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헌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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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
조선의 역대 왕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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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비 4대 원경왕후 민씨 |
→ | 세종대왕 비 5대 소헌왕후 심씨 |
→ | 단종 비 6대 정순왕후 송씨 |
(*문종 비 현덕왕후 권씨는 세자빈 시절에 승하하였다.)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1395년 10월 12일 출생, 1446년 3월 24일 사망 (음력)
조선 4대국왕 세종대왕의 정실부인, 왕비. 영의정 심온의 장녀,왕비가 되기전 청송 심씨라고 불렸다.
세종대왕보다 2살 연상이다. 당시엔 어린 남자의 내조를 위해 연상을 이어주는 일이 잦았다.
남편과의 금슬도 매우 좋았다.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 답게 남편 못지 않은 인품과 강단까지 갖춰 왕실의 기강을 꽉 잡고 있었다고 한다.
세종 8년(1426년) 2월에 한양에서 엄청 큰 화재가 일어났었는데 이때 세종과 문종은 군사 훈련 감독 차 밖에 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세종이 다음날 돌아올때까지 방재 작업을 진두지휘하였다. 이때 왕후는 금성대군을 임신중인 만삭의 몸이였다
이 처럼 대단한 왕비였고 내명부를 확실하게 휘어 잡으며 통솔했으며 훗날의 왕비들의 롤 모델로 뽑혔으나,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사가 순탄하지는 않은 비운의 여인이기도 하였는데,
일단 아버지인 부원군 심온은 영의정이 된 후 권세가 강해지자 외척 포비아 킬방원의 레이더에 찍히게 된다.
소헌왕후의 시아버지 태종은 자기 처남 네명을 도륙할 만큼 외척의 권세에 반감이 심했다.
그 와중에 태종의 따까리이자 좌의정인 박은의 무고 겐세이가 겹치자 심온은 역도로 누명을 쓰고 명나라 사신길을 다녀오던 길 그대로 잡혀 국문 적당히 받다가 사약받고 바로 황천으로 간다.
현대 여성이라면 자기 아버지를 지켜주지 않은 남편에게 빡이 칠만도 하나 시대가 시대인지라,
당시 소헌왕후는 어머니인 부부인 안씨가 관노에서 복권되기까지 걸린 6년간 애도 하나 낳을 정도로 남편과 관계가 틀어지진 않은 듯 하다.
남편 세종대왕이 부인인 자신에게 워낙 잘해준것도 있고(물론 세종대왕은 애민하는 마음으로다가 다른 후궁들에게도 잘해주었다),
아님 아직 군권을 틀어쥔 권력자이자 아버지인 태종과 부인인 자신 사이에서 뻘쭘할만한 남편을 이해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때 일부 간신 유망주들
(특히 심온 모함하는 데에 총대 멘 박은,유정현)이 소헌왕후가 훗날 직접 자기들을 쳐 죽일까봐 무서워서 폐비하자고 빼애액거렸지만, 숙청 실행자인 이방원이 자신이 한 짓이 정치적 숙청이란 점을 분명히 하며 며느리가 무슨 죄가 있냐고 씹었다.
아버지 심온의 복권은 정치적 이유로 미뤄지다가 아들 문종때나 되어야 이뤄지고 그때 소헌왕후는 이미 죽고 난 이후였다.
이러한 이유로 청송 심씨와 반남(나주의 반남면) 박씨는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을 많이 낳았으나 요절하는 자식들도 여럿있어 말년이 편치 않았다.
또한 유명한 좆좆대군의 계유정난으로 자기 아들들이 싸우다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등이 '그 새끼'한테 죽고, 또한 손자까지 죽이고야 마는
희대의 개씹패륜을 저질러 무덤에서도 편히 있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시아버지가 했던 피튀기는 정쟁과 숙청의 피해자였고 남편대에 이르러 그나마 이러한 비극이 가라앉았으나 둘째 아들새끼가 이를 재탕해버렸으니 패륜도 이러한 패륜이 없는격.
결국 소헌왕후의 처지가 동생들 다 죽는걸 보고만 있어야 했던 시어머니인 원경왕후 민씨와 비슷하다 할만하다.
(적어도 시아버지 태종은 동복형제는 죽이지 않았는데 수양대군 이새낀 능력도 구데기인게 지 권력욕을 위해 친형제와 조카를 골로 보냈으니 씹새끼도 이런 씹새끼가 없다.)
특히 세조의 부인이였던 파평 윤씨(후일 정희황후)를 총애했는데 윤씨가 첫째인 아들 의경세자(성종 아빠)를 낳기전에 불러 파격적으로 궁 내부에서 애를 낳게 배려해줬다(보통은 궁 밖에 나가서 분만한다)
진짜 이 개새끼는 사람새끼가 맞나 싶다, 하기사 그 패륜짓만 골라서 하는 씹새끼인 수양대군조차 자기 어머니였던 소헌왕후만큼은 끔찍히 사랑하고 효도만 하는 착한 아들이였으니까.
드라마틱(?) 하게도 남편의 최대업적 훈민정음 창제 당일 수양대군 집에서 사망하였다. 세종대왕보다 4년 일찍 죽었다.
사실 역사에 만약이라는건 없지만 왕후가 손자인 홍위가 성인이될때까지만, 10대 중반까지만 살았어도 아니면 문종이 뭐같은 3년상 치루고 죽지않고 딱 10년만 더 살다가 죽었으면..
계유정난은 일어날수도 없었을탠데 안타깝다.
가족 관계
남편 : 세종대왕
장녀 정소공주(13살에 요절) - 세종이 15살쯤 낳은 태종의 첫 손녀, 그래서인지 태종이랑 원경왕후가 엄청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13살이 되던해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고 장례식은 크게 치뤄졌다.
장남 왕세자 이향
2녀 정의공주
2남 수양대군 이유
3남 안평대군
4남 임영대군
5남 광평대군(천연두로 20살때 요절)
6남 금성대군
7남 평원대군(천연두로 17살때 요절,광평대군이 죽고 한달뒤에 바로 사망)
8남 영응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