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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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태
Hong Woo-Tae KIA 타이거즈 No. 81 | |
기본 정보 | |
생년 월일 | 1971년 11월 19일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
신장 | 185 cm |
체중 | 95 kg |
학력 | 미성초-성남중-성남고-계명대 |
선수 정보 | |
입단 | 1990년 2차 1순위 (OB 베어스) |
투타 | 우투우타 |
포지션 | 투수 |
선수경력 | OB 베어스 (1994 ~ 1997) 한화 이글스 (1997~2001) |
코치경력 | 성남고 감독 (2007~2009) 경동고 코치 (2010) 부천고 코치 (2011) KIA 타이거즈 권역별 스카우트 (2012) KIA 타이거즈 불펜코치 (2013) KIA 타이거즈 3군 투수코치 KIA 타이거즈 투수코치 (2014~2018) |
우승 경력 | 1999 |
개요[편집]
KIA 타이거즈의 갸무원투수코치이다.
별명은 홍포크.
OB 베어스 시절[편집]
당시 OB의 최고 계약금 신인투수였다.[1]
데뷔 첫 해인 94년 4월 14일, 5회부터 등판하여 9회까지 던져 데뷔 첫 승을 따낸다.[2]
마무리 김경원의 유고(有故)로 인해 5월부터는 선발 겸업하면서 마무리로도 뛴다.[3]
5월 4일, 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해태를 상대로 3-0 데뷔 후 첫 완봉승을 거둔다.[4]
6월 26일, 이종범에게 최단경기 100안타를 맞았고 이 날 경기는 2회부터 두들겨 맞으며 7대 1로 패한다.
이 해 서용빈[5], 김재현, 유지현, 김한수, 주형광, 강상수 등 좋은 신인들이 많았는데 이 신인왕 배틀에서 중반까지 그리 밀리지 않았다.[6]
시즌 후 방위병으로 입대하였고 95년에 3경기를 나와 7이닝 2.57의 기록을 남겼다.[7]
96년 5월 6일 제대를 하였고 작년 우승팀인 OB 강력한 전력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예상했으나... 0승 2패 6.92로 망했다.
이 해 9월 14일 이종범의 3연타석 홈런의 첫 번째를 장식했으며, 해태는 선발타자 전원 안타를 기록한다.
이 경기 포수는 박석안이라는 신인 포수가 잡았는데 경험이 짧아 홍우태의 낙차가 큰 포크볼을 잡지 못하자 홍우태가 2회부터 포크볼을 제외한 구종을 던지다가 그만 저렇게 된 것이라 한다...[8]
97년 6월 30일, 한화의 외야수 박상현과 1대 1 트레이드로 한화로 가게된다.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한화에 온 홍우태는 그 해 9월,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가한다.
그 효과가 있었는지 98년 한화의 구대성 밖에 없는 계투진에 140대 후반을 던지는 김해님, 이상열과 함께 등판하여 허리를 나름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99년 아시아 최다 홈런이였던 왕정치의 기록 타이를 노리던 이승엽의 마지막 타석 때 등판했는데 허용투수의 칭호를 받을 뻔 했으나 다행히 2루수 플라이로 잡아낸다.
이 때 연속해서 볼만 3개를 던지다 4구 째 공을 이승엽이 볼넷이 나올까봐 어쩔 수 없이 쳤기에 정면승부 안한다고 극성 삼팬에게 욕을 좀 먹었다.[9]
홍우태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당시 한화의 계명철 투수코치는 정면승부하라고 주문했으며 8월 25일 기록으로 對 이승엽과의 기록이 2타수 2안타[10]였기에 심적 부담이 많아 볼질을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4구는 100km 대 초 슬로우 직구로 이승엽이 마음 졸이며 성급하게 치지 않았으면 '그 이승엽'이 넘기지 못했을리가 없다.
이 후 6점대 방어율을 기록하지만 1999년 한국시리즈 투수 엔트리에 들어가 우승을 경험한다.
이 때 한화 김승연 회장이 모든 선수에게 한화 그룹의 주식을 나누어 주었다고한다. 한 편으로는 고참선수들만 줬다고도 한다.
99년에도 6점대 방어율이였고 00년에도 비슷했으며 01년엔 7점대 방어율을 찍고 은퇴한다.
코치 시절[편집]
모교인 성남고에서 이희수 감독 옆에서 코치로 일하다 2006년 이희수 감독의 은퇴 후 2007년부터 감독을 맡는다.
2003년부터 성남고 프로 진출 선수를 보면 박경수, 노경은, 박병호, 진야곱, 오선진이 있다.
감독을 맡은 2007년부터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 2008년엔 준우승을 이룬다.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를 맡고 있는 현재 갸팬들의 평가는 무익무해, 그냥 배팅볼 던져주는 코치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도 머진이 보단 나으니 써봐도 되지않을까?
불펜 뒷문쪽 주차알바하면서 홍우태코치가 말하는거 다 들리는데 딱히 조언같은건 하지 않고 분위기만 띄우는 듯. 투수 관리는 머진이 담당인가보다. 씨발....
2군 갔다 한다 안타깝다 안타까워
참고로 김병현 우승반지 올린적 있다.
이후 팀을 나갔다 한다.
그 외[편집]
홍우태는 130대의 직구를 던지는 아리랑 볼러였으나 매우 훌륭한 포크볼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계형철 투수코치가 홍우태에게 다른 거 필요없고 포크볼만 던져도 된다고 했다고...
한국 포크볼러 계통은 최일언-정명원-홍우태-이상목-정재훈이라하더라.
체인지업으로 간간히 삼진 잡은 기록은 있는데 지금 와서 잊혀진 거 보면 그리 좋은 변화구는 아니였나보다.
1997년 11월 17일 결혼을 했다.
2013년 3월, 기아의 1군 불펜코치가 됐지만 정규시즌 시작하기도 전에 3군 투수코치로 내려간다...
김일윤이란 선수에게 승리의 요정이라고 홍삼 에브리타임을 줬는데 검색하면 사진이 나온다. 근데 갸팬인데 김일윤이 누군지 모르겠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때 농구를 하거나 노래방에 간다고한다.
선수 생활 최후의 목표는 최고령 투수라고...잘해야 오래 붙어있지
생활 신조는 후회 없이 살자.[11]
올 해의 좌우명이라 하더라.
- ↑ 6천만원
- ↑ 이 날 유지현이 데뷔 첫 홈런을 친다.
- ↑ 뽑을 때도 계투로 쓴다고 했었다.
- ↑ 전 날 비로 인해 이 날에만 7경기를 했는데 완봉승이 6개나 나왔다!
- ↑ 신인 첫 사이클링 히트를 쳤다.
- ↑ 94년 신인왕은 유지현으로 이후 21년 동안 유격수 출신 신인왕은 아직 없다.
- ↑ 이 해 OB는 우승을 하였다...
- ↑ 해태는 1회에 점수를 못냈는데 2회부터 3점씩 내며 10대 1로 이겼다.
- ↑ 8회에 몸에 맞는 공도 나왔고 해서 한화도 전의 LG처럼 졸렬하다며 욕을 많이 먹었다.
- ↑ 하나는 7월 21일에 친 시즌 38호 홈런...
- ↑ 위 세 줄은 99년 초 한화 이글스 프로야구 스포츠카드에 적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