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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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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는 쌈장. 신주영이 최초의 한국 프로게이머라면 이기석은 최초의 스타 프로게이머로 인기가 많았다.

KPGL 1,2회 우승자로 신주영과는 라이벌 관계.

당시 인기도 정말 많았고 포스도 대단했다고 이윤열이 밝혔다. 이윤열 임요환 두 사람이 아마추어 시절 서울의 어느 대회에 나갔는데 당시 임요환이 우승을 했고 그로인해 이기석과 붙었지만 떡실신 당했다고 한다.

인기를 몰아 코넷 CF도 찍었고 프로게이머 라는 직업이 대중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영광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뷰저 논란이 시작됐고 실제 실력보다 고 평가 되어있다고

는 지적도.. 그리고 당시 한국 상위랭커들은 대부분 어뷰저 였고 사실을 말하자면 이기석도 역시 어뷰저 였다. 그로 인한 패치가 발생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됨. 예전엔 나가자마자 승패가 갈렸지만. 특정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DRAW 패치변경

어뷰저 논란때 이기석아이디 를 조회해본 한 팬이 하루 1000승이상을 했는데 그것이 정상적인 플레이라면 1000승이상이 게임특성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올라왔었고 그 논란은 더 과속화 됐다.

그리고 실력으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2세대 프로게이머들인 임요환 홍진호 등 기라성 같은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게 되고 결국 2004년 은퇴하게 된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 귀국하였다.

최근에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다.