 되냐

ㄴ 내 말 뜻은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혹시 개혁이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봐 점진적인 개혁을 좋아한단 뜻임. 그리고 서얼허통하고 노비종모법은 송시열 대에 시행되긴 했음. 문제는 남인이 대세일 때 그걸 다시 원래대로 돌려놔서 문제였지. 호포제는 무산됐지만 나머지 개혁들은 당대에 시행된 적이 있음.

ㄴ 그렇게 말할 거면 조광조 죽은 건 예로 들면 안 되지 ㅉㅉ 그리고 노비종모법은 그때 시행됐다가 말았다 했던 건 맞는데 서얼허통 관련 제도는 과거응시는 정조 때, 청요직 허용은 철종대에 있었는데 송시열 때는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는데? 자료 있으면 링크 좀?

이거 보면 인조 때 서얼관직 등용이랑 서북민 등용을 허락한 걸 볼 수 있다. 이때가 마침 송시열이 최명길이랑 같이 상소 낸 때임.

ㄴ 인조 11년이면 송시열은 스물일곱살짜리 갓 급제한 뉴비 아니냐. 실록에는 송시열 이름 없이 그냥 이조에서 아뢰었다고 되어있는데 당시 이조판서에 대제학인 최명길이 책임지고 올린 상소라고 봐야지 거기에 송시열이 같이 이름 얹었다 해도 당시 능참봉 좀 하다가 때려친 송시열 업적으로 껴넣을 수가 있냐. 더 찾아보니 실록에 이에 따랐다고 돼 있어도 실제로 시행되지도 못한 모양이고 그나마도 그냥 최명길이 추진한 걸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네. 일단 타 당파땜에 못했건 뭐 임금이랑 최명길이 병자호란 땜에 까먹고 뭉갰건 간에 저 링크의 상소는 정황상 송시열의 업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봄. 그리고 이후에 서얼허통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를 표시했다고 해도 이후에 현종 숙종대에 송시열이 가지고 있었던 비중을 생각하면 그게 일부 점진적인 조치로라도 시행되지 않았다는 건 곧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함. 자꾸 지엽적인 부분을 딴지를 걸어서 논지가 새는데 설사 송시열의 저런 진보적인 사상 니 얘기대로 고평가한다 하더라도 자기 당의 배타성을 키우고 이후 성리학풍을 교조화시킴으로써 조선 사회에 끼친 거대한 악영향을 생각하면 전체적인 평가로는 기존의 저평가에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고 봄. 쉽게 말해 "그 양반이 그런 말도 했구만. 근데 그래서?"밖에 안 된다니까.

ㄴ 궁금한데 너가 말하는 점진적인 개혁이라는 게 대체 뭐냐? 난 사람들의 인식부터 서서히 바꾸고 천천히 시행되는 걸 점진적인 개혁이라고 보는데. 내 기준으로면 송시열은 충분히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열심히 했다. 그리고 성리학의 교조화는 송시열이 아니더라도 진즉부터 교조화되어가고 있었음. 아니 애초에 성리학 자체가 교조적이기 쉬운 사상이라 이기일원론같이 성리학자체를 마개조하지 않는 이상 뭔가 더 거기서 앞으로 나가기 쉬운 학문이 아닌데 오히려 송시열 제자들은 여자의 제사 참여와 서얼허통, 노비종모법 등을 꾸준히 밀어붙여서 결국은 노비종모법이 영구적이게 되게 하고 후에 정조 때 추쇄관혁파와 순조 때 공노비 해방 등 여러 노비제 자체에 대한 완화 및 점진적인 해체도 다 송시열이 밑바탕을 깔아놔서 가능했던 거라고 본다 난.

ㄴ 점진적인 개혁 물을 것도 없이 잘 알고 있구만 ㅋ 서얼허통도 문과응시허용 - 청요직 허용 순으로 이루어졌고 노비도 노비종모법 - 공노비 해방이 선행되었잖아. 송시열 정도의 위치에서 진짜 실행할 생각으로 밀었으면 노비종모법뿐만 아니라 서얼문제에서도 시초 정도 되는 정책은 실행할 수 있었을거라 본다고. 그정도 도입하는 것도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거 같아서 위험하다고 생각할 정도면 아예 주위 영향을 생각해서 아가리를 털지 말았어야지. 내가 보기에 송시열이 말하는 건 지금 정치권으로 치면 여당 당 대표 정도 되는 놈이 말로는 진보 어쩌고 하면서 포장질 쩌는 주제에 막상 입법하려는 움직임은 눈곱만큼도 안 보이는 딱 그짝이라니까. 제자들의 공? 송시열은 숙종 대에 죽었고 서얼 관련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는 건 수십 년이 지난 정조1년인데? 그것도 정조가 주도한 거잖아. 송시열이 진보적이었다고 보더라도 제자들은 그말 안듣고 탈레반짓 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운 거 같은데? 그리고 성리학이 교조화 하기 쉬운 학문이고 큰 흐름에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건 동의하는데 예송논쟁때 같이 유교탈레반짓 하고 김석주같은놈이랑 짝짜꿍해서 타파 척살 신나게 저지르는 등 송시열이 그 흐름을 더했으면 더했지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진 않았다 봄. 물론 숙종도 쓰레기고 같이 쌈질한 놈들도 쓰레기인 건 맞는데 송시열도 서인의 대빵인 만큼 최소한 그 지분 정도는 욕을 먹어야 마땅하다는 게 내 생각임.

ㄴ 그 시초하려고 노력하다가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시초되기가 쉬운줄 아나보네. 그리고 이미 서얼허통이나 노비종모법등은 이미 당대에 시행되긴 했다. 폐지와 시행을 반복해서 그렇지. 폐지, 시행을 반복할 정도로 당시의 인식이 아직 다 안 변했는데 뭘더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는 거냐? 실제로 서인이 대세일 경우에만 노비종모법이 시행되는 등 당대에는 아직 위치가 불안정한 개혁이었는데 그것도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나아가기란 어려울거라고 봄.

ㄴ 시초 하려고 죽은 사람 어쩌고 하기에는 임금한테 쓸데없이 게기거나 환국 때 깝치다가 죽은 것들이 수십 수백 배는 될 텐데 니가 말하면서 쪽팔리지도 않냐? 송시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가보네? 글고 또 논지가 죽을위험이 있으니 위험하다는 식으로 바뀌네 위에는 또 자기 일신의 위험이 아니라 급진적인 개혁이 사회에 위험을 준다는 얘기였다며? 위에 최명길 상소 가져와서 밑장빼는것도 그렇고 뭐 대화가 될만하면 도망가네 ㅅㅂ 이 이상 떠들어봐야 시간 낭비 같으니 걍 관둘란다 알아서 생각해라.

ㄴ 아니 내 말은 죽은 사람이 많은 만큼 시초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송시열은 적당히 조절하면서 개혁하려고 하다가 잘못 삐끗해서 사약 먹게 된거고. 개혁이란게 그만큼 어려운거다.

ㄴ 혹시나 싶어서 봤더니 뭐? 송시열이 개혁하려다가 삐끗해서 사약 먹었다고? 후 시발 내가 지금까지 송시열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좆병신하고 여태껏 말 섞고 있었다니 걍 시간 낭비 좆나게 한 내가 병신이었네. 이젠 진짜 끝이다. 이제 더는 얘기 안 할란다. 내가 졌다.

ㄴ 아니 나도 송시열이 원자추존 반대해서 사약먹고 죽은 건 알거든? 근데 그것도 난 일종의 개혁을 위한 준비 정도라고 본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별로 상관이 없겠지만 성리학이 세계관이였던 조선에서는 그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원자추존 반대라든가 예송논쟁도 다 자신이 뜻한 바 있는 개혁을 깔기 위한 준비라는 거지

ㄴ 이건 뭐 가면 갈수록 점입가경이네 뭐? 예송논쟁 원자추존 반대가 개혁을 위한 포석이라고? 그 분쟁들 성격 자체가 사회발전과는 하등 상관없는 자파이기주의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 아냐? 게다가 그것때문에 지식인들이 좆나게 갈려나갔는데? 지식인의 수는 사회 발전의 토대고 개혁에 필요한 에너지다. 현대에 대학진학율을 신경쓰는것도 마찬가지지. 그 소중한 에너지를 개작살낸게 환국 시기의 당쟁인데 뭐? 개혁을위한 포석? 그렇게 치면 원균 칠천량 해전도 임란 완전승리를 위한 포석이다. 니가 어디서 송시열이 개혁적인 인물이라는 소리 줒어듣고 송시열 뽕에 빠져서 결론을 정해놓고 덤벼들고 있다는 건 이미 파악했는데 정신승리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렇지 이 정도로 답을 안 달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병크를 터뜨릴 줄은 몰랐네. 이제 진짜 니가 더 병신되기 전에 그만해야 될 거 같다. 이제 니가 뭔소리를 해도 답 안 달게.

ㄴ 아니 답을 달건 안달건 상관없는데 좀 내 말을 오해하거나 곡해해서 이해는 하지 좀 마라. 현대 우리 시점에선 당연히 중요하지 않은 별 상관 없는 거지만 그때 당시엔 굉장히 중요한 거였다니까? 아니 현재도 헌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법의 시행 폐지 여부가 갈리는데 하물며 성리학적 기반을 두고 이어온 조선에서는 어떻겠냐? 그 당시엔 성리학이 곧 헌법이고 나라의 중심이었던 시대다. 곧 성리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각 법 체계와 사회 구성의 움직임이 결정되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원자추존인 만큼 왕정사회에선 엄청 중요한 사안인데 이것 또한 성리학을 기반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그냥 숙종이 맘대로 결정했으니 송시열은 물론이고 다른 신하들도 다 반대했지. 지금 시점으로 그때를 판단하려고 하면 안 된다. 왕의 움직임과 행동 하나하나가 다 성리학적 질서와 연관되어있고 거기서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만큼 이건 당시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ㄴㄴ이런 시발 원자추존 반대가 개혁 깔기 위한 준비였다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어이. 결론은 IF와 궁예질로 떡칠한 소설에 불과한 얘기 아니냐?
아니 ㅅㅂ 보다가 존나 웃기네 이 글 쓴 새끼 뇌가 있는 거냐? 아니면 송시열이 예토해서 자기 평가 올리려고 언플하나? 존나 보고 웃었다. 가서 송시열 후장이나 빨아라.
그리고 성리학을 중심으로 움직이려고 애썼다는 거부터 그냥 거기서 끝 아니냐? 디시에서는 그냥 사림 이후의 성리학을 유교탈레반으로 규정하고 송시열은 철저한 조선 주자학의 대가리였는데?
꼬우면 사림과 성리학 문서로 가서 반달하고 점령해보든지. 어떤 깽판이 펼쳐질지 눈에 선하다 ^오^
물론 그 시대에 성리학에 대한 영향력이 절대적이어서 송시열이 이에 대해 100%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또 외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도 아니다, 라는 주장을 하는 건 인정하는데.
이와 별개로 너 사문난적! 시전하며 철저히 주자학을 수호하려고 했고 이에 대해 책임이 있는 건 반박불가다. 거기에 개혁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고 해도 어차피 성리학 논리 내에 움직인 거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최소 디시위키는 사림과 조선의 성리학을 병신 취급한다. 니 주장을 설득하고 싶으면 이 두 문서를 니 논리로 점령하면 된다! 그럴 리는 없지만.
그리고 이야기 흘러가는 꼴 보면 급진적 진보주의자와 거리가 있는 거 알고 있구만. 무슨 지랄을 떠는지?

송시열 직계후손=송병준 직계후손이 싸지른 반박문에 먹이는 카운터 펀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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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이 왜 뒤졌게?

숙종이 고명아들, 숙종의 아버지도 고명아들이다.

근데 숙종이 자기 아들 태어났다고 잔치했는데 송셜새끼는 그걸로 숙종에게 시비를 털었다.

역적도 이런 역적이 없는 거다. 단지 지가 싫다는 장희빈이 숙종의 아이를 낳은것 하나만으로 더럽고 아니꼽다 이거지.

숙종의 입장에서 보자. 아버지도 아들은 자기 혼자, 자기도 아들은 자기 혼자다.

대를 잇기 존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가 가뭄의 단비맞듯 아들이 생겼다.

근데 그걸로 시비를 턴다는 게 뭘 의미하겠냐?

니미 송셜후손=송병준 후손 새끼들아.

유승준을 봐바. 딴거 다 잘하고도 군대 안가려고 미국으로 야반도주해서 븅신됐잖아.

송셜새끼를 그거랑 똑같이 보면 되는 거야. 왕이 득남했다고 그거갖고 지랄한게 송셜새끼다.

왕조정권에서 왕이 아들낳는데 그거갖고 뭐라 한게 말이 되는 소리냐?

그리고 국왕이 선정을 펼쳐야 할 의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무 중 하나가 애를 낳아서 혼란이나 내전을 막고 안정시키고 보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바. 송셜은 유승준보다 더한 쓰레기일 뿐이다.

ㄴ 아들 낳아서 태클건게 아니라 그 아들을 원자로 추존하려고해서 문제된거다. 물론 송시열이 이미 원자추존된거에 태클건건 너무 막나간거긴 하지만

ㄴ 애초에 남인 여자의 아들을 원자로 추존하려고 한게 아니꼬워서 태클걸다가 훅간거다. 송시열도 그렇지만 인조반정 이후에 서인들은 국혼물실이라고 해서 항상 중전은 서인이여야 하고, 왕들도 서인 몸에서 태어난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했음. 지들이 평생 대대손손 정권을 잡으려고 왕실을 좌지우지 한거임. 아주 개같은 놈들. 암튼 송시열도 서인으로서 남인들의 지지를 받는 장희빈의 아들이 왕이 될꺼 같으니 못마땅해 하다가 유교적으로 예법에 맞지 않다고 개같이 반대함. 사실 송시열이 숙종을 너무 물로 본거지. 송시열은 숙종 증조할배인 능양군 때부터 조정에서 일하기 시작해서 숙종 할배인 효종의 대군사부였거든. 그니까 숙종한테 태클 걸때도 '내가 니 할애비 스승인데 니가 뭐 어쩔꺼야' 이딴식으로 생각하고 개판쳤을 가능성이 높다. 근데 숙종은 성격이 아주 개같잖아? 자꾸 신하주제에 왕한테 깝치니까 걍 사약 쳐맥여 죽인거지. 암튼 이 새끼가 이렇게 태클 건 거 때문에 나중에 경종이 왕 되고 나서도 노론들 등쌀에 고통받았고, 결국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함. 그리고 노론의 힘을 받아서 집권한 영조와 정조는 불안한 왕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물론 본인들의 능력으로 탕평도 하고, 왕권도 회복했다 하지만 결국 정조 사후 제 자리로 돌아가버리지. 결국 조선 후기 왕권이 흔들린 것과 노론 독주, 온갖 폐악은 이 새끼가 만든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ㄴ 또 기승전노론 외치는 놈 있네. 세도가인 장동김씨는 시파 출신인데? 이미 영/정조 때 척신정치가 시작되면서 당파는 무의미해짐.

사후의 비참한 말로[편집]

모애모애 조선유학 참고.

해당 링크를 봐라

ㅅㅂ 우리 오현고에서는 오현(간단하게 말하면 성인)중 한명으로 우대받는다 ㅋㅋㅋ 말장난 치는거 아님ㅋ 캬 이맛에 낑깡국삽니다

유교 탈레반의 실질적 뿌리[편집]

이 병신 새끼는 일단 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다.

학문의 종류를 막론하고, 그저 글자나 달달 외운다고 학문에 통달했다고 인정하는 곳은 없다.

이 송시열 개쌍놈에 새끼는 주희 새끼가 싸지른 똥 성리학을 문자 그대로만 외워서 읊조리는 주희무새에 불과했다.

송시열의 최대업적인 예송논쟁만 봐도 이 송시열 새끼가 얼마나 병신인지 알 수 있다.

유학의 정신적 지주이자 실질적 창시자라 볼 수 있는 공자가 말하기를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以不周라고 했는데

이건 "군자는 여러 사람의 말을 두루 듣고, 소인배는 여러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지 말만 맞다고 지껄인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자는 생전에도 '옛날 가르침에 ㅇㅇㅇㅇㅇ라고 써있으니 무조건 ㅇㅇㅇㅇㅇ다!' 따위의 똥고집을 부리는걸 극혐했고, 제자들한테도 이따위로 살지 말라고 했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도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지만 자기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닌 가르침은 아니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이치에 맞으면 들었다.

근데 송시열 이 개새끼는 그저 주자학 경전이나 달달 외웠을뿐 실질적인 대가리는 없는 좃병신 버러지 새끼라서

토론다운 토론을 할 수가 없었다. 상대방이 뭐라고 하든 그저 "ㅇㅇ에 의하면 ㅁㅁ는 ㅇㅇ인뎁쇼?" 따위의 앵무새짓거리 밖에 못했다.

그래서 무조건 지만 옳고, 상대방의 주장이 주자학의 이치에 아주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그건 틀린거라고 몰아 붙히는 진상 새끼였다.

이런 새끼를 조선 후기의 대학자니 유학자니 떠받드는 병신 새끼들이 현대에도 있는데

학자의 기본은 끊임 없는 연구와 수양이다. 그저 기존에 있는거나 달달 외우는 능력을 가지고 대학자를 따질거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자들은 대학교가 아닌 노량진 고시촌에 있을거다. 병신 새끼들아.

다 집어치우고 유교적 이념으로의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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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인성 문제 있어?

사실 송시열에 대한 진실은 그냥 유교적 이념으로 표기하겠다. 그래 인의예지신이 좋겠다.


인(仁): 보통 이 시기에는 유학 위주의 풍조여서 최소한 자신을 천거한 사람을 우호적으로 대하는게 대부분이었다. 아니, 이건 어질지 않은 사람들도 다 이랬을 거다. 그런데 우리의 송시열은 본인을 천거한 이경석에게 수이강이라는 지문을 줬는데, 대충 오래 살고 건강했다는 뜻이다. 근데 나중에 이경석이 올린 상소가 본인 까는 걸로 해석해 혼자 풀발하더니 “씨발 삼전도에서 비문 올린 자식이 뭐라 씨부리는 거냐? 아 님은 그렇게 아첨 잘하시니 오래 사시고 건강하시겠네요” 라는 요지의 상소를 올렸다. 인성이 디키충급이다.


의(義): 송시열의 권력은 꽤 강했다. (숙종 초기에 유배간 6년은 제외해도) 그는 당시 권신 김석주(경신환국 주모자)랑 함께 권력을 잡았었는데 사실 송시열이 작정하고 견제각 잡으면 김석주도 송시열 제거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송시열은 김석주에게 굽실굽실대는 이중성 끝판왕을 보인다. 차라리 정적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 목소리 내고 강하게 나섰으면 얘는 비타협적 경향이 너무 강했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게 아니란거. 이딴놈이 의롭긴 뭐가 의로운건지 모르겠다.


예(禮): 우리는 송시열이 예송논쟁이라는 ㅈ도 쓸모없는 키배 벌인걸 잘 안다.(당시에는 그냥 키배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사실 송시열은 1차 예송때 혼자서 예송논쟁 주도한건 맞고 자기 쪽으로 끌어오긴 했는데 윤선도가 “송시열 저놈 저따위 주장하는 건 효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거다!” 라고 나오니깐 송시열은 이걸 무조건 반박해야 했다. 근데 송시열이 어떻게 했냐고? 조정 내 자기 권위로 윤선도를 찍어눌렀다. 이놈이 진짜 예의가 있는지는 알아서 생각해라


지(智): 송시열은 남인인 윤휴와 과거에 친했는데 윤휴가 주자라고 모두 옳진 않다고 했는데 주자에 대한 신앙이 있던 송시열은 몇 차례 싸우다 절교한다. 사실 아는 게 지혜로운 건 아니다. 지혜로우면 아는 걸 실천할 줄 알때의 얘기다. 그러니깐 지혜는 개뿔. 이자식은 졸렬한 방식으로 나온 경우도 많다.


신(信): 바로 윗 이야기에서 이어지는데 윤선거는 윤휴와 송시열이 절교한 후에도 둘 모두와 교류했다. 그리고 윤선거가 뒤짐. 그래서 윤선거의 아들이자 송시열의 수제자인 윤증은 송시열에게 아버지의 조문을 의뢰함. 근데 송시열은 딴놈이 쓴 좋은 글 표절해놓고는 “이거는 걔 생각이고 난 이렇게 생각 안함” 이라고 명시를 해서 결국 윤증과 송시열은 절교한다. 친구와의 믿음과 사제간의 믿음을 개나 줘 버린 송시열에게 박수를 치자.

ㄹ황[편집]

72살 먹은 어떤 할머니가 이 새끼 공원을 차로 들이받아 GTA시켰다고 한다. 남인의 후손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이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