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군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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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대 왕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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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계비 14대 정현왕후 윤씨 |
→ | 연산군 비 15대 거창군부인 신씨 (폐비 신씨) |
→ | 중종 원비 16대 단경왕후 신씨 |
개요[편집]
연산군의 비. 보통 폐비 신씨라 한다.
조선 최고의 명문가 출신 왕비인데, 남편 잘못 만나 자식들 다 잃고 고생만 하다 죽었다.
의외로 연산군이 겁나 좋아했다고 한다. 갑자사화 때는 옳은 말 하고도 거의 유일하게 험한 꼴 안 보고 살았다.
실록에도 연산군이 미쳤지만 끔찍이 아꼈다고 기록되었다.
폐비 시어머니, 폐비 며느리 겸 고모, 폐비 조카 중 폐비 며느리 겸 고모를 담당한다.
내용[편집]
성종 7년 11월 29일에 신승선의 딸로 태어났다. 오빠만 셋인데, 그 중 첫째 오빠가 폐비 조카인 단경왕후의 아빠 신수근이다.
즉, 고모와 조카가 형제에게 나란히 시집가서 신씨에게 중종은 조카사위이자 시동생이자 7촌 조카고, 연산군에게 단경왕후는 제수이자 처조카다.
단경왕후에게 연산군은 고모부 겸 아주버니다. 그리고 연산군과 신씨는 서로 7촌 조카-고모다. 연산군은 세조의 손자고, 신씨는 세종의 외증손녀니.
간택 없이 세자빈으로 찜 당해서 동갑내기 연산군이랑 결혼했다.
인성[편집]
궁녀나 후궁에게도 존대해서 신하나 사관들이 걱정했다고 한다.
폐출 후에도 친정의 노비들이 스스로 남아 수발들고, 욕도 안 먹고, 누구하나 그를 이 이상 벌하지 않을 정도로 평소 행실이 착했다.
금슬[편집]
사극엔 주구장창 장녹수만 나오는데, 의외로 연산군과 금슬이 좋았다.
실록을 보면 연산군의 애처가 행각이 나오는데, 헤까닥 돌고 나서는 좀 요상한 것도 있다. 사치하지 말라니까 중전의 덕을 황금에 새겼다거나.
연산군은 이 사람 때문에 없는 예법을 만들어서 중전에게 존호를 내렸고, 자신을 올릴 땐 중전도 같이 올리라고 했다.
자기는 중전이 겁나 쩌는걸 잘 아는데, 남들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몰라서 슬프다며 교지를 내린 적도 있다.
친정[편집]
외증조할아버지: 세종대왕
외증조할머니: 소헌왕후
할아버지: 황해도감사 신전
할머니: 순흥 안씨
외할아버지: 정간공 임영대군
외할머니: 제안부부인 전주 최씨
아버지: 거창부원군, 영의정 신승선
어머니: 중모현주 흥안부부인 이씨
큰오빠: 익찬부원군, 영의정 신수근
작은오빠: 형조판서 신수겸
셋째오빠: 형조판서 신수영
조카: 단경왕후 신씨
자식[편집]
기록에 따라 7~9명 가량의 자식을 낳았다.
왜 수가 다르냐면, '이인수'라는 한자만 다른 자식이 연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게 없는 곳도 있다.
기록상 18살 때부터 애를 줄줄이 낳았다. 자녀들의 나이 터울과 연산군이 31세에 사망했음을 감안하면 거의 배 꺼질 날 없었던 거나 다름없다.
1494년에 원자를, 1495년에 휘신공주를, 1497년에 폐세자 이황을 낳았는데, 휘신공주랑 이황 사이에 딸이 하나 더 있다.
태어난 연도가 기록되진 않았지만, 정황상 1496년생이다.
그후 1501년에 폐 창녕대군을 시작으로 또 줄줄이 낳았다.
연산군 이후에 이상한 예법이 생겨서 왕이랑 중전이랑 합방을 거의 못 했는데, 역시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는게 최고다.
저렇게 애를 많이 낳았는데 2남 1녀만 살아남았고, 그마저도 어린 아들들은 중종반정 이후 피살당했다. 사사가 아니다. 조선 법은 죄인이어도 애는 안 죽인다. 법을 무시한 거다.
연산군은 엽색행각 이미지와 달리, 후궁 전체에게 본 자식보다 신씨와 낳은 자식이 많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연산군의 생애가 짧은 것을 생각하면 엄청 많이 낳은 거다. 대부분 어릴 때 죽었지만.
폐위 이후[편집]
연산군이 폐위될 당시에 같이 따라가겠다며 울부짖었고, 사망 후에는 직접 신위를 모시겠다며 자처했다.
재혼하라는 제의도 거절하고, 강화도에 있는 묘지를 이장해달라고 요청해가며 죽은 남편을 직접 살폈다.
과부가 재가하지 어렵게 만든 게 이 형제 아빠 성종이고, 신씨는 한때 왕비였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배려인데도 걷어찼다.
의외로 중종이 나름 잘 해줬다.
연산군은 죽을 때 이 사람이 보고싶다고 말하며 죽었다.
기타[편집]
너무 착해서 사씨남정기 사정옥의 모티브가 아니냐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