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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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선수
Cha Bumkun
대한민국 파일럿.
공군사관학교 27기 출신
한국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최초의 한국 선수이다. 아시아 최초 선수는 오쿠데라 야쓰히코다.
전성기 시기 때 분데스리가 역대 외국인 최다 득점자였다. 현재 분데스리가 리그(독일) 역대 외국인 최다 득점자 6위이다.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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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인 차범근 축구교실 문제로 공중파에 진출하셨다.
- 축구코치들에게 퇴직금 안주기 노동부에 진정서낸 3명만 퇴직금 지급
- 축구코치에게 차범근 소유 건물 상가의 임대료를 받게하는 일을 시키고 임대료 안낸 업자들에게 법적 조치취하게 하고 하다못해 각종 잔심부름까지 시킴
- 차범근 축구교실 시설과 부지를 서울시에서 저렴하게 임대받는대신 수강료를 서울시가 제시한 가격으로 받아야 하는데 더 올려서 받기
- 친인척 고용시켜서 친인척들 회사에 잘 나오지도 않고 게임만 하고 퇴근했는데도 월급지급 (가끔 차범근 회사인데 친인척 고용이 뭐가 문제냐는 무뇌아 있는데 차범근 축구교실은 법인이다 법인이 뭔지 검색해보자)
- 무료로 스폰받은 축구 유니폼 축구화 판매하기
- 차범근 법인에서 월급주는 기사가 차범근 집에서 거주하며 차범근 아내와 손주 손녀 운전셔틀해주기
- 차범근 가사도우미 명절 상여금 차범근 축구교실에서 지급
싸스가 헬조선 재산이 수백억에 스포츠 스타출신도 헬조선 종특은 못피해간다
가사도우미 명절 상여금 몇십만원도 법인 돈으로 내다니 참 ㅋㅋ 재산만 500억이 넘는걸로 아는데 이래서 있는놈들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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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축구교실 = 비영리법인 http://opengov.seoul.go.kr/sanction/7756009
비영리법인 수익운영 = http://oneclick.law.go.kr/CSP/CnpClsMain.laf?popMenu=ov&csmSeq=83&ccfNo=5&cciNo=3&cnpClsNo=2
돈딸려서 축구화 팔았다면 어쩔수없지만 일도 잘안하는 친인척 고용해서 돈준거나 법인에서 월급주는 기사 운전셔틀한거 보면 그런것같지는않음
(친인척 고용 반박글로 단것이 소정의돈이니 구지 다른사람을 모집할 필요가 없었다함 120이나 220주면 인크루트에 올려도 한다는사람 바글바글 몰려옴 비품관리인데 들어오고 나가는게 많아야 열심히 그런걸 관리하지 [업무의 특성상 이들이 유연하게 근무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반박글중에서 // 이들은 근무기간 중에도 해외여행을 가는 등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서 급여만 받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발내용] 그리고 축구화 판매한것도 30%할인해서 줬고 아디다스에서 알고있었고 다른축구교실이나 스포츠클럽에서 가입비 대신 공짜로주는거라는데 여긴 비영리법인뚤어놓고 세제혜택받으면서 무슨 가입비와 관련해 영리쪽이랑 비교를함 [[증여세 면제 공익법인 등이 출연받은 재산의 가액은 증여세 과세가액에 산입되지 않습니다. 다만, 주식등을 출연받은 경우에는 증여세가 부과될 수도 있습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8조제1항).더해서 오은미라는 분(반박글에 실명적혀잇음) 기사용으로 돈줬다는거 원래 축구교실에서 했지만 나중에 축구교실에서 따로 기사고용비로 [소정의돈] 을 지급해 기사고용하라하고 오은미라는분이 개인적으로 기사고용했다는데 누가 소정의돈가지고 기사고용을 해줌 말만 소정의 돈이지 거기에 소정의돈을 결국 오은미라는분에게 지급하고 그 오은미라는분이 기사고용하는데 썻으니 말을꼬아둔것에 불과함 가정부에게 지급한 상여금도 우리집에 축구클럽하는 관계자들 와서 오랫동안 수고하셨으니 가져가라고 한것인데 라는데 그걸 왜 축구클럽에서 지급하는데 미안하면 자기들이 지급해야지 초과수당이며 고용주가 지급하는거 아닌가 결론적으로 핑계에 불과함) 기사출처 -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68&aid=0000171508 참조] 비영리법인 혜택 = http://oneclick.law.go.kr/CSP/CSP/CnpClsMain.laf?popMenu=ov&csmSeq=652&ccfNo=5&cciNo=3&cnpClsNo=1
주요활약상[편집]
리그 득점왕 : 0회
리그 MVP : 0회
리그 베스트 : 2회
챔스 우승 : 0회
리그 우승 : 0회
아시안컵 우승 : 0회
월드컵 16강 : 0회
유에파컵 우승 : 2회
포칼 우승 : 1회
팩트자제좀 ㅅㅂ
위 표가 맞긴 한데 차범근 나이를 좀 고려해야 한다.
차범근은 25살때 독일 분데스리가로 넘어갔고(더군다나 군대 제대하고 나서 넘어갔다.)
차범근 최절정기였던 85-86시절 38경기 19골을 넣었을 당시 나이가 32살 이었다.
이정도면 좀 설명이 되남 ??
+당시 챔스는 각 리그 우승팀이랑 전년도 챔스 우승팀만 모아서 하는 경기라 아무리 좆빠지게 한다고 해도 당시 차범근 소속팀이 챔스 진출권 따는건 좆같이 어려웠다.
그리고 차붐 시절에도 뮌헨 독주리그였던 경향은 지금이랑 다를거 없어서 리그우승은 택도 없는 소리다.
그리고 득점왕 0회라서 노답인거면 같은논리로 루니도 빨아제끼면 안되겠네
ㄴ루니 그 병신 누가 빰?
심지어 커리어 말년엔 미드필더로 전향까지 했다. 그래도 그 때 외국인 최다 득점자였다.
맞음 그렇게치면 손흥민도 우승 없으니 빨면 안되지... 팀 커리어만 잔뜩 있는 버기는 존나 올려치기되고
국제대회 출전[편집]
선수[편집]
1986년 월드컵에 출전하기로 했다. 한국의 조편성이 나오자마자 차범근은 한강물에 뛰어들려고 했다. 그러자 5살박이인 차두리가 한강에 뛰어들지 못하게 막아서 월드컵에 출전했다. 차범근은 아들인 차두리에게 대진표를 보여주고 이것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다고 했다. 씨발 나같아도 자살하고 싶겠다.
- 1978년 월드컵 우승국 아르헨티나, 여기서도 우승했다.
- 1982년 월드컵 우승국 이탈리아
- 유럽에선 좆밥이지만 변방국들에겐 존나 쎈 불가리아 <<사실 불가리아도 94년 4강 간거 빼면 월드컵 승점자판기임. 물론 그런팀이라고 찌랭이 한국이 쉽게 볼 팀과는 거리가 멀고.
- 제일 찌랭이 한국
아니 이 시팔놈들은 왜 월드컵 우승팀 두 팀을 같은 조로 몰고 지랄이냐? 이걸 어떻게 이겨? 참고로 인류역사상 최악의 죽음의 조가 바로 저 조편성에서 한국과 불가리아 빼고 브라질 넣은 1982년 월드컵 2차리그였다.
막상 출전했는데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세르히오 바티스타에게 완벽하게 지워졌다. 끝.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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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월드컵에서 감독이 되어 출전했다. 그러나 선수시절 그 극악의 조보다는 좀 널럴한 조편성이었다.
- 이탈리아와 거의 비슷한 네덜란드
- 아르헨티나의 발뒷꿈치 때만도 못한 멕시코
- 불가리아와 비슷한 벨기에
- 대한민국
ㄴ사실 이 때의 네덜란드는 1986년 이탈리아보다 더 강했는데, 그렇다고 우주최강팀은 절대 아니였고, 1986년대의 이탈리아는 지난대회 우승스쿼드 때보다 전력이 하향된 탓이 크다. 게다가 이 때의 네덜란드는 비록 95 UCL우승팀인 아약스 키즈들이 발굴된 리즈 시절이지만, 2년전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잉글랜 뤃드에게 1-4로 관광당했으니 98년 월드컵 때의 네덜란드를 우주최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첫경기 멕시코전은 최초로 월드컵에서 프리킥으로 선제골 넣고 분위기 탔는데 분위기를 과도하게 타서 골넣은 하석주가 백테클로 퇴장(한국인 최초 가린샤클럽 가입자 달성).
참고로 차범근이 선수시절의 아르헨티나는 역대 최강의 아르헨티나로 펠레가 현역일 때의 브라질과 더불어 인류역사상 최강팀으로 꼽히는 팀 중 하나였다.
98월드컵부터 백태클은 경고 없이 퇴장이라는 룰이 정해졌는데 그 첫번째 케이스로 걸린 것이다. 심판의 손에 노란색이 아니라 빨간 카드가 나온 걸 보고 오오미 카드가 빨갱이랑께? 하며 멍해진 하석주의 표정이 압권.
당시 하석주는 퇴장먹고 벤치로 돌아갔는데, 경기운영진에게서 '퇴장당한 사람은 경기장 밖으로 나가야 한다' 는 소리를 듣고 쫒겨났다. 영웅에서 역적으로... 안습.
결국 에르난데스한테 두 골 먹고 소싯적 블랑코한테 개인기로 능욕당하며 1-3패배.
다음 경기 네덜란드는 상대 멤버들이 미쳤다. 그때 네덜란드는 공격진만 봐도 제정신이 아닌 팀이었다. 아니 포지션 전체에 톱클래스 선수들이 전부 포진하고 있었다.
일단 한국전에 나온 네덜란드 맴버들이
- FW - 데니스 베르캄프
- MF - 마크 오베르마스, 빈터르, 필립 코쿠, 에드가 다비즈, 용크, 로날드 데 부어
- DF - 프랑크 데 부어, 야프 스탐, 뉘만
- GK - 반 데 사르
그냥 씨발 당시 최강멤버를 다 꾸려놨는데 이게 어느정도냐면 클라렌스 세도로프가 후보였다.
게다가 파트릭 클루이베르트는 벨기에전 퇴장으로 다행히 한국전에 못나온건데, 결과적으로 클루이베르트가 출장했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지는 불보듯 뻔하고...
참고로 클루이베르트는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이었던 하셀바잉크, 라리가 득점왕이었던 반 호이동크를 밀어버리고 꾸준히 국대 원톱을 씹어먹던 괴물이다.
언론은 얘 안나오니까 이길수있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다 망한거고
이보다 멤버가 더 무서운 팀이 아르헨티나밖에 없었는데 이 당시 아르헨티나는 저 유명한 크레스포가 후보였다. 하셀바잉크? 걔랑 이적료 역대급 현금이랑 크레스포를 맞바구려 했던 일도 있었다.
아무튼 클루이베르트 없이도 네덜란드는 당연히 한국을 썰어버리며 5골을 꽃아넣었는데, 이 시합의 대한민국 수문장이던 골키퍼 김병지가 시합 후 온갖 찬사를 들었다.
이 경기에서만 19개의 슈퍼세이브를 하면서 5골에서 끝난 게 다행일 정도로 수많은 톱클래스 선수들의 슈팅이 한국 골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김병지가 미친듯이 구른 결과 간신히 축구라고 할 만 한 5점에서 끝. 그가 아니었다면 야구스코어가 나왔을 것이다.
이 시합에서 건진 공격수가 바로 이동국. 후반에 수비 둘 달고 드리블하다 조금 뜨는 슛을 쏘았는데 학살당하던 경기에서 그나마 울분을 풀어주는 슛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0-5에서 끝난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인데, 당시 국뽕 한사발 들이킨 한국축구는 네덜란드에게 진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으며 결국 대회 도중 감독 경질이라는 쪽팔리는 짓거리를 저질렀다.
차범근 감독에 대한 온갖 음해가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세상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ㄴ 실제로 네덜란드는 이후 16강에서 유고슬라비아를 깨고 8강에서 아르헨티나와 난투극을 벌이다가 지치는 바람에 4강에서 브라질에게 덜미를 잡혔다. 이후 네덜란드는 지친 탓에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에게 넉다운당한 크로아티아게 털리며 4등했다.
이 당시 언론이 얼마나 병신이었냐면, 어딘지 기억이 안나는데 딱 한 신문만 빼고는 네덜란드 선수내에서 흑백갈등이 있다느니, 우리선수들이 정신력으로 극복가능하다느니 하는 3류소설도 안쓰는 되도않는 개소리를 씨부렸다.
하기야 시대가 98년이었으니 요새처럼 인터넷으로 해축을 볼수있는것도 아니었고, 극히 일부의 해축 시청자를 빼면 이게 얼마나 되도않는 소리인지 잘 알고있었겠지만,
언론은 예나지금이나 그런거없이 입맛에 맞는 소리대로 씨부리다가 무려 5대0으로 엄청나게 선전했는데도 수치라는 개소리를 지껄였으니...ㅉㅉ
시발 당시 우리나라가 축구인식이 개병신이였던 것도 있다. 저런 좆같은 인식들로 네덜란드 멕시코 같은 좆밥 새끼들 못 이기고 5:0으로 졌다고 지랄하는 옛날 우리나라 인식이였다.
윗대가리가 병신새끼들인건지 대회도중에 차범근 감독을 경질해버렸다. 시발 개새끼들이 장난하나 시발 저건 우리나라가 약했던 것도 아니였고 네덜란드, 멕시코가 존나 쌨던 거다. 근데 감독 탓 한다고 경질?
앞서 말했듯 멕시코는 어떤 조편성이 걸려도 16강은 무조건 가는 팀이고 네덜란드는 이 월드컵에서만큼은 아르헨티나를 이긴 팀이란 말이다. 이게 약하다고?
ㄴ 하지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16강에 못 가고 말았다. 폴란드와 졸전 끝에 0-0으로 비긴 뒤 아르헨티나한테 존나 뚜까맞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멕시코의 발목을 잡는 발목슛으로 멕시코를 떨어뜨려 버렸다.
이후 차범근 없이 치른 벨기에전은 1-1로 비겼다. 이임생의 붕대투혼이 유명한 경기.
웃긴건 한국빼고 나머지 3팀이 다 비겼다는 거다. 결국 한국에게 5골 박아넌 네덜란드가 일등, 한국을 2점차로 이긴 멕시코가 이등, 한국과 비긴 몸기에는 광탈했다. 벨기에 놈들... 한국산 고춧가루 맛이 어떠냐? 얍얍.
다만 수치인 것 같은 눈의 착각을 일으키긴 했다. 한국이야말로 등수 따지는 걸 세상에서 가장 심하게 하는 나라인데 문제는 한국 빼고 나머지 팀들이 싸그리 다 무승부를 내고 말았기 때문에 결국 왜 너 혼자만 못 해 같은 모양새가 나와버리고 만 탓이 크다. 한국 빼고 이 조의 경기 결과를 보자면...
- 네덜란드 0-0 벨기에
- 벨기에 2-2 멕시코
- 네덜란드 2-2 멕시코
따라서 이 조에서도 한국과의 경기가 절대적으로 16강 진출을 결정지었는데 한국을 존나 크게 털어먹은 네덜란드는 조 1위로 16강에 올라간 반면 한국과도 비겨버린 벨기에는 3무승부를 찍어 결국 조별리그 탈락하고 말았다.
한국 이외의 경기에서 네덜란드가 벨기에나 멕시코 중 하나라도 이겼으면 차범근이 이렇게까지 욕먹지는 않았을 것이고 중도 경질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네덜란드 존나 개쎄네로 일축하고 끝났을 일이었다.
이 월드컵은 조편성이 안 좋은데다가 미친 축혐새끼들이 프랑스로 출국하기 전에 짱깨들이랑 평가전 괜히 하는 바람에 황선홍이 나가리된게 컸다. 그 경기를 감명깊게 보고 만든 영화가 소림축구다.
하긴 황선홍 있었다고 달라졋겠냐...
웃긴건 차범근 빵셔틀이던 이분도 20년 뒤 이 꼴을 똑같이 당한다.
키커[편집]
푸스발-분데스리가[편집]
시즌 | 클럽 | 포지션 | 출/평 | 평점 | 선발 | 교체 | 아웃 | 시간(분) | 득점 | 도움 | 공포 | PK | 옐로 | 옐레 | 레드 | SDS | EDT | SDT |
---|---|---|---|---|---|---|---|---|---|---|---|---|---|---|---|---|---|---|
1978/79 | 다름슈타트 | FW | 1/1 | 3.00 | 1 | 0 | 1 | 76 | 0 | 0 | 0/0 | 0 | 0 | 0 | 0 | |||
1979/80 | 프랑크푸르트 | FW | 31/31 | 2.45 | 31 | 0 | 0 | 2790 | 12 | 12 | 0/0 | 0 | 0 | 8 | 1 | |||
1980/81 | 프랑크푸르트 | FW | 27/26 | 2.85 | 27 | 0 | 3 | 2302 | 8 | 8 | 0/0 | 0 | 0 | 4 | 1 | |||
1981/82 | 프랑크푸르트 | FW | 31/31 | 2.87 | 31 | 0 | 3 | 2718 | 11 | 11 | 0/0 | 0 | 0 | 1 | 0 | |||
1982/83 | 프랑크푸르트 | FW | 33/33 | 2.52 | 33 | 0 | 2 | 2919 | 15 | 15 | 0/0 | 0 | 0 | 6 | 3 | |||
1983/84 | 레버쿠젠 | FW | 34/34 | 2.91 | 34 | 0 | 2 | 3023 | 12 | 12 | 0/0 | 0 | 0 | 3 | 0 | |||
1984/85 | 레버쿠젠 | FW | 29/29 | 3.31 | 29 | 0 | 4 | 2468 | 10 | 10 | 0/0 | 0 | 0 | 4 | 1 | |||
1985/86 | 레버쿠젠 | FW | 34/34 | 3.18 | 34 | 0 | 4 | 3004 | 17 | 17 | 0/0 | 0 | 0 | 6 | 0 | |||
1986/87 | 레버쿠젠 | FW | 33/32 | 3.38 | 33 | 0 | 5 | 2799 | 6 | 6 | 0/0 | 0 | 0 | 2 | 0 | |||
1987/88 | 레버쿠젠 | FW | 25/24 | 3.21 | 24 | 1 | 3 | 2063 | 4 | 4 | 0/0 | 0 | 0 | 1 | 0 | |||
1988/89 | 레버쿠젠 | FW | 30/28 | 3.11 | 29 | 1 | 5 | 2503 | 3 | 3 | 6 | 0/0 | 1 | 0 | 1 | 0 | ||
레버쿠젠 6시즌 | 185/181 | 3.18 | 183 | 2 | 23 | 15860 | 52 | 3 | 55 | 0/0 | 1 | 0 | 17 | 1 | ||||
프랑크푸르트 4시즌 | 122/121 | 2.66 | 122 | 0 | 8 | 10729 | 46 | 46 | 0/0 | 0 | 0 | 19 | 5 | |||||
다름슈타트 1시즌 | 1/1 | 3.00 | 1 | 0 | 1 | 76 | 0 | 0 | 0/0 | 0 | 0 | 0 | 0 | |||||
분데스리가 11시즌 | 308/303 | 2.97 | 306 | 2 | 32 | 26665 | 98 | 3 | 101 | 0/0 | 1 | 0 | 36 | 6 |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키커 랑리스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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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전) | 클럽 | 포지션 | WK | IK | K | B | 시즌(후) | 클럽 | 포지션 | WK | IK | K | B |
---|---|---|---|---|---|---|---|---|---|---|---|---|---|
1978/79 | 다름슈타트 | 1978/79 | 다름슈타트 | ||||||||||
1979/80 | 프랑크푸르트 | 외국인 선수 | WK-1 | 1979/80 | 프랑크푸르트 | 외국인 선수 | IK-5 | ||||||
1980/81 | 프랑크푸르트 | 외국인 선수 | K-4 | 1980/81 | 프랑크푸르트 | 외국인 선수 | K-7 | ||||||
1981/82 | 프랑크푸르트 | 외국인 선수 | K-7 | 1981/82 | 프랑크푸르트 | 외국인 선수 | K-6 | ||||||
1982/83 | 프랑크푸르트 | 외국인 선수 | IK-2 | 1982/83 | 프랑크푸르트 | 외국인 선수 | K-2 | ||||||
1983/84 | 레버쿠젠 | 외국인 선수 | K-3 | 1983/84 | 레버쿠젠 | 외국인 선수 | K-5 | ||||||
1984/85 | 레버쿠젠 | 외국인 선수 | B | 1984/85 | 레버쿠젠 | 외국인 선수 | B | ||||||
1985/86 | 레버쿠젠 | 외국인 선수 | IK-2 | 1985/86 | 레버쿠젠 | 외국인 선수 | IK-5 | ||||||
1986/87 | 레버쿠젠 | 1986/87 | 레버쿠젠 | 외국인 선수 | B | ||||||||
1987/88 | 레버쿠젠 | 외국인 선수 | B | 1987/88 | 레버쿠젠 | 외국인 선수 | K-12 | ||||||
1988/89 | 레버쿠젠 | X | 1988/89 | 레버쿠젠 | 수비형 미드필더 | K-8 | |||||||
Weltklasse : 1회 Internationale Klasse : 4회 Im weiteren Kreis : 9회 Blickfeld : 4회 |
- 1986/87 시즌 전반기는 외국인 선수에 한해서 랑리스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평가했다.
수상[편집]
선수[편집]
클럽
- DFB-포칼: 1980/81
- UEFA컵: 1979/80
- UEFA컵: 1987/88
개인
- 아벤트포스트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스타: 1985/86
- 서독 빌트지 선정 올해의 페어플레이어: 1981
- MBC 고교축구대회 최우수 선수: 1970
- 한국일보 선정 백상체육대상 올해의 신인상: 1972
- 스페인 바르셀로나 주최 세계 올스타: 1981
- 킥AIDS88 세계 올스타: 1989
- 키커지 기자단 선정 80년대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1위: 1989
- IFFHS 선정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 1위: 2017
- 골닷컴 선정 분데스리가 역대 외국인 선수 3위: 2010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역대 베스트 XI: 2013
- 대통령 금배 고교축구대회 득점왕: 1970
감독[편집]
- K리그 1: 2004, 2008
- FA컵: 2009
- 리그컵: 2005, 2008
- 슈퍼컵: 2005
- A3 챔피언스컵: 2005
- 팬퍼시픽 챔피언십: 2009
개인
- AFC 선정 올해의 아시아 최우수 감독: 1997
- 윈저 어워드 한국 축구 대상 감독상: 2008
- AFC 황금공로상: 2010
수훈 훈장[편집]
- 체육훈장 기린장: 1975
- 체육훈장 백마장: 1979
- 독일 연방공로십자소수장: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