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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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 6월 4일 ~1820년 1월 29일 (81세)
재위기간 : 1760년 10월 25일~1820년 1월 29일
개요[편집]
영국의 4대 국왕.
재위기간이 무려 59년이었고 검소한 편으로 영국인들에게는 많은 존경을 받았으나,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잔혹한 식민지 수탈 역사 때문에 조지 3세를 아주 싫어한다.
일생[편집]
조지 2세가 조지 3세의 아버지인 프레드릭을 정치적 목적 때문에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조지 3세도 할아버지인 조지 2세를 싫어했다.
자폐증도 있어서 11살 때까지 읽는 것도 못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독일 억양 없는 영어를 완전히 익히는 데 성공해 1760년 즉위 후 영국 내 정치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1760년 10월 25일 7년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영국과 하노버 선제후국의 군주로 즉위했으며 정치적 센스는 좋지 않아 하노버를 잠시 포기하자고 주장했던 총리 윌리엄 大 피트를 해임하는 븅신짓을 하기도 했다.
이후 새로 들어선 내각은 프로이센에 대한 지원을 끊고 영국군을 직접 전쟁의 포화 속에 밀어넣었으며 프로이센군과 함께 녹으면서 프로이센은 패망 직전까지 갔다.
정말정말 다행히도 적국인 러시아의 표트르 3세는 조지 3세보다도 더한 호구병신이었던 덕분에 표트르 3세가 프로이센을 부활시켜주는 엄청난 병신짓을 저지르자 영국은 전세를 회복했다.
결국 7년 전쟁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이 이겼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영국의 삽질 때문에 좆망할 위기까지 몰렸던 셈이라 영국에게 엿을 여러 번 날렸다. 대표적으로 미국 독립 전쟁을 지원했던 것 등이 있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던 시장경제방임론을 받아들여 휘그당이 몰락하고 토리당이 집권했다.
7년 전쟁의 승리로 산업화의 기반도 마련되고 인도 식민지 확장의 기회도 얻었으나 전쟁으로 인한 영국 내 손해가 막심해 북미 식민지에서의 수탈을 시작했다.
결국 북미 13개 식민지는 대륙회의를 열어 미국 독립 전쟁을 일으켰으며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대륙군이 영국군을 격파하며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된다.
영국은 아메리카를 대체할 새 대륙의 식민지를 찾아야 했고 이때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호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수립된 프랑스 제1공화국 정부는 영국에게 '영국 왕실 문장의 부르봉 왕조 백합 마크를 지워라, 어차피 니들도 프랑스 부르봉 왕조랑 사이 안 좋지 않았냐?' 하는 식으로 프랑스 왕국 관련 요소를 제거하기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관습적으로 써왔기에 거부했으나 프랑스가 하도 입을 털어댔기에 억지로라도 지워주게 되었다.
이맘때 몇몇 세력은 조지 3세를 브리튼 제국의 황제로 레벨을 높이자는 주장도 했으나 아직 하노버의 선제후 직위를 함께 가지고 있어 신롬의 봉신국 군주였기에 조지는 이를 거절했다.
말년에는 정신병에 걸려 조지 4세가 섭정을 맡았으며 그 동안 미영전쟁에서 영국이 미국에게 발리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결국 1820년 조지 3세는 사망했으며 아들 조지 4세가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